[김란영의 콕콕] 부끄러운 고백
[김란영의 콕콕] 부끄러운 고백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3.22 10:47
  • 수정 2019.03.22 10: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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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지난 광주 출장은 여러모로 ‘어려운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역사 시간을 유독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수학은 문제집 한 권을 두고 예닐곱 번씩이나 풀면서도, 역사 시간엔 누리끼리한 국사 교과서 표지, 빈칸마다 연도나 인물을 채워야 하는 학습 자료물을 볼 때면 반사적으로 넌더리가 났다. 선생님께선 침 튀기며, 그 역사적 사건의 진실과 의미를 알려주려 열성을 다하셨지만, 나의 심장은 그만큼 뜨거워지지 못했다. 그저 그땐, ‘예전엔 그랬나 보다’ 했다.

그런 내가 망월동 묘역 앞에 섰다. 덜컥, 그 날의 5월로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뭐라고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외우진 못해도 잊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그 생각만 계속했다.  

무엇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광주 시민들에게서 살아 있는 기억을 접할 때였다. 나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교과서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역사’인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매우 생경하게 다가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자신이 젊은 시절 마주한 그 날의 전경(全景)을 툭툭 읊어 냈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두서없이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 앞엔 장총을 지닌 군인들이 지나가고, 골목엔 사람들이 트럭에 타 있고. 멋모르는 아이들은 전쟁이 끝났다면서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빠듯한 일정을 끝내고도 새벽토록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나의 역사'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이거 왜 이래?” 그의 신경질적인 짜증을 듣고서야, ‘아차’ 싶었다. 그는 절대 사과하지 않았고,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사 변론이 길어질수록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일단은, 잊으면 우리만 손해라는 판단. 그들은 잊기 위해, 지우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는데 우리가 뒤쳐질 수 없겠다는 오기. 혹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그를 대신해서, 그가 저지른 국가 폭력의 역사를 꼭, 꼭 기억해줘야겠다는 뒤집어진 선의.

어쩌면, 그가 잊고 싶은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다는 건 그로선 참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처 ‘정산’을 마치지 못하고 끝나 버린 기억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 계산을 끝내려 들기 마련이다. 프로이트 개념 중에 ‘덮개 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특정 기억을 덮기 위해 기억하는 기억을 의미한다. 덮어도, 덮어도 계속해서 열어주자.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계속해서 역사의 빚을 독촉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