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6년의 기다림
[최은혜의 온기] 6년의 기다림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4.09 18:01
  • 수정 2019.04.09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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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여행을 떠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제가 탄 차가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만큼 설레는 순간은 드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톨게이트는 누구나에게 설렘을 선사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기업됩니다.

특히나 저는 톨게이트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첫 직장이 한국도로공사였기 때문입니다. 톨게이트가 보일 때마다 당신은 항상 '도로공사 다니던 시절'의 얘기를 했습니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를 지겹지도 않은지 매번 해서 이제는 귀에 인이 박혔습니다.

지금은 거의 하이패스를 이용하니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톨게이트를 지납니다. 그래서 가끔 하이패스를 이용하지 않고 톨게이트 수납원에 직접 요금을 수납하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요금을 직접 수납할 때면 어머니는 톨게이트 수납원에게 친절할 것을 강조 또 강조하곤 했습니다.

지난 4일, 대법원 앞에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700여 명이 모였습니다. 2013년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날, 각 지역에서 야간 근무가 끝나고 한숨도 자지 않고 상경한 노동자, 새벽밥 먹고 상경해 집회가 끝나고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노동자, 그리고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근무를 마치고 급히 달려오는 노동자 등 많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가 대법원 앞 길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무분별한 외주화로 인해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에 시달린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노동조합에 속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연대체를 구성하여 한 목소리로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으로 인정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로공사의 계획을 지지한 노동조합의 성명서에 서명할 것을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에게 강요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법원 판결에서 노동자측이 승소할 경우, 한국도로공사는 노동자들을 직고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가 판결 전에 자회사 전환으로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햇수로 6년, 기약 없는 대법원에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한 빠른 판결을 바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2년 마다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3년 소송을 제기해 2015년에 1심에서 승소했고, 올해는 2017년 2심 승소 판결을 받은 지 다시 2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판결이 나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과 관련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정권 시절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한 이른바 '사법 농단' 재판들은 그렇게 빨리 마무리짓더니,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는 세월아 네월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립니다.

대법원 앞에 알록달록 조끼를 입고 모여 앉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옷차림은 꽃놀이를 가는 상춘객의 옷 색깔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춘객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꽃놀이를 가듯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 역시 다시 서울로 올 땐 즐거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