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건강손상·유산도 산재 적용하라"
"태아 건강손상·유산도 산재 적용하라"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4.01 16:43
  • 수정 2019.04.01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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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료원 간호사, 심장질환아 출산·유산
독일에선 태아 건강손상도 업무상 재해 인정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태아 건강손상이 임신 중 여성노동자의 업무 때문이라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1일 전국공공운수노조(위원장 최준식, 이하 공공운수노조)와 의료연대본부(본부장 현정희)는 대법원 앞에서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선청성 심장질환아 출산 및 유산을 계기로 제기된 요양급요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됐다.

지난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중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고, 5명은 유산했다. 이에 간호사들은 2012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불승인 판결을 받았다.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서울행정법원은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한다”며 업무상 재해로 승인했다. 그러나 2016년 서울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결을 뒤집었고, 이 사안은 35개월째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2019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 태아의 권리 및 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담당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태아 건강손상 문제, 여성노동자만의 문제 아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문제가 단지 여성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반올림에 제보된 전자산업노동자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지난 11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중재협약을 체결한 이후, 4달만에 2세 질환 제보가 19건이나 있었다“고 밝힌 이 노무사는 ”고온테스트 공정에서 근무하던 노동자가 자신은 유방암에, 자녀는 심장에 구멍이 나는 병에 걸렸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 엔지니어의 자녀에게서 발달장애나 신체장애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태아 건강손상의 문제는 여성노동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제주의료원 사례가 산재인정 판결이 나와 전자산업노동자들의 자녀에게도 산재인정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독일은 이미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독일은 임신 중 여성의 업무로 인한 태아 건강손상도 보험사고로 규정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전문의는 “독일은 산재보험에서 태아를 피보험자와 동일하게 본다”며 “보험에 의한 보호는 모체가 직접 직업병에 이르지 않는 직업상의 영향에 의한 경우에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태아를 모든 보험급여로부터 배제하는 산재보험법의 규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국가보험법이 개정됐다”면서 “독일에서는 이를 계기로 법적 보호가 확립되지 않은 바이러스로부터의 보호나 성과급으로 인해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여 일하는 것에 대한 보호까지 실시한다”고 덧붙였다.

최 전문의는 “생식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선천성 질환아 출산이 30%이상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이 결과에는 방사선, 교대근무 등이 빠져 있고, 야간 교대근무는 유산이나 조산, 저체중아 출산의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에게 유해한 물질에 대해 알권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문제라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며 "공단에서 입장을 내기에는 조심스러운 사안"이라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