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이하는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처음 맞이하는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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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변화가 가져올 미래,
당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커버스토리] ④ 울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다_자동차산업

제조업의 중심지 울산을 가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상황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조선산업을 비롯해,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위기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특히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지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참여와혁신>은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을 진단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참여와혁신>은 이번 기획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인 울산을 취재해 제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울산 당사자들에게 “제조업의 위기를 어떤 부분에서 체감하고 있는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산업에 대한 걱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속된 불황으로 지난 몇 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해온 조선산업을 뒤로 하고 현재 울산 당사자들이 앞 다퉈 걱정하고 있는 산업은 자동차산업이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이야기하며 과연 울산 노동계와 경영계, 지방정부에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견뎌낼 수 있을지를 반문했다.

울산 제조업뿐만 아니라 국내 제조업에서도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탈(脫)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온다

자동차산업은 친환경자동차로 불리는 전기자동차(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벌금, 친환경차 쿼터제 등을 통한 이산화탄소 규제를 실시하고, 적극적인 친환경차 유도 정책을 펼치자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상당수가 ‘탈(脫) 내연기관차’를 선언했다.

가장 강력한 이산화탄소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주요국에서 기존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도심 경유차 진입을 금지하고,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경유·휘발유차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독일은 2030년부터 경유·휘발유차 판매 금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친환경차는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여전히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속도의 문제이지 방향성은 확실하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 목소리다.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으며, 국내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친환경차 생산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했다.

엔진과 변속기가 핵심 부품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배터리 기반의 전기모터가 이를 대체한다.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기존 3만 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중 1만 개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 한국수출입은행의 부품 수 비교조사에 따르면 내연기관차는 3만 개, 전기차는 1만 9,000개, 수소차는 2만 4,000개로 나타났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전환으로 소멸되는 부품수가 1만 1,000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패러다임 변화는 친환경차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공유경제 역시 빠르게 자동차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친환경차와 마찬가지로 기존 기계부품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부품 전환을 예고하고 있으며, 개인이 차를 소유하지 않고 플랫폼이 차를 소유하고 공유하는 공유경제가 다가오고 있다.

“예고되는 부품사의 위기” 한숨짓는 울산

울산에서는 국내 자동차산업이 패러다임 변화를 체하지 않고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부품사의 폐업 및 구조조정, 일자리 변화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수많은 과제를 고민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 조선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가 고용위기지역으로 선정되는 등 한차례 위기를 경험한 상황에서 전후방 고용연관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마저 어려워진다면 그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 당사자들이 ‘위기’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진혁 울산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대기업은 스스로 기술 변화에 따른 미래를 대비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예산이나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할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울산광역시는 노사민정협의회의(울산 경제사회노동 화백회의) 1호 안건으로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부품사들의 위기’를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다. 정창윤 울산광역시 노동정책특별보좌관은 “현대자동차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패러다임 변화로 줄어들 수 있는 인원은 자연감소로 해결하거나, 노사 간에 대등한 대화가 가능해 심각한 고용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미래 대비가 취약한 협력업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규모가 큰 1차 밴더 중에서는 미래 대비를 하고 있는 곳도 있겠지만, 2차, 3차로 내려가면 미래 대비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패러다임 변화로 기존 부품사들의 시스템과 지속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광역시는 이 문제를 자동차산업 노사와 울산광역시, 전문가가 함께 풀어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노사민정협의회의는 현 집행부 출범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울산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사 관계자는 “지금의 부품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사실 부품사에서는 미래에 닥칠 친환경차의 등장보다 현재 완성차 물량 감소를 더 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당장의 어려움에도 허덕이고 있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사도 긴장… 고용안정위원회 운영

그렇다면 울산을 중심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대차는 패러다임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핵심기술인 엔진, 변속기의 비중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라며 “기존 금속·기계부품에서 전장화(기존 기계부품이 전기·전자 및 정보기술 관련 부품으로 바뀌는 현상) 쪽으로 핵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산업은 완성차업체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발전해왔다. 엔진, 변속기 등의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성장해온 완성차업체에게 엔진과 변속기가 없는 친환경차는 미지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쟁력과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며 “친환경차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오면 현대차가 LG, SK 등에서 핵심부품과 핵심기술을 사와 차를 조립하는 정도의 위상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패러다임의 변화로 정보통신기술을 쥐고 있는 구글, 공유경제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현대차가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찍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기술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앞날을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갈수록 고용이 줄어드는 방향성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의 또 다른 당사자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하부영, 현대차지부) 역시 패러다임 변화로 표현되는 자동차산업 기술 대전환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하부영 지부장은 “기존에 현실적용이 어려웠던 기술들이 디지털산업의 발전, 전기차, 자율주행차와 함께 현실화되며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는 대전환기임은 틀림없다”며 “기술의 발전을 거부할 수 없다면 개입전략을 통해 인력절감을 지연시키거나 노동숙련 형성을 통한 고진로 정책, 로봇과 협업체계로 작업재편성, 노동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와 고용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지부는 기술변화를 거부하고 반대한다고 해서 대안이 되거나 조합원들의 고용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금속노조와 현대·기아차지부가 공동으로 ‘미래형 자동차 발전동향과 노조의 대응’ 연구용역을 진행해 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용역 설명회에서는 “쓸데없이 공포감 조성하지 말라”며 불편함을 드러내는 조합원부터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지를 묻는 조합원까지 다양한 반응이 돌아왔다. 하부영 지부장은 “연구용역 발표에 대해 조합원들은 혼란스러움과 혼돈이 혼재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추세라서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자리 감소나 고용불안을 느끼면 일단 거부감과 저항하는 이중적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지부 현장활동가 A씨는 현장 조합원들도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위기의식이 ‘물량’을 통해 밖으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대차에서 출시한 펠리세이드가 사전계약 첫날 3,468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판매 호조를 이어가자 현장에서 펠리세이드 물량을 다른 공장에서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A씨는 “쉽게 말하면 잘 팔릴 때 물량을 나눠서라도 생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직원들이 목소리를 낸 것”이라며 “예전 같으면 그런 이야기를 안 했을 텐데 회사가 잘 돼야 내 고용도 안정된다는 것을 직원들이 느끼고 있는 것을 표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위기의식이 현재 조합원들의 실제 고용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A씨는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위기와 변화는 느끼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내가 해고될 거라는 위기의식은 없다”며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부영 지부장은 “현장에서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변화를 공유하고 반대전략과 개입전략 중 우리가 선택해야 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토론하는 분위기는 형성됐다”며 “패러다임 변화와 기술변화가 노동을 배제한 채 진행되지 않도록 올해 상반기에는 현대차 의왕연구소 첨단기술개발 실사, 중국 현장공장 실태조사, 선진기술을 먼저 도입한 해외공장 실태조사 등 노조간부들을 파견하여 미래의 노동자 고용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찾으려 한다”고 밝혔다.

현재 현대차 노사는 미래 대비를 위한 고용안정위원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사 모두 패러다임 변화로 발생할 고용의 위기를 최소화해서 연착륙하자는 방향성은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현대차지부는 “전기차, 신기술도입 등 고용과 관련된 사항을 통합 관리해 미래의 고용불안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노사가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 패러다임 변화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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