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미조직 노동자들은 속수무책
탄력근로제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미조직 노동자들은 속수무책
  • 송준혁 기자
  • 승인 2019.04.01 17:52
  • 수정 2019.04.0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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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합의안은 한국노총과 경총의 밀실합의
사회적 대화 필요하지만 노동3권과 투명성 보장 선행돼야

[인터뷰]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최근 탄력근로제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개악 반대’를 외치며투쟁을 진행하고 있고 경사노위 노동측 계층별 대표 3인은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반대하며 회의자체를 보이콧했다. ‘탄력근로제 개악 반대’를 외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던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에게 탄력근로제의 문제점에 관한 부분부터 사회적 대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사용자단체에서는 시장변동이나 계절적 수요 같이 집중근로가 필요한 시기가 있어 탄력근로제 도입을 주장한다. 사용자단체의 주장이 타당한 것 같기도 한데 탄력근로제 뭐가 문젠가?

탄력근로제는 현재 3개월 단위로 되어있는데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자는 게 한국노총과 경총 간 밀실합의의 골자인 것 같다. 탄력근로제는 쉽게 말해서 사용자가 임의로 근로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한주엔 64시간을 일하고 한주엔 40시간을 일하는 걸 6개월로 하자는 것이다.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면 산재사고나 노동자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운영되면 생체리듬이 파괴된다. 이 부분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데 노동자가 어느 주엔 많이 일하고 어느 주엔 적게 일하면 노동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의 생명, 신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비판적이다.

정부나 경총에서 이야기하는 게 우리나라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됐으니 그에 맞춰서 탄력근로제를 확대해야 된다고 얘기한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연간 2,000시간이 넘는데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나라들은 노동시간이 연간 1,700시간인 나라들이다. 현재도 과로사로 노동자들이 죽는 현실에서 노동시간을 OECD 평균인 연간 1700시간으로 맞춘 다음에 논의 한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장시간 노동체계에서는 근로시간을 고무줄 엿 장사 하듯이 하자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탄력근로제 어떤 노동자들에게, 어떤 업종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가?

종전에는 시장변동이나 계절적 수요처럼 일감이 한꺼번에 몰릴 때만 사용했다. 문제는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종전에는 탄력근로제가 적게 활용되니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6개월로 단위기간도 늘고 이제 일별이 아니라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도록 요건이 완화됐기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사용하지 않던 기업들도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탄력근로제를 하면 초과근무 수당을 안 줘도 되니 사용자 입장에선 공짜 노동을 얻고 노동자들은 공짜 노동을 강요받게 된다. 기업들이 최근에 탄력근로제 도입에 대비해 노무 컨설팅을 받고 있다. 탄력근로제를 사용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대규모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대책이 없다.

이번 경사노위 합의안을 경총과 한국노총의 밀실 합의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탄력근로제는 노동자의 생명이나 건강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에도 공개된 장소에서 토론하지 않았고 어디서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누가 부여했나. 공개된 장소에서 검증받지 않고 밀실에서 했기 때문에 밀실 합의라고 규탄하고 있다. 이 합의문이 ‘탄력근로제 관련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이라고 발표가 됐다. 경사노위 본회의 위원 17명 중 적어도 10명은 합의문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 과반수를 넘는 위원들이 합의문 내용 자체를 모르는데 그게 어떻게 경사노위 합의문일 수 있나. 절차상으로 중대한 하자가 있기 때문에 밀실 합의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 자체가 유명무실한 것 아닌가라는 비판도 있는데 사회적 대화가 정말 필요한가?

사회적 대화는 필요한데 사회적 대화를 할 만한 노사정 모두가 준비가 돼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용자나 정부, 노동계 모두가 정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서로가 열린 자세로 다가가는 게 필요하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화에서는 헌법상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하고 절차적인 부분에선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기 보다는 느리더라도 헌법상 노동3권이라는 큰 원칙하에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참여를 추진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생각하는 사회적 대화란 무엇이고 사회적 대화가 온전하게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있다면?

대화는 대화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대화의 결과물을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다. 짧은 기간 내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사회적 대화를 정부의 들러리로 세우는 건 청산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대로 충실히 이행을 한다면 충분히 운영될 수 있는데 사회적 대화를 운영하려는 주체들이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리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 파행이 일어났다.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좀 더 사회적 대화의 취지에 맞게 원점에 돌아가서 고민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조직 노동자들 목소리를 분명히 담는 게 필요하다. 탄력근로제를 예로 들어도 힘 센 노동조합은 탄력근로제를 막을 수 있겠지만 노동조합이 약하거나 미조직 노동자는 직접적 피해를 받게 된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목소리를 귀담아야 되고 이분들의 권익보호가 최우선 기준 중 하나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