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노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
[김란영의 콕콕] 노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4.04 15:10
  • 수정 2019.04.04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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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우리나라 노동조합 비조직률이 88%다.” 김장호 숙명여대 명예교수(경제학)는 “노조 쪽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손경식 경총 회장의 발언에 “아직 노조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2%로, 전체 노조 조직률에 비하면 50분의 1 수준이고, 300인 이상 사업장(57.3%)과 비교하면 거의 300분의 1에 그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노조가 더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니 꼭 어느 노조의 홍보담당자가 된 듯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시절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길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게다가 이쪽 업계(?)에 들어온 이상,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조합이란 왜 존재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노동 자체가 중요한 것처럼. 그런데 정말 그럴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일을 하고, 그래서 번 돈으로 자기 삶을 계획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족들과 편안한 삶을 꾸리는 것. 결국 그것이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본질이 아닐까?” 최근 만난 노동조합 관계자 A씨는 우리가 ‘노동자’이기 전에 ‘인간’이라고, 그래서 노동운동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은 노동운동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임금인상 등 그 자체를 위한 프레임 속에 갇혀버린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정말이지 정부가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ILO 핵심협약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ILO를 잘 모르는 이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노조의 플래카드엔 '개악'이란 구호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소위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표하고 증진하는데 목적을 둔 이익집단으로 이해된다. 마찬가지로 정당은 정권의 획득을 위해,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사회적으로 합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들에게 ‘또 월급을 올려 달라한다’고,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다’고, ‘재벌, 대기업은 악의 근원’이라고 비판한다.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가 깨어야 하는 '노조다움'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을 위해 연대는 더 필요하다. 다만, 노동계가 남은 88%와 함께하기 위해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보다 나은 우리의 일터를 위해서, 보다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계는 조직을 뛰어넘고, 사업장을 뛰어넘어서, 언젠가는 대기업 사원이 아르바이트생 어깨까지도 토닥여줄 수 있지 않을까?

노동계가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법 개정으로 국회 앞이 떠들썩한 요즘,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