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모의 우공이산] 때론 결론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박석모의 우공이산] 때론 결론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 박석모
  • 승인 2019.03.29 13:24
  • 수정 2019.03.29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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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모의 우공이산
시련도 많고 좌절도 많지만, 희망이 있기에 오늘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최저임금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3월 말경 다음 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논의해 달라고 최저임금위원회에 요청하면서부터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됩니다. ··공익 각각 9명씩의 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요청에 따라 저임금노동자들의 실태, 임금의 변동 등 최저임금에 영향을 주고받을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6월 말(정확하게는 628)까지 최저임금액을 결정하여 고용노동부에 통보하게 되죠. 그러면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8월 초에 다음 해 최저임금을 고시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최저임금 시즌이 돌아오면 노사 단체들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논의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여론전을 펴기도 하고, 동원 가능한 수단들을 총동원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방향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애를 쓰죠. 특히 노동계의 경우 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임박한 6월 말경에는 연일 집회를 열어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양상이 다르군요.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논의를 요청하는 대신 국회에서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는지 여부를 먼저 보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임시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는데, 여느 해처럼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한다면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공익위원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한 상태라 공익위원 구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사정도 논의 요청을 연기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고용노동부 자신입니다. 올해 초에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건 고용노동부거든요. 고용노동부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위원(법적 용어로는 근로자위원)들은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사용자위원들은 동결 혹은 극히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제시해 그 격차가 너무 크다면서 결정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큰 격차 때문에 두 의견 사이의 접점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거죠.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이른바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구간설정위원회에 최저임금 인상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결정하면, 결정위원회가 그 범위 안에서 논의해 최종 결정하게 되는 방식이죠. 노사가 각각 인상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상한선과 하한선의 격차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논의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를 따지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정부가 노동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지적하려는 것뿐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노동 문제는 조용하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길 꺼려할 뿐만 아니라, 논란이 일더라도 빠르게 덮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물밑에선 뒷거래가 횡행하는 것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안으로 곪아 결국에는 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악화되기 일쑤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서도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이죠. 그러면 그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만드는 게 정부의 할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부는 결론부터 내립니다. 최저임금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동안 생기는 갈등비용을 줄여야겠다는 선의는 이해합니다만, 그게 정부가 결론을 내리고 당사자에게는 따라오라는 식으로 덮는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박정희 정부 때처럼 그런 방식이 통했던 때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 시기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최소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결론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리려는 지극히 관료적인 발상은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국회로 공은 넘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노사 당사자들, 특히 최저임금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등 지금까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당사자들을 모아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걸리는 만큼 논의가 부드럽게 진행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언젠가는 진행되어야 할 겁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빠르게 과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고용노동부 스스로 정책결정한도설정위원회와 정책결정위원회를 두어서 모든 정책을 두 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정책결정한도설정위원회에서는 특정한 사안에 대한 정책이 정부가 표방하는 철학에 맞도록 허용의 한도를 설정하고, 정책결정위원회는 그 한도 안에서'만'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어떤 정책이 예컨대 노동존중사회 실현이라는 국정의 철학에 어긋나느니 어쩌느니 하는 식의 논란은 잠재울 수 있겠죠.

사족입니다만,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의제를 던지는 방식도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답이 정해져 있는 의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논의해 달라고 던지는 방식을 사용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청와대가 여야 정당들과 함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합의해놓고, 그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논의해 달라고 던지는 식이었습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무슨 논의를 하라는 걸까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말입니다. 기껏해야 단위기간을 얼마로 할지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정도이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는 모두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지난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진행하면서,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지원하고 의제를 제시하는 것은 최소화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아련한 추억 속의 메아리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그토록 바꿔야 한다고 했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이름 말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