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첫 유급휴일 노동절 맞은 어느 건설노동자
40년 만에 첫 유급휴일 노동절 맞은 어느 건설노동자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5.01 18:10
  • 수정 2019.05.0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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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노동절에 2019년 임단협투쟁 선포
건설노조 2019년 입단협투쟁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건설산업연맹 장옥기 위원장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건설노조 2019년 입단협투쟁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건설산업연맹 장옥기 위원장.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경기도 마장면에서 형틀 목수로 일하고 있는 김명호 씨는 은퇴를 앞둔 40년 경력의 건설노동자다. 김 씨에게 2019년 5월 1일 노동절은 특별하다. 목수 일을 한 지 40년 만에 첫 유급휴일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씨는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위원장 이영철, 이하 건설노조)에 가입한 지 두 달된 신입조합원이다.

김 씨를 5월 1일 12시 30분부터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건설노조 노동절 집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1만여 명의 건설노동자가 주황색, 초록색, 흰색의 안전모를 쓰고 시청광장에 빼곡이 앉아 있어 김 씨를 찾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1만여 명의 건설노동자들은 2019년 임단협투쟁에서 ▲일요휴무 ▲주휴수당 ▲중앙임단협을 쟁취하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 씨 역시 그 목소리에 동참하고 있었다.

신입 조합원인 김 씨는 “은퇴할 나이지만 하루를 살아도 사람다운 대우를 받으면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건설노조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문을 뗐다. 김 씨는 40년 전 처음 형틀 목수로 일 할 때 일당 7,500원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21만 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김 씨는 “금액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7,500원 받아도 쌀 한 가마니 사고 돈이 몇 천 원씩 남았는데, 지금은 쌀 한 가마니 사면 남는 게 없다”고 임금 인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김 씨는 “원청, 전문건설업체, 직영팀장 등등으로 내려오는 일감 구조 때문에 임금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며 지난 40년 간의 일을 회상했다. 김 씨는 건설노조에서 계속 제기하는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로 인한 임금, 일자리 문제를 40년 동안 겪었다.

이어 김 씨는 “노동절에도 쉬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만큼은 유급휴일 노동절을 지낸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는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로 한다고 명시한다. 김 씨는 40년 동안 법 밖에 존재했던 노동자였던 것이다.

다른 건설노동자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절 5월 1일을 유급휴일로 지낸지는 2년 밖에 안 됐다. 건설노조가 2017년 첫 중앙교섭으로 노동절을 유급휴일로 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내 가능했다. 그나마 이 합의도 모든 건설노동자에게 해당하지는 않는다. 토목건축 현장의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절 유급휴일을 포함한 같은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씨도 “들어올 후배 조합원이나 모든 건설노동자가 고생하지 않고 일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40년 동안 내가 겪었던 고생을 똑같이 누군가가 겪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도 덧붙였다. 늦깎이 조합원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넓어보였다. 건설노조는 2019년 임단협투쟁 선포식을 마치고 같은 자리에서 민주노총 노동절 본 대회를 이어갔다. 김 씨 역시 서울시청 초록빛 잔디 광장 위에 흰색 안전모를 쓰고 자리를 지켰다.

주황색 안전모를 쓰고 집회에 참가한 건설노동자들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주황색 안전모를 쓰고 집회에 참가한 건설노동자들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