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한다는 말만 할 뿐 무엇이 바뀌는지 무관심
변화한다는 말만 할 뿐 무엇이 바뀌는지 무관심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9.05.04 10:06
  • 수정 2019.05.0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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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대응은 단편적으로만 이루어져

[커버스토리] ① 제조업 위기? 제조업 위기!

제조업의 중심지 울산을 가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상황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조선산업을 비롯해,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위기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특히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지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참여와혁신>은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을 진단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참여와혁신>은 이번 기획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인 울산을 취재해 제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보는 지표가 제조업과 관련한 지표다. 제조업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그 나라의 경제력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고 한 걸음 나아가 제조업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시기별로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제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지금 우리나라 제조업은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을까?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장기간에 걸쳐 반복됐지만, 특히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진 시점은 조선산업이 급격하게 위기 국면으로 떨어진 2015년이라고 볼 수 있다. 잠시 그 시점으로 시계바늘을 돌려 보자.

조선산업에서부터 촉발된 제조업 위기

지난 2015년 7월, 대우조선해양이 2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큰 논란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1분기에 매출액 4조 4,860억 원, 영업손실 430억 원이었던 실적이 2분기에는 매출액 1조 6,564억 원, 영업손실 3조 399억 원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분기 만에 매출액은 60% 이상 대폭 감소하고 영업손실 규모는 매출액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실적이 악화됐다. 분식회계 논란이 뒤따랐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대우조선과 함께 빅3로 불리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잇따라 최악의 실적을 발표했고,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한국 조선산업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2016년과 2017년을 지나면서 1년간의 신규수주가 한 자릿수에 그치기도 했을 만큼 실적이 악화됐다. 이른바 ‘수주절벽’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산업의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빅3로 불리던 조선3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위기는 빅3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 때 30여 개에 이르던 중소조선사들이 이제는 역사 속의 기록으로만 남게 됐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를 거치면서 수주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위기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됐던 2015년만 해도 제조업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다른 산업의 실적에 가려 묻히고 말았다. 당시 우리나라 제조업의 주축을 이루던 자동차산업과 반도체산업, 석유화학산업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매년 갱신할 만큼 위기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에 자동차산업이 정체 국면에 진입했다. 이른바 싸드(THAAD) 미사일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한감정이 커지면서 자동차산업의 주력 수출시장이었던 중국에서 자동차 영업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중국에 공장을 늘리며 투자를 확대하던 현대·기아차는 헤어나기 어려운 판매부진의 늪에 빠졌다. 중국시장에서만 판매가 부진했던 건 아니다. 북미시장에서도 세단 위주의 라인업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려웠다. 북미시장에서 선호하던 차종은 픽업트럭이었지만, 당시 현대·기아차는 픽업트럭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기존에는 값은 싸지만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는 차량으로 북미시장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값이 싸지도 않았다. 북미시장 소비자들로서는 선호하는 차종도 없고 값도 별반 차이가 없는데 굳이 현대·기아차를 선택할 메리트가 없었다.

2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시장과 북미시장에서의 부진은 고스란히 현대·기아차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그동안의 좋았던 실적 때문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이 실적 악화와 함께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곳곳에서 제조업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이 위험하다는 경고도 섞여 있었다. 그와 같은 위기의 징후들이 단지 외부적인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때마침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기계와 AI가 당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당시 악화되고 있었던 고용사정에 위기감을 더했다. ‘이러다가 내 일자리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확산됐다.

일부에서는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은 공포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애써 외면했지만, 점차 자동화되는 일터의 모습을 매일 대면하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공포마케팅이 아니었다. 내 일자리가 당장 기계로 대체되지는 않더라도 후세대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산업이다. 이른바 미래자동차로 일컬어지는 제품의 변화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미래자동차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동력원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와 관련 있고, 다른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 운전할 것인지와 관련 있다.

우선 동력원과 관련하여, 기존의 자동차는 연료를 태워 거기에서 얻는 힘으로 엔진을 구동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핵심이 되는 부품은 엔진이었고,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일련의 체계를 일컫는 파워트레인도 빼놓을 수 없는 부품이었다. 요컨대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핵심으로 하는 기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미래자동차는 동력원을 전기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중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있는가 하면,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의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얻는 수소연료전지차도 있다. 이런 전기를 이용해 바퀴를 굴리는 역할은 모터가 담당한다. 이 같이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자동차를 친환경자동차라고도 하는데,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포함된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것과는 달리 배기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차에서는 배터리와 모터, 수소연료전지차에서는 연료전지와 모터가 각각 핵심 부품이다.

어떤 방식으로 운전할 것인지에 따라서 새롭게 등장하는 자동차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말 그대로 운전자가 손을 쓰지 않아도 자동차가 주변 환경을 인식해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다. 이는 운전자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지에 따라서 단계가 구분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현재 운행실험을 하는 중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율주행자동차에서는 외부의 상황을 인식하는 눈 역할을 할 센서, 주변의 자동차를 비롯한 외부와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장치, 운전 조작을 제어하는 장치 등 전장부품이 핵심 부품으로 등장한다. 그 외에 운전 조작에서 벗어난 탑승자가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각종 활동을 위한 장치도 부가된다.

이런 큰 흐름 외에 차량공유서비스도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변화다. 기존의 자동차는 소비자 개인이 소유하는 제품이었다면, 차량공유서비스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차량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차량 소유 주체가 개인에서 공유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에는 차량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제품의 변화는 차량을 생산하는 공정의 변화를 수반한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정이 완성차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었던 데 비해, 미래자동차에서는 핵심부품인 배터리 또는 수소연료전지, 모터, 전장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완성차와 협력업체 및 부품업체 사이의 수직적 관계는 완성차와 핵심부품업체 사이의 수평적 관계로 전환될 수 있다.

더구나 미래자동차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달리 많은 부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차량의 구조 또한 지금보다는 더 단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 자동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 중 많은 수가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금에 비해 50%가량의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다른 산업에서도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다. 예컨대 조선산업에서는 용접작업을 로봇이 수행하기도 하고, 석유화학산업의 경우에는 이미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어 있어 산업의 규모에 비해 고용의 규모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치화되는 성과에만 집착
겉모습만 따온 공장 스마트화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는 이와 같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진단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연구개발사업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2016년에 발표된 이 자료는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3D프린팅, 빅데이터/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센서/배터리, 의료/바이오, 인공지능/로봇의 영역으로 구분한 후, 2002년과 2014년의 연구과제 수와 연구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신기술 대상 연구과제 수는 2002년 전체 연구과제 수의 7.4%를 차지하던 것에서 2014년에는 16.9%까지 비중이 높아졌다. 연구비를 기준으로 하면 2002년 5%에서 2014년에는 14.9%로 확대됐다.

그런데 연구과제의 내용을 살펴보니 거의 개발단계 연구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기술리더십 확보를 위한 원천기술 연구 및 적용과 관련된 응용연구는 미미한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연구를 실제 사업과 연결시키는 비중이 낮다는 점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전체 연구사업 중 논문 건수는 26%, 특허 건수는 24%를 차지해 연구과제 수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높은 성과를 냈지만, 사업화 건수는 11%에 그치고 있다. 개발단계 연구가 많아서 실제로 사업화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점도 있겠지만, 연구 성과에 비해 사업화 성공률이 낮은 점은 개선해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는 연구가 논문과 특허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주로 개발단계 연구임을 감안할 때, 해당 연구가 실제 개발로 이어지는지 혹은 처음부터 개발을 지향하면서 추진된 연구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성과가 나올 만한 연구과제에만 매달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구자들이 논문과 특허 같은 성과를 내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는지 여부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R&D의 현주소가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 결과를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의료/바이오 기술을 건강증진과 보건 분야에 활용하는 데 집중된다는 분석이다. 다른 기술들은 전자 및 통신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신기술에 대한 대응이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알고리즘이나 아키텍처 등 원천기술 분야에 연구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공장 보급의 경우,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에서 따왔지만 그 토대가 되는 문제의식을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라 단지 겉모습만을 가져온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물론 미래의 산업과 생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인프라인 공장의 스마트화가 필요하지만, 독일이 플랫폼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통해 사회와 교육, 인력 육성 등 사회시스템 전반의 인프라 개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보완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공장 보급에만, 그것도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스마트공장 3만 개 보급과 같은 특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환경의 변화를 주시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나라에 다가오고 있는 제조업의 위기는 결국 산업의 환경이 변화하고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대응하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자주, 그리고 널리 사용하지만, 실제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2016년 기준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순위는 겨우 25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이 바뀌기 때문에 위기인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는 말만 할 뿐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스스로는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것이 위기의 실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