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늪 : 사고 노동자 트라우마는 극복될까?
검은 늪 : 사고 노동자 트라우마는 극복될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4.02 07:48
  • 수정 2019.04.02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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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그들은 사고 현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리포트] 사고 노동자 트라우마

“사람이 문밖으로 탈출하는 초록색 비상구 표지판을 보면 사람이 컨베이어벨트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다”는 태안화력발전 노동자. 분명히 비상구 표지판은 탈출을 뜻하지만 본인은 표지판을 보면 탈출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갇힌다. “밤이 찾아와 깜깜해지면 잠을 잘 수 없다”는 태안화력발전 노동자.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작업장 안은 깜깜했다. 그에게 밤은 더 이상 평온과 안식이 아니다.

작업장에서 사고를 경험한 모든 노동자가 트라우마를 겪지는 않는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가 제대로된 트라우마 관리를 받지 못하는 순간 그의 삶은 무너진다.

ⓒ 산업재해예방안전보건공단
ⓒ 산업재해예방안전보건공단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의 트라우마 관리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노동자 트라우마 관리 중요성이 대두된 시점은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이다. 무력으로 진압당한 쌍용차 파업 공간에 있었던 많은 노동자들이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고 그 중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서야 노동자 트라우마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국회 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했던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과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인터뷰로 노동자가 사고 후 겪는 트라우마 사례와 트라우마 관리의 중요성을 들을 수 있었다.

산업재해 트라우마의 다른 지점

양선희 대구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이 작성한 토론회 발제문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다른 사고 트라우마와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1) 사고현장을 제거할 수 없고 매일 출근하는 곳이어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사고현장에 재노출 되고 재경험 할 수 있으며 산업재해 트라우마는 자연 재해나 사고성 재해와 다르게 책임주체가 분명하다.

2) 재해 발생을 막지 못한 사업장에 대한 분노가 있고 개인별 충격도·대처방법·회복기간 등의 차이가 있어 노동자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3) 노동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아 그들의 심리적 트라우마 상태를 동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회사로부터 낙인을 우려하여 트라우마를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산업재해는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 처리에만 급급해 노동자의 심리적 재해를 간과하기 쉽다.

이러한 산업재해 트라우마로
노동자들은 어떠한 악몽을 겪꿀까

류 소장이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사고 경험 후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들은 재경험과 침습 증상, 회피, 인지 및 감정의 부정적 변화, 각성이라는 심리적 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반응은 각각 혹은 중첩되어 나타난다. 앞서 양 부센터장이 말했던 것처럼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 트라우마의 특징 중 하나인 사업장에 대한 분노도 심리적 반응 중 하나다.

류 소장이 소개한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이 겪은 트라우마 증상은 다음과 같다.

■ 재경험과 침습 증상(갑자기 사고 기억이 떠오름)

“잠을 자지 못했다. 안 좋은 꿈을 꾸다가 중간에 깼다. 팔다리가 끊어져나가는 악몽을 꾼다.”

“크레인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가 못 피하고 사고를 당했다. 와이어가 끊어질 때 몸이 잘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살아있는 게 너무 미안했다. 숙소에 가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크레인이 나오자 발작을 했다.”

“사고 이후에는 피를 볼 수 없다. 큰소리가 나면 자주 놀라고 예민해진다. 며칠 전 어머님 혈관에 주사를 꼽다가 피가 터진 적이 있는데, 그 피를 보고 흥분해 간호사 멱살을 잡고 소란을 부렸다.”

■ 회피

“내게도 항상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타워크레인 쪽은 못 지나간다.”

“크레인 쪽으로 못 간다. 심장이 뛴다. 피하기 위해서 돌아가야 된다”

“멀러서 크레인이 보여도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불안감으로 인해 크레인을 보면 돌아가거나 밀폐된 공간을 찾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일용직으로 생활 중인데 크레인 있는 곳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크레인 없는 작은 곳만 일을 하러 다니다 보니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다. 사람이 죽고 몸이 잘린 것을 목격해 크레인만 보면 무섭다.”

■ 인지 및 감정의 부정적 변화

"과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고 사고 생각도 난다. 계속 불안한 상태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번씩 숨쉬기가 가쁘다. 이러다 숨 막혀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으로 힘들다.”

“매일 매일이 우울하고 즐겁지 않다. 왜 이런가 생각해보니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일하러 가는 부담이 있는 것 같다. 꼭 같은 곳이 아니어도 이런 사고는 내가 일하는 곳 전반에 나타날 수 있고 일하는 사람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보다 더 기운이 없고 늘 불안하고 짜증을 낸다.”

■ 각성

“그 후 일상에서 분노조절이 안 돼서 우리 집 어린 아기를 때려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생겼고 회사 내 안전요원과 다투어서 문제가 됐다. 안 피우던 담배를 한 갑 반 정도 피우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사고 이후 청각이 예민해져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화가 난다. 아이들이 놀다가 큰소리를 내면 이전에는 안 그랬는데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너무 공포스럽다. 이것만 넘어서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 밥 먹다가도 운다. 너무너무 화가 난다. 혼자 있을 때 막 소리 질렀다. 모든 문제에 대해 화가 난다. 죽고 싶은 생각도 든다.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 행정기관과 사업주 등에 대한 불만과 불신

“3개월 휴직을 했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퇴사를 하고 나니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삼성에서도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 너무 원망스러웠고 목소리 들어봐야 화만 날 것 같았다.”

“휴업급여를 십만 원 받았다. 회사의 사정으로 일할 수 없었는데 보상이 너무 적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향후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생계와 직결되는 수당을 꼭 해결해 달라. 이 말은 꼭 전달해 달라. 사람을 너무 소모품처럼 쓴다.”

“사고 후 상담을 받아 보겠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상담을 받고 싶다고 답했으며 이후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노동부를 방문했을 때 노동부 주재 상담사와 1시간 20분 정도 상담을 진행했으나 상담사가 듣기만 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어 상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고 후 노동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토론회 좌장을 맡았던 하효열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사고 경험 후 발생하는 노동자의 트라우마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늘 가슴 속에 남겨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며 불쑥 불쑥 솟아나는 기억과 감정들에 어떻게 대응할지 늘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심각한 정신적 불안 증세와 같은 문제들은 치료로 경감시킬 수 있지만 심리적 상처는 평생 관리해야 하기에 지속적인 트라우마 관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결국 트라우마 관리는 노동자가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많은 제언을 했다. 그 중 ‘사회적 지지’와 ‘노동자가 안전사고가 일어난 현장의 구조를 직접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소장은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사회적 지지의 부족이라는 위험 요인을 주목했다”며 “이 사회적 지지는 정서적 지지, 정보적 지지, 평가적 지지, 물질적 지지를 모두 포함하여 자신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에서 느끼는 유대감, 신뢰감, 자존감에 대해 어떻게 자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 소장은 사회적 지지의 개념을 정리하며 “결국 PTSD 자체는 자기를 위협하거나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요소로부터 내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겨야 치유가 되는데 노동자들이 어느 사업장에 가도 위험이 상존하고 위험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적 조건 아래에서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절대 느낄 수 없다”고 작업장 안전성 확보부터가 사회적 지지임을 지적했다.

또한 “노동자가 트라우마 치료 중간 과정에서 손실되는 경제적 부분(급여가 중단되는 문제, 상담치료 등의 비용)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회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PTSD는 악화 될 수 있기에 노동자가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해 트라우마를 관리 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김미숙 어머니(故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는 꿈에 계속 아들이 나와 잠을 못 주무시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시고 있는 상황이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시고 있다”며 한편으로 “어머니께서 당시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길 원하시고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신 후에 마지막 아들 보내는 모습과 그 과정까지 직접 설명을 듣기를 원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남은 아들의 모습이 험한 모습만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상처에 갇히지 않고 트라우마를 촉발한 사건과 대면하면서 트라우마를 약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류 소장이 말한 부분과도 맞닿아 있다. 류 소장은 “사고를 경험 한 노동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원인을 찾고 진상을 규명하는 활동에서 상실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심리적 상처의 치유도 가능하다”고 했다.

외상 후 성장

하효열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국회 토론회의 끝에서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하 위원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혹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 외상 후 성장의 의미라며 단순히 치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미래지향적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자의 트라우마와 그 집단 모든 개인들의 심리적 상처를 관리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토대가 전제”라고 강조했다.

류 소장과 조 국장에게 “노동자는 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이 일하다 사고를 당한 현장으로 돌아가려 할까”물었다. 불편한 질문이기도 하고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답은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아시다시피 자신이 업으로 삼을 정도의 일이면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것이다.

어떻게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다른 분야의 직종으로 전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일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다른 직업의 노동은 안전하다고 느낄까. 인간의 삶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에 노동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삶 전체를 잠식할 만큼 큰 상처다. 결국 노동자 트라우마 극복은 그들이 다시 일할 공간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