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기억의 영토화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기억의 영토화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4.02 07:50
  • 수정 2019.04.01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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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억하길 욕망한다, 잊어서는 안 되니까

[커버스토리] ⑦ 인터뷰_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추모 공간,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과 같은 기억공간이 형성됐다. 그 중에 많은 기억공간들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기억공간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이 해체되고 새로운 추모기억공간으로 바뀌는 것, 안산에 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서는 것. 이러한 공간의 탄생과 소멸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연구한 학자가 있다.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다. 신 교수는 <기억의 영토화 – 세월호 기억공간 형성과정을 사례로> 논문을 썼다. 기억의 영토화 과정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낯설지만 챙겨야 할 개념인 세월호 참사 기억의 영토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신혜란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세월호 기억은 소멸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다가왔습니까?

개인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당시 제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죠. 세월호 참사 직후에 아는 분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한국에 온 거 실감나지?”라고 물으셨어요.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총체적인 시스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세월호 참사라는 것이라는 뜻이었겠죠.

SNS에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요. 그리고 아이를 둔 엄마이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고요. 세월호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거죠.

그래도 저는 학자니까 학문적인 글을 써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세월호 참사는 잊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기억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기억의 영토화’ 과정을 거치게 돼요. 기억의 영토화 과정에서 분명히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기억이 소멸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도 해요. 적어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은 소멸해서는 안 된다는 소망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시 마주하려 한 것이고요.

-기억의 영토화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기억의 영토화는 공간을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공간 안을 물리적으로 구성하며 담론을 생산해 특정 기억의 공간적 경계를 만들고 재구성하는 활동을 말해요. 기억의 영토화는 단계를 거칩니다. 기억의 영토화가 일어나게 되면 기억의 탈영토화로 이어지고 기억의 탈영토화는 기억의 재영토화로 이어져요.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기억공간인데요. 기억공간은 과거사건의 상징성을 현재와 미래에 공간적/물질적으로 재현한 장소에요. 기억의 영토화 과정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직접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욕망으로 나아가다

-세월호 참사는 어떤 기억의 영토화 과정을 거치고 있나요?

간략하게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너무나 많은 생명이 한 날 한 시에 죽은 모습을 모두가 봤어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고 분노했죠. 그래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고요. 우리사회의 아주 큰 분기점이 될 만한 사건인 거죠. 믿었던 국가 시스템은 없었으니까요.

그러한 결절점에서 사람들은 기억하길 욕망해요. 잊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머리와 마음에 있던 기억을 밖으로 꺼내 형상화 시켜요. 실재가 있어야 기억하려는 욕망이 유지가 되거든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대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천막이 세워졌고 시민들이 곳곳에서 서명대를 열고 서명을 받고 안산에는 기억교실을 만들고 팽목항으로 가서 리본도 달고요. 이러한 행위로 만들어진 물리적 공간이 기억공간이고 동시에 기억의 영토화에요.

그 다음에 기억의 탈영토화가 일어나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 공세가 기억의 탈영토화에요. 광화문 안에 있던 세월호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거나 안산에 있는 기억교실을 존치하지 않고 그만 닫아야 한다든가. 이러한 의견들이 세월호 참사 기억을 방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나오죠. 자신들의 의견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영토를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두 영토가 만나는 순간, 충돌이 일어나요. 세월호 천막 농성 당시 유가족들이 단식을 했는데 그 앞에서 일베 회원들이 폭식 투쟁을 했잖아요. 이러면서 탈영토화가 진행되죠.

기억의 재영토화는 이러한 정치공세를 통한 탈영토화 시도를 막아내면서 일어나요. 정치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연대했잖아요. 사람들이 더 많이 기억공간에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의 기억에서 무엇을 더 기억해야 하냐라는 논의도 오갈 것이고요. 이게 재영토화 인거죠. 그런데 기억의 재영토화가 좋은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건 아니에요. 탈영토화로 인해 한 기억이 일방적으로 사라지기도 하죠.

-발표한 논문을 보면 결론과 함의 부분은 ‘피해자, 생존자, 유족과 기억공간 형성의 과정을 함께 하려는 공감의 욕망이 전문지식으로 슬픔관광을 성공시키고 싶은 욕망을 이길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관건’이라고 맺어집니다. 안산에 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는 부분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큰 도시개발의 한 부분으로 기억공간이 발전할 때 기억의 측면에서 희생자와 유족들의 역할보다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역할이 커져요. 예산이 커지고 공식적인 기억의 영토화가 진행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기억공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외부인들의 슬픔관광이 기억의 영토화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영토를 확장하게 해요. 망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한 방법 중 하나가 관광지화이거든요. 성찰의 메시지를 외부인들에게 계속 던져주기 때문이죠. 좋은 방법이에요.

그런데 정부가 주도하는 기억공간을 형성하다보면 기억공간의 기능적인 측면과 심미적인 측면을 정부와 실행하는 전문가들이 고민해요. 그러다보면 기억공간이 가지는 성찰적 메시지가 옅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안산 생명안전공원도 마찬가지에요. 건립에 반대하는 세력과는 계속 이야기와 담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기억공간의 의미를 지킬 수 있죠.

오히려 건립을 맡은 정부와 전문가는 유가족과 이야기를 더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정부와 전문가가 이러한 의도로 설계하겠다는 계획이 너무 전문적이라 이해를 하지 못할 수 있고 정부와 전문가가 유가족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국 건립이 되고 실체화 됐을 때 갈등이 벌어져요. 무엇보다도 정부와 전문가가 유가족이 정확히 어떤 지점을 원하는지 듣고 그들의 상태를 이해해야 하고 기억공간의 의미에 대해서 자주 토론을 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사회에 참여 민주주의와 안전사회의 가치가 대두됐는데 기억공간과 어떻게 맞닿아 있나요.

순환하는 관계죠. 참여 민주주의와 안전사회의 가치는 세월호 기억공간을 통해서 퍼져나갔고 시민들은 그것에 공감하면서 기억을 강화하는 거예요. 기억의 영토화가 공고하게 일어나는 선순환이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여러 모임이 있는데 기억의 영토화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이 모임들이 세월호 참사로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민주주의, 인권, 노동, 안전사회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영토화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전시실과 박물관 같은 형태의 기억공간만이 기억의 영토화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모인 모임 자체도 기억공간이 될 수 있어요. 방금 말했던 것처럼 참여 민주주의를 직접 행한 곳이기도 하니 선순환적인 기억의 영토화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모임에서 정치사회적 자각을 통해 민주주의, 인권, 평등을 말하는 것 역시 기억의 영토화를 공고히 해요.

한 기억을 망각하는 한 편에는 기억공간에서 전하는 메시지에 수신자가 피로감을 느낄 때인데 새로운 아젠다로 메시지를 발전시키면서 기억은 지켜지죠. 다만, 세월호 참사와 이을 수 없는 아주 먼 아젠다로 흘러간다면 고리가 약해 오히려 기억의 영토화를 방해하겠죠.

-우리사회에서 세월호 기억의 영토화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사회는 세월호 참사 당일에 생중계로 구할 수 있다는 거짓을 봤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진실을 봤어요. 국민들은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공통된 질문을 마음에 품었어요. 이 질문은 분노로 나아갔어요.

특히나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다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면서 분노가 진짜 자기의 분노로 바뀌었죠. 총체적 난국이었던 국가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욕망으로 나아가요. 이러한 욕망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세월호 기억의 영토화가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