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그들의 운전대
[최은혜의 온기] 그들의 운전대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3.26 14:38
  • 수정 2019.03.26 14: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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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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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주말마다 운전 연습을 합니다. 면허를 딴 지 벌써 4년이나 지났지만 운전석에 앉아본 경험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오래도록 장롱 속에 묵혀둔 운전면허증을 꺼내 운전석에 앉게 된 이유는 기자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운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한 기동력을 뒷받침 하려면 운전은 필수입니다. 운전 못하는 후배 기자에 대한 선배들의 '구박'도 뒤늦은 운전 연수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은 비밀입니다.

보행자로 다니던 도로와 운전자로 누비는 도로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날 뭘 믿고 면허증을 쥐어준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보행자의 안전은 물론 저와 동승자, 아니 도로에 있는 모든 생명의 안전을 신경 써야 하는 막중한 자리가 바로 운전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운전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니 운전을 업으로 삼은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22일, 국회 앞에서는 공공운수노조 수도권 확대 간부들의 결의대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결의대회에 오윤석 화물연대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러 나왔습니다. 그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루에 22시간씩 운전하고 있기 때문에 ‘제발 살려달라’며 화물연대를 찾아온 화물차 운전기사의 이야기,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노동 구조 등 그가 무대에서 토로한 것은 운전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믿기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안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가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운전이 미숙할 땐 버스와 택시 근처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수 노동자들의 거친 운전은 논란거리입니다.

운수 노동자들의 거친 운전은 그들이 난폭해서가 아닙니다. 언제나 시간에 쫓겨야 하는 그들의 노동 환경이 한 요인입니다. 게다가 이들 운수 노동자들은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지난 2월에 취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한 일은 물론이고, 술 취한 전직 유명 야구선수가 버스에 올라 강제로 핸들을 꺾은 일도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들의 폭행에 노출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운전자에 대한 폭행이 2017년 2,720건이나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 구속된 사례는 단 29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운수 노동자에 대해 평상시에는 거칠게 운전하면서, 쓸데 없이 승객에게 말을 거는 오지랖을 지니고 있고, 가끔은 잠재적 범죄자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리가 없습니다. 그저 운전을 업으로 삼고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고, 또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아내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면 운수 노동자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장롱 면허를 꺼내 도로에 나서고서야 이들의 노고를 느낍니다. 적어도 함께 하는 사회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싣고 달리는 것이 고단한 노동과 삶의 무게가 아니라, 함께 하는 세상의 희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