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세상의 모든 조장풍을 위하여
[최은혜의 온기] 세상의 모든 조장풍을 위하여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4.17 10:29
  • 수정 2019.04.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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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 기자ehchoi@laborplus.co.kr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근 노사문제를 다루는 지상파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바로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입니다. 노사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상파에서 노사문제를 다룬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제작지원에 한국공인노무사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제작진이 단단히 준비한 것 같습니다.

‘조장풍’은 왕년의 별명이 조장풍인 6년차 근로감독관 조진갑의 이야기입니다. 월급을 떼여 울고 있는 학생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그 돈(떼인 월급)은 잊고, 가서 공부라도 한 자 더 해”라고 말할 정도로 무기력한 근로감독관인 조장풍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상적인 근로감독관으로 각성합니다.

드라마 1회에는 “근로감독관 한 명 당 맡은 사업장 수만 천 개가 넘어요. 동시에 처리해야하는 민원이 50건이 넘는데”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실제로 2015년 12월, 전국의 근로감독관 977명 전체 중 58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근로감독관 한 명이 월 평균 45.4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근로감독관 한 명이 많은 사건을 담당하는 이유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인력충원이 시급하다고 답한 근로감독관이 83%에 달합니다. 물론 2017년과 2018년에 800명 가까이 증원하고 올해도 500명 이상 증원할 계획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근로감독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겁니다. 근로감독관은 한 달에 25.8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약 2배에 해당하는 45.4건의 사건을 처리합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근로감독관 1인이 담당하는 사업장 수는 1,400개에 달합니다. 또한 2016년 한 해 동안 임금체불 건만 22만 건 가량이 접수됐습니다. 모든 사건을 꼼꼼하게 살필 여력이 없다보니 노동자나 대중은 ‘근로감독관이 할 일을 똑바로 안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겁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2019년 사업장 감독 종합계획’을 통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사업장의 96%가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입니다. 게다가 소규모 사업장은 임금체불이 잦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발표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부처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도·감독할 의무가 있는 근로감독관은 야근과 공짜노동을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워라밸(Work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습니다. 노동자에게 적정시간, 적정노동이 중요한 만큼 근로감독관에게도 적정시간, 적정노동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국가의 복지 확대로 공무원은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노동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의 저녁을 뺏는 자가당착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드라마에서 조장풍은 현실에서 보고 싶은 근로감독관의 모습을 계속 보여줄 것입니다. 조장풍의 모습이 드라마로만 남지 않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근로감독관이 조장풍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근로감독관의 인력 충원이 선행돼야 우리사회의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