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관심
기억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관심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4.02 07:49
  • 수정 2019.04.02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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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

[커버스토리] ⑥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람들은 ‘나라가 침몰했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나라에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시민들은 스스로, 서로를 침몰하는 과정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 위에서 잠시 떠다녔다. 국가라는 정신적 영토가 침몰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제 몸 하나 누일 뭍 하나 없었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다. 외침과 함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국가의 모습을 담은 정신적 영토를 만들어갔다. 

결심과 고백의 땅

그 영토의 층위 맨 밑바닥에 자리한 것은 결심과 고백의 땅이다. “잊지 않겠다”는 결심과 고백이다. 세월호 이후 인문학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책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4장 ‘인간성, 가족, 그리고 기억하는 행위에 관하여(이현정 저)’ 125페이지에 결심과 고백에 대해 자세히 서술돼 있다.

분명히 그 당시에는 뭔가 온 국민이 공감할 어떤 결연함이 있었다. 그 결연함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백 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처구니없는 국가의 대응에 대한 엄청난 충격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혼재된, 적어도 “저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는 않겠다”는 어떤 굳건한 결심이자 단호한 맹세였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은 죄 없는 아이들을 죽게 만든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메스로 온전히 도려내고 지금 이 순간부터 변혁을 위한 행동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정치적 선언이자, 만일 그런 움직임이 시작된다면 나 또한 참여하겠다는 적극적 동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결심과 고백의 땅을 만든 핵심 주체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다.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천막을 펼쳤고,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하고, 때로는 기나긴 도보행진을 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세력과 싸웠다. 또 다른 주체였던 시민들은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가 대표적인 전국 모임이고, 세월호 참사의 많은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들이 살고 있던 안산에서 만들어진 진실과 생명을 지키는 엄마들의 행동 ‘엄마의 노란손수건(이하 엄마손)’이 대표적인 지역 모임이다.

결심과 고백의 땅을 만든 핵심 의제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국가의 불성실한 대응, 베일에 싸여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생명보다 돈을 중시한 사회 구조이다. 이런 의제들을 종합하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사회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진실을 밝히고 알리는 활동이 결심과 고백의 땅 위에서 진행된 것이다.

올해는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결심과 고백의 땅이 만들어진 지 5년째다. 5년의 축적된 시간 동안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세월호가 인양됐다. 최근에는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해체하고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이안식까지 했다. 결심과 고백의 땅 위에 봄비가 내리는 듯하다. 봄비를 머금은 땅이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땅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세월호가 남긴 가치를 재확인하고 확산하고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는 4·16연대 5주기 목표에 대해 “세월호 참사 이후는 반드시 달라지게 하겠다는 약속을 위해 기억과 책임의 미래로 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작년과 전혀 다른 맥락 속의 활동은 아니라고 말하며 “세월호 참사 이후의 각종 참사들을 봤을 때 책임자들이 책임지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기억, 책임, 미래라고 했을 때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 책임자들이 반드시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고 그런 과정이 오늘에 내일을 묻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오혜란 엄마손 공동대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우리의 목표는 정확하게 진실을 밝혀라”지만 “진실을 알아내는 활동과 함께 중요한 것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시민들이 사회의 이면에 있던 진실들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 5주기는 우리사회가 지금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반성적 성찰을 하는 활동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 될 것 같다. 반성적 성찰을 위해 세월호 참사가 남긴 가치를 재확인하고 확산하는 활동을 전개할 두 단체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기점으로 진행하는 사업을 구체적으로 보면 확실해진다.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처벌 활동을 위해 작성한 책임자 명단을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홈페이지에 게재한 책임자 명단을 인명사전으로 만들기 위해 책임자 인명사전 국민추진운동도 전개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 관련한 모든 내용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해 세월호 참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활동도 한다.

특히나, 오는 4월 13일에 기억다짐 문화제를 진행해 세월호 참사 이후 축적된 자료를 시민들과 나누며 결심과 고백의 땅을 단단히 한다. 단단히 한 땅 위에는 세월호 참사가 남긴 안전사회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지역별 회원 및 조직에서 자기 지역의 안전 제도 실태 조사하고 개선 매뉴얼을 작성한다. 모인 안전 제도 실태 조사를 발표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시민 스스로가 안전 교육 강사로 활동 할 수 있는 시민 강사단 교육 사업도 진행한다.

엄마손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다시 알리는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잊혀가는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되새긴다. 엄마손은 엄마학교도 기획 중이다. 오혜란 엄마손 대표는 엄마들이 정치사회 이슈를 알아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엄마학교의 취지를 설명했다. 노동, 성평등, 민주주의, 인권 등의 문제는 나와 내 자식, 내 남편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에 대한 공부를 해야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4·16연대 2019년 5기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416연대의 운동 방향을 서술한 부분에 ‘기억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관심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것에 대해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는 “회상은 멈춘 것이고 기억은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일들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알고 인지하면서 그 땐 그랬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변해야 할지, 왜 변해야 할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우리는 해야 하겠죠”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우리사회는 침몰해 없어진 땅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 땅이 다시 유실되지 않기 위해서 땅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세월호가 남긴 가치가 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무엇일까.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

세월호라는 씨앗에서
싹 튼 참여 민주주의와 안전사회

세월호 참사가 낳은 참여 민주주의의 특이점은 공감과 배려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공감과 배려는 비슷한 감정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참여 민주주의 확산의 이유로 공감을 말했고, 장훈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배려를 말했다. 공감과 배려가 참여 민주주의를 낳았고, 확산시킬 동력이라는 이야기였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배려가 정말 힘이 된다”고 말문을 뗐다. “배려는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고 불의하게 공격받는 사람 막아주는 것”이라며 “이 사람이 불쌍해서 배려한다가 아닌 당연한 배려, 내가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언제나 놓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의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었으면 오늘까지 오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이전 사회가 배려가 없었던 사회임을 자각했다”며 배려가 존재하는 세월호 이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나섰다는 의의를 설명했다.

안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방향 설정은 “죽지 않을 권리”에서 출발한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충분히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국가가 구조를 방기한 정황들이 나왔다. 선원 18명만 정부에 의해 전원 구조됐고 탑승객 중 154명은 스스로 탈출하였으며 방송으로 송출된 장면과 달리 탈출한 이들 반 이상이 해경이 아닌 민간에 의해 구조됐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죽지 않아야 할 생명들이 죽음을 맞이한 장면을 시민들에게 목도하게 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국가의 안전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불신은 안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로 바뀌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도가 올라갔지만 구의역 참사에서부터 최근 故 김용균 씨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까지 안전 문제로 인한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기에 4·16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 그리고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각한 안전사회 염원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세월호라는 씨앗에서 싹튼 참여 민주주의와 안전사회 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416연대는 5기 정기총회에서 ‘전국적으로 세월호 참사 후 변화된 국민 안전에 관한 법 제도 개선 현황 실태를 조사하고 시민의 힘으로 안전사회의 초석을 다질 것’이라고 밝혔다.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에 의하면 여기서 ‘시민의 힘’이란 “시민이 감시자로 역할을 하며 내 주변부터 돌아보는 것, 그리고 문제가 있는 안전 분야에 대해 시민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 그리고 안전문제에 대한 책임자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어 안전 문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는 시민들 스스로가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만든 결심과 고백의 땅이다. 그 땅이 유지되고 새로운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한 기본 토양이 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사회에 남긴 가치들로 그 땅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 참여 민주주의로 만든 안전사회,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 결코 분리되지 않은 두 가치가 우리사회를 세월호 참사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