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직불제에 시름하는 지자체 공무원... 마을 이장님들도 “지켜보기 딱해”
농업 직불제에 시름하는 지자체 공무원... 마을 이장님들도 “지켜보기 딱해”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4.29 13:18
  • 수정 2019.04.29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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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1명이 1,009명 담당
농관원 공동접수로 경영체 등록 서류까지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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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직원들은 밥 먹을 새도 없어요. 맨날 밤 9시까지 불 켜놓고 특근하고… 좋은 시대 아니에유? 간편하게 줄일 수 있는 건 줄여야지. 안 됐어요. 내가 봐도.”

충청남도 천안시 ○○면사무소.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을 이장을 맡았다는 김복동 씨(가명·65)는 창구 너머로 수진 씨(가명·36)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농업직불제 서류 정리에 한창인 수진 씨는 지난 2015년부터 ○○면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농업직 공무원(7급)이다. 소위, ‘농(農)’자(字)가 들어간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는 수진 씨. ○○면사무소에서 농업직 공무원은 수진 씨 한 사람이다.

해마다 농업 업무 느는데
인력은 그대로

천안시 관계자에 따르면 읍면 행정 업무 가운데 농업 행정 업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60~70%. 하지만 농업직 공무원은 사무소마다 1~2명꼴이다. 업무량에 비해 인력이 적어 공무원들 사이에선 기피 직군이 된 지 오래. 특히 이들의 업무는 농업직불제로 악명이 ‘자자’하다.

익명을 요청한 천안시 공무원 A씨는 “읍면동에서 직불제는 첫 번째 기피 업무다. 특히 지자체 고유 업무였던 직불제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의 농업경영체 등록·변경 업무와 연계가 되면서 기존보다 업무가 늘고 복잡해졌다”고 전했다. 공무원 B씨도 “직불제는 농업직 공무원들이 아니더라도 관련 업무를 맡아본 공무원들은 다 안다. 해가 지날수록 직불제 업무의 어려움과 각종 농업 지원 사업은 증가하는데, 인력은 그대로다. 정말이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진 씨는 “전임자(前任者)가 ‘직불금 신청 기간엔 퇴근해도 밥 먹지 말고 9시까지 일하다 가라’는 말을 하고 갔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젠 이해가 간다”고 털어놨다. 4살과 7살. 두 아이를 둔 수진 씨는 퇴근 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야근 대신 ‘새벽 4시 출근’을 택했다.

농업직불제가 뭐길래?

농업직불제는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내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자 농민들을 보호하고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으로 2001년부터 시행해왔다. 농민들은 매년 2월과 4월 사이에 농지 소재지 읍면동사무소나 주민등록지 농관원에 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다. 보조금은 1헥타르(ha)당 약 120만 원 정도가 지원된다. 다만, 직불금을 받으려면 농업경영체에 등록한 농업인이나 농업법인이어야 한다. 농업경영체 등록제는 농관원이 개별 농가를 경영 여건에 따라 유형화하고 수집된 정보를 활용해 각 농가 유형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고자 2008년에 도입한 제도다. 이러한 농업경영체 등록이 직불금 신청 때 선행 조건이 된 것은 2014년 읍면동과 농관원이 통합신청서(농업경영체 등록·변경+직불제 신청)로 직불금 신청을 공동으로 받으면서다.

하지만, 직불금 신청을 공동으로 받기 시작했을 뿐, 두 기관이 업무까지 통합한 것은 아니다. 직불제 주관은 농관원으로 돼 있지만, 직불금 신청 접수와 최종 집행은 지자체가, 이행점검과 경영체 등록은 농관원 소관이다. 두 기관이 적용받는 법도 엄연히 다르다. 지자체와 농관원은 각각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과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전산망 역시 통합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농관원과 지자체가 각각 통합신청서를 받고서도, 서로에게 필요한 서류를 다시 우편이나 방문, FAX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 이를테면, 농관원은 통합신청서를 받고 전산에 경영체 등록에 관한 내용을 입력한 뒤 직불금 신청서와 첨부자료 등을 해당 농지 소재지 읍면동 사무소에 보내고, 읍면동 사무소에선 경영체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농관원에 보낸 뒤 전산 입력을 확인하고, 그 이후에야 지자체 직불금 전산에 신청 내용을 입력하는 식이다. 전산망이 이원화돼 중복 등록 여부나 부적격자 선별 등 정보를 상호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불필요한 행정 낭비”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민원 보랴, 입력하랴, 누락된 서류 챙기랴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자체 직불금 업무에 필요한 서류들이 빠지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지자체 농업직 공무원들 사이에선 “농관원에선 경영체 업무를 본 뒤 서류를 읍면동에 던져버리는 듯하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수진 씨는 “빠진 서류를 챙기기 위해 신청자에게 전화를 걸면 이미 (농관원에 서류를) 다 제출했는데 또 내야 하냐고 따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종적으로 직불금을 지급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읍면동에선 농관원에서 빠뜨린 서류들까지 직접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지자체는 공동신청을 받으면서도 농관원의 경영체 등록 업무에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이 수진 씨의 설명이다. 수진 씨는 “신청자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 합당한지를 봐야 하는데,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면적은 얼마인지, 농사짓는 땅의 면적은 얼마인지 등 경영체에 합당한지부터 본다. 농관원 전산에 먼저 경영체 내용이 정확하게 입력돼야 직불금도 제대로 집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자체가 농관원의 업무까지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진 씨는 직불금 신청자의 농지가 지역을 달리할 경우 경작 면적이 넓은 농지 소재지 읍면동에 신청하도록 돼 있는 직불제 지침을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 한 농민이 농관원 천안사무소에 가서 직불금을 신청했다. 천안시에 주소를 두고 천안시 ○○면과 아산시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그런데 농관원은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시(市)를 달리하는데도 아산시에만 서류를 보냈다. 아산시에서도 우리 쪽에 서류를 보내주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담당자도 모르고 있었다. 검토를 소홀히 했다면 ○○면 농지는 빠질 뻔 했던 것이다.” 수진 씨는 “아무래도 직불제가 시 예산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타 지자체에서도 책임 소지가 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수 서류들을 꼼꼼히 챙긴 뒤에 일일이 전산에 입력하고도 행여나 입력하면서 필지 하나 빠뜨렸을까 2~3번 검토까지 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직불제 신청 기간이 농정 지원 사업이 집중된 영농 준비 기간과 겹쳐 직불제 업무에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평일 낮에는 민원인들이 계속 오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개 리를 보지 못한다.” 수진 씨가 주말 초과 근무 수당이 최대 4시간밖에 지급되지 않는데도 주말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이유다.

하지만 ‘연중 사업’인 직불제 업무는 신청받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5월부터는 대상농지, 농업인여부, 관외거주자 부정신청 등 경작 사실을 조사해야 한다. 또 고정직불금이 지급되는 10월 전까지 농관원이 이행점검한 조사 결과와 계속해서 변동되는 경영체 정보를 반영해서 직불금 전산에 입력해야 한다.

이렇게 수진 씨 혼자서 담당하는 직불금 지급 대상 농업인은 모두 730여 명. 2018년 기준 천안시 전체 평균은 1,009명이다. 다행히 직불금 신청 기간에 보조 인력 1명을 둘 수 있지만, 인건비 추가 예산은 없이 기존 예산에서 보조원을 채용하도록 지침만 변경돼 최대 23일 정도 밖에 사람을 쓰지 못한다.

수진 씨는 “한 사람이 몇백 명씩을 관리하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책임은 담당자 혼자서 져야 한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1,000,000평에서 자칫 ‘0’ 하나라도 빼먹었다간 큰 일이 난다.” 수진 씨는 최근 한 면에선 농업직 공무원이 빠진 필지를 보상하기 위해 개인 지갑에서 60만 원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조직개편을 해서 직불제 전담인력을 한 명이라도 증원하거나 농업만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팀이 꾸려졌으면 좋겠다”면서도 “당장은 보조원 인건비라도 증액을 해서 최소한 3개월은 쓸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제도 시행 앞서 현장과 소통해야

이에 천안시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몇 년 간 농식품부(농가소득안정추진단)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공주석 천안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제도를 만들고 시행을 하려면 먼저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안시공무원노조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이연월)과 함께 17일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면담을 하고 읍면동 직불제 고유 업무제 운영, 직불제 전산의 경영체 정보 연계화, 직불제 주관 지자체로 이관 등을 요구했다. 당시 이 장관은 “국가사무와 지자체 업무의 분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농식품부 관계자도 “오히려 농관원 입장에선 ‘우리가 직불제 신청까지 받아야 하냐’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 “당연히 자기 일이 아니니 소홀할 수밖에 없다. 조건을 따져야 하는 직불제 신청 서류와 달리 경영체 등록 서류는 간단하다. 업무는 이원화돼있는데 신청서만 일원화돼 있어서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한 기관에서 맡는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