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월호를 잊을 권리가 없다”
“우리는 세월호를 잊을 권리가 없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4.02 07:50
  • 수정 2019.04.01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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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촛불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안전사회는 오는가

[커버스토리] ④ 세월호 5주기에 던지는 질문

“당신의 2014년 4월 16일은 어땠나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2014년 4월 16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국가에 분노하고, 안전을 등한시한 우리사회의 민낯을 확인했다.

그날 느꼈던 충격과 슬픔은 개인을 넘어 우리사회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을 기억하며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광장으로 나와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갈망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질문을 던져본다. 그날 광장에서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안전사회는 왔는가?

세월호 참사가 남긴 것들

“세월호 광장으로 가주세요.” 택시 기사는 별다른 말없이 광화문 광장으로 차를 돌린다. 지난 3월 18일 광화문 광장 한쪽을 지켰던 세월호 천막과 노란 리본 조형물이 철거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광장에 머물렀던 노란 리본을 기억한다.

세월호 참사가 광장의 촛불로 번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무엇’을 보고 광장으로 향했을까? 안순호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상근대표는 답한다. 내가 내 삶의 안위만을 걱정하면 이런 참사가 벌어지는구나, 시민들이 깨달은 것이라고. 여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까지 더해졌다. 전원 구출했다는 오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그날 우리는 가라앉는 배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광장의 촛불을 가장 최전선에서 체감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그날’ 이후 늘 그렇듯 자신을 단원고 2학년 8반 준형이 아빠라고 소개한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내가 촛불을 들지 않으면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목격한 것”이라며 “이것이 세월호 참사가 촛불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여란 4~5년에 한 번 투표소에서 표를 던지는 것으로 대부분 그 역할을 마친다. 그러나 참여 민주주의는 다르다. 참여 민주주의는 각성된 시민들로부터 나와 권력이나 위계질서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시민들의 참여로 더욱 질 높은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권력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처럼 세월호 참사가 참여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로 ‘공감’을 꼽는다. “세월호 참사로 쓰러진 어린 학생들의 부모를 보면서 같은 자식을 둔 같은 부모로서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공분’이다. 국민을 보호하는 일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무력한 국가에 대한 공통의 분노. 신광영 교수는 “경제활동을 해서 세금을 내는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국민의 안전이 국가권력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내린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새롭게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과제도 남겼다. 우리 삶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할 안전이라는 가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늘 반복되는 안전 문제가 세월호 참사라는 큰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체감했다. 나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안전과 목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등가교환을 당연시했던 것을 이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간과하고 살았던 ‘안전’이라는 개념을 사람들 머릿속에 박히게 해준 사건”이라고 말한다. 가족협의회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외에도 ‘안전사회 건설’을 목 놓아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미해진 참여 민주주의?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현재까지 참여 민주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공동체들이 만들어졌으며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그 공동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들에게서 참여 민주주의의 현재를 엿볼 수 있을까?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는 “굉장히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국민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 단체와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 동력이 떨어지고 지속성을 가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참여 민주주의가 퇴색된 것일까? 이 질문에 신광영 교수는 공동체의 동력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답한다. 모든 조직은 조직 나름의 생애주기가 존재하고, 조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결국은 생업에 종사해야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단체나 기관으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하나의 공동체가 똑같은 형태와 방식으로 4~5년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신광영 교수는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하거나 확대된 이슈를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이슈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시켜 보편적인 시민들의 관심과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가져가면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조직의 탄력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안산에서 만들어진 공동체 ‘엄마의 노란손수건’ 오혜란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뭐라도 행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 촛불만 들고 있다가 아이들이 혹여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는데 우리들이 이렇게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더 강력하게 요구하고 목소리를 합쳐서 내보자고 해서 엄마의 노란손수건을 만들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희생자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었다. 한집 걸러 한집, 내 친구의 동생, 내 이웃의 죽음에 안산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뭐라도 해보자며 만들어진 공동체가 ‘엄마의 노란손수건(이하 엄마손)’이다.

엄마손을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주체는 아이들 일에는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엄마들’이다. 오혜란 엄마손 공동대표는 “회원 대부분은 사회활동에 관심도 없고 우리 가족만, 내 아이들만 잘 챙기면 되는 줄 알고 살았던 엄마들인데 어느 날 이런 일이 터지니까 나도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고, 나도 행동해야겠다고 해서 모인 분들”이라고 구성원을 소개했다.

엄마들은 작게는 동네에서, 크게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외치며 국회, 청와대를 뛰어다닐 때 도시락을 싸서 쫓아다녔다. 노란 리본을 만들고, 다른 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손도 다른 공동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었다. 촛불을 들다가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간 사람들, 생업에 종사하면서 예전만큼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오혜란 엄마손 공동대표는 이를 두고 엄마손 활동이 후퇴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은 인원이지만 안산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안산 외 지역에 사는 엄마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각 지역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엄마손에서 했다.”

엄마손은 세월호 참사로 출발한 공동체지만 공동체의 시야를 사회 전반으로 넓히는 일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는 중요한 중심이지만 이제는 엄마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노동, 성평등 등이 결국은 다 내 남편과 자식들이 겪는 내 문제라는 걸 바로 알고 우리의 요구를 펼쳐야 한다.” 이에 엄마손은 올해 사업으로 엄마들이 우리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의제들을 공부하는 ‘엄마학교’를 구상 중이다.

엄마손의 꿈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기댈 수 있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 우선시되는 세상,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키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유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작은 바람”이라고 전한다.

촛불 들고 외쳤던 안전사회 행방은…

흔히 ‘꺾였다’고 말하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우리가 간절하게 외쳤던 안전사회로 진입은 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우리 일상에서 계속 발생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그랬고, 태안화력발전소 사고가 그랬다. 우리는 또다시 안전을 놓쳤으며 죽음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변화는 있다.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는 “안전사회 건설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며 2017년 포항지진 사례를 들었다.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자, 수험생들의 안전을 우려한 정부는 다음날 예정이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1월 23일로 연기했다.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였지만 안전을 우선했기에 내린 조치였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라는 큰 비극 이후에도 안전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이 현재 국가의 역량이라고 지적하며, 역량 높은 국가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날의 과제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일상적인 안전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정책, 제도, 관행, 의식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민주주의가 또다시 요구된다.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은 우리사회가 안전사회로 가고 있는 지를 꾸준히 감시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를 어길시 강력한 처벌을 뒤따르게 해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안전한가? 우리는 세월호 6주기, 7주기… 매년 4월 16일이 다가올 때마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