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으로는 부족?
건설현장,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으로는 부족?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4.01 17:18
  • 수정 2019.04.01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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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특성 상 예상되는 쟁점 총정리

[리포트] 건설현장 탄력근로제 쟁점 정리

지난 2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 참여한 노사정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합의는 했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두고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나 건설산업 분야의 노사갈등이 눈에 띈다. 대한건설협회는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최대 6개월의 두 배인 1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최대 6개월 확대도 개악으로 보고 있다. 첨예한 갈등이 어느 지점에서 일어나고, 왜 일어나는지 쟁점별로 정리하기 위해 이해당사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는 강해성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부장, 배상운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부장,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 김지용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기업노조 홍보부장이 응했다.

ⓒ 건설산업연맹
ⓒ 건설산업연맹

탄력근로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논란이 많을까

근로기준법 제51조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28조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법령이다. 여기서 말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탄력근로제’의 원래 이름이다. 탄력근로제는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제도다. 사용자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날과 반대로 많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있으니 사용자가 조절해서 노동시간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탄력적으로 운용된다는 것일까?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주당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 이하로 맞추는 방법으로 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정기간이 3개월(12주)이라면 사용자가 6주 동안은 매주 64시간까지 노동을 시키고 나머지 6주 동안은 매주 40시간만 노동을 시킬 수 있다. 일정기간인 3개월 동안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이기 때문에 괜찮다.

단위기간으로 불리는 일정기간이 이번 논쟁의 핵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1조에 따르면 단위기간은 2주 혹은 3개월이다. 경사노위 합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3개월이 6개월로 확대된다.

건설현장에서 탄력근로제를 둘러싸고 무엇이 쟁점인가

1) 건설 산업의 특성 상 탄력근로제 해야 한다 vs 아니다, 탄력근로제 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건설협회는 건설현장은 미세먼지·눈·비·한파·폭염 등 기후적 요인과 민원 등 현장 상황으로 사전에 근로일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일감이 몰리는 날이 생기기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준공임박이나 터널과 지하철 공사와 같은 특수한 공종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시간 근로가 필요하고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건설산업연맹은 사전 예측이 불가능한 건설 현장의 특성이 이미 존재했다면 현행 근로기준법상 가능했던 탄력근로제 3개월 시행을 활용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준공임박, 터널과 지하철 공사와 같은 특수한 공종 존재 같은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현장 조사 결과 2.1%뿐이라며 탄력근로제가 전 건설 사업장에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건설산업연맹은 지금에서야 대한건설협회가 탄력근로제를 적극 활용하자는 것은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돼 노동자를 더 사용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2) 단위기간 1년 확대 요구 vs 상시적인 장시간 노동 발생

대한건설협회는 탄력근로제를 적극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위기간도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통상적으로 건설 기업들은 사업계획을 1년 단위로 수립하며 대부분의 공정이 1년 이상 진행되고 인력운용도 1년 단위로 계획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해외 현장, 국책 사업, 공사기간이 임박한 경우 6개월 이상 집중적인 시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만으로는 최대 64시간 근로가 가능한 기간은 총 10주에 불과하고 남은 3주가량은 거의 근로를 하지 않아야 해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지용 건설기업노조 홍보부장은 “현행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만 해도 최대 5개월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3주 휴식+10주 노동+10주 노동+3주 휴식)한데 단위기간이 1년으로 확대되면 최대 21개월 동안 연속으로 주 64시간 노동을 할 수 있다”며 “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 순위 2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은 물론, 법정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의미도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 건설산업연맹
ⓒ 건설산업연맹

3)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존재 vs 건강권 침해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 주당 64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여기에 대한건설협회는 “탄력근로제 시행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며 “두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법에서 정한대로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지용 건설기업노조 홍보부장은 “산업안전보건공단 과로사 인정 기준인 주 60시간 노동을 훌쩍 넘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외건설현장이나 합동사무실 현장에서 상시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상시적인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탄력근로제 자체만으로도 건강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 역시 “탄력근로제 자체가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노동자의 건강권을 담보할 수 없다”며 “11시간을 쉬는 것이 부각됐는데 주당 64시간 노동을 하며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탄력근로제에서 어떤 단위기간이든 몰아서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인데 만약 현행 3개월에서처럼 10주간 장시간 노동을 하고 3주간 쉰다면 하루를 기준으로 내재화된 사람의 생체리듬이 거기에 맞춰지겠냐”고 토로했다.

4) 합의 vs 협의

탄력근로제를 사업장에 도입할 때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건설협회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충분한 대화로 탄력근로제 시행이 노동계가 말하는 악용 수준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에 의하면 도입요건 조항 중 ‘다만, 예측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협의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만 구두로 나눠도 협의한 것”이라 강조하며 “사용자의 편의대로 탄력근로제 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의 말에 따르면 더욱 문제인 것은 200만 건설노동자 중 노조 조직 건설노동자 비율이 낮아 대다수의 미조직 건설노동자는 합의든 협의든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정말 해법은 없나

대한건설협회와 건설산업연맹이 제시하는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같다. 두 단체는 탄력근로제를 활용하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정착시키기 위해 적정공사기간과 적정공사비를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 공사를 발주하는 발주처가 현장을 생각해 충분한 공사기간 하에 공정을 계획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공사비를 맞춰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단체가 실질적으로 요구에 대해 같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대한건설협회는 노동계와 대화가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적정공사기간과 적정공사비 이야기는 건설업계든 노조든 오랫동안 같이 이야기 해왔는데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것에 미온적인 태도로 대해서 이제는 진짜로 건설업계가 적정공사기간과 적정공사비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전했다.

ⓒ 건설산업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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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의 건설 현장인가

취재를 위해 만났던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업계와 대화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 건설현장에 대한 기본 인식이 서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현장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건설업계는 항상 공사기간 이야기를 한다. 1년 단위 건설공사가 대다수라는 수치 자료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사람 중심의 계획이 아니다. 순전히 기계가 언제 어떻게 투입되고 설비는 언제까지 갖춰져야 하며 공사는 어느 시점 전까지 마무리 돼야 하는지. 이것은 건물 중심의 계획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중심의 계획은 없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최소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즉, 사람을 위한 법이다. 그러니 근로기준법이 건설현장에 먹히겠는가. 건설노동자의 현실이 어찌 되든 건물 올리는 것에 혈안이다. 다른 산업군에 비해 건설산업에서 산재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도 그런 것과 연관돼 있다. 과연 사람 중심의 탄력근로제 도입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