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사막 위로 느시가 날아간다
[박완순의 얼글] 사막 위로 느시가 날아간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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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느시는 새다. 두루미목 느시과이고 천연기념물 제206호이며 겨울철새다. 들칠면조라고도 부른다. 갑자기 느시라는 새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새 폴더를 만들다보면 무작위로 지어지는 새 폴더의 이름 때문이다.

새 폴더를 계속 만들어본 결과 38번째에 느시라는 폴더가 나왔다. 만든 새 폴더를 다 지우고 다시 새 폴더를 계속 만들어봤다. 8번째에 느시라는 폴더가 나왔다. 몇 번의 공정을 거친 결과 느시는 무작위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 폴더를 계속 만들어본 까닭은 김엄지 작가의 소설 ‘느시’에 나오는 어떤 장면 때문이다. 소설 ‘느시’의 주인공 R은 회사에서 상사의 꾸짖음을 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마음에 드는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바탕화면에 새 폴더를 만든다. R은 느시라는 이름의 새를 몰랐고 마음에 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느시라는 폴더 앞에서 클릭을 멈춘다.

R이 느시라는 이름의 폴더를 만나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많은 클릭이라는 수고로움에도 새 폴더를 만들어본 연유다. 사실 복잡미묘한 감정보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분이 더 컸다. 왜 그랬을까. 잠시 ‘느시’를 다시 읽어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R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달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R은 반복적인 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음식, 반복되는 회사의 건조한 온풍기 바람, 반복되는 회색 같은 분위기, 반복되는 무기력, 반복되는 부적응. 이것들을 겪고 있는 R은 건조한 사막 위에 던저져 계속 걷는 형벌적 삶을 살고 있는 상태와도 같다. 사막을 걸으면 계속 똑같은 건조한 사막과 서걱한 모래바람이 반복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왜, R은 건조한 사막 위에 내던져진 것일까. 감히 추측하건데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일말의 보람도 느끼지 못해서 일 것이다. 자신이 노동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서 일 것이다.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직장생활만족도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임금이 낮아서, 일-가정 병립이 안 되는 장시간 노동을 해서(야근을 해서) 등등의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흥미로운 이유 하나가 자신의 업무에 대한 독립성과 재량권이다. 건조한 노동을 반복하게 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타파해야겠지만 자신의 업무에 대한 독립성과 재량권을 가져야, 자신의 업무에 주체적일 수 있어야 자기 노동을 자기 노동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R은 자신의 노동 시간과 노동 공간에서 주체적이지 못하다. 물론 개인 탓이 아니다. R을 주체적이지 못하게 하는 사회구조와 사회문화적 분위기 때문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R은 ‘느시’라는 폴더를 만들면서 그랬을 것이다. 오랜만에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온 클릭이었을 것이다. 이전의 반복적인 클릭과는 사뭇 다른 감정을 전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설의 마지막은 R이 반복적이고 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R은 알을 깨지 못하고 느시가 돼 날아가지 못했다. 부조리한 일상이다.

이 부조리한 모습이 소설 속 허구의 모습일까. 허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자의 노동 만족도를 낮추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맞고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자기 노동에 대한 충분한 독립권과 재량권을 보장 받아야 하는 것도 맞다. 자신이 노동을 통해 전문 인력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훈련 제도도 마련돼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쌀로 밥 짓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다 알지만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카뮈가 말한 것처럼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하지만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당신과 나인 R이 질식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