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공은 이제 정부로
ILO 핵심협약, 공은 이제 정부로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4.15 17:43
  • 수정 2019.04.15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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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노동3권 축소하는 것” 반발
경영계, “공익위원안 노사간 입장 공정하게 포함 못해”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ILO 핵심협약의 공이 정부로 넘어갔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이하 공익위원)들이 입장발표를 통해 “ILO 핵심협약 관련 노동법 개정 논의는 오늘로 마무리한다”고 밝히며 정부의 책임있는 모습을 주문했다.

15일 오후 1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관계제도·관행 개선 방향에 관한 공익위원의 입장발표가 있었다. 공익위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 의제에 관하여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점을 고려하여 공익위원 일동이 각종 쟁점에 대한 공익위원 최종안을 제시하고 이를 기초로 노사의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며 정부와 국회에 관련 조치를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박수근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위원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된 법 개정 의제에 대한 위원회 논의는 오늘로 마무리됐다”고 밝히며 “그 동안 노사정 부대표급 비공식협상에서 구체적인 준거안이 제시되면 좋겠다는 비공식적 요청이 있어 공익위원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익위원안을 준거안으로 삼아 노사정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승욱 공익위원은 “노사정 간의 중재적 역할을 하는 것이 공익위원의 역할”이라며 “협상이 교착상태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을 계기로 노사정이 면밀하게 분석해서 추가적으로 부대표급 혹은 대표급 협상의 개시가 있길 바란다”며 “이에 대한 국회의 존중과 관련 법안 입법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박은정 공익위원은 “노사관계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의 논의가 ‘선입법’을 위한 논의였다”며 “합의에 실패한 마당에 ‘선입법’을 고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대안으로 정부의 안을 마련해 국회의 동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공익위원안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방향을 담고 있다.

먼저 단결권과 관련해 해고자, 실업자, 공무원, 교원의 노조 가입이나 활동이 가능한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을 권고했다. 이를 통해 공무원의 노조 가입 직급 제한이 삭제되고 퇴직공무원과 교원의 조합원 자격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단 인사나 교정, 수사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노조 가입 제한을 권고안에 포함했다.

단체교섭권에 대해서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정비를 통해 현행 개별교섭 동의 방식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사업장 내 교섭단위 통합 및 변경제도’를 신설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현행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짧다고 판단,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할 것을 주문했다.

단체행동권과 관련해서는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쟁의 시 사업장 점거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했다. 또한 공익위원안은 쟁의행위 중 대체근로에 대해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것을 권고했는데, 소수의견으로 파견근로를 제외한 대체고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는 결사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단체교섭권 행사 등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자율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노사정 협의를 조속히 개시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업무방해죄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포함한 노동관계법 처벌규정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정비할 것을 운영위원회에 주문하기도 했다.

노동계·경영계 “공익위원안 수용 못해”

이날 공익위원안에 대해 노동계는 “국제노동기준보다 후퇴한 안”이라 평가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 및 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ILO 회원국의 의무사항이지 거래대상이 아니다”며 “공익위원의 정부에 대한 행정적 조치 착수 요구는 ILO 핵심비준과 관계없는 개악”이라 비판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의 주체는 정부”라면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선비준-후입법’ 조치를 주문했다.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 역시 “이번 공익위원안에 담긴 단체행동 시 직장점거 규제나 파견노동을 제외한 대체고용 허용은 국제노동기준에 한참 미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익위원은 최소한 ILO 협약 취지에 맞는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며 “국내 노동권을 국제노동기준에 턱걸이시키기는커녕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익위원안에 대해 경영계 역시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실체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며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노사간 입장을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익위원만의 입장이 경사노위의 공식 의견으로 채택되지 못해 공신력이 없다”며 “추가적인 논의과정에서 별도의 입장을 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역시 유감을 표했다. 전경련은 “노동계의 단결권 강화 요구는 대부분 포함됐으나 경영계의 방어권 보완 주요 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노사간 입장을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9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EU FTA 상의 노동관련 의무인 핵심협약 비준이 수년간 지연되고 있어 조속한 시일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가시적 진전이 없을 경우 전문가 패널 개시가 불가피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또한 같은 날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서 신뢰 측면에서 비준하는 게 중요하다”며 “분쟁 해결 절차로 간다면 평판에도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런 걸 피하고자 분쟁해결 절차로 넘어가기 전에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경영계, EU의 압박이 계속 되는 가운데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공을 받게 된 정부의 결정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