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수주회복, 안심하기는 이르다?
조선산업 수주회복, 안심하기는 이르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5.04 10:08
  • 수정 2021.02.04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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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스마트 선박과 자동화,
당사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커버스토리] ⑤ 울산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다_조선산업

제조업의 중심지 울산을 가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상황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조선산업을 비롯해,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위기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에서 특히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지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참여와혁신>은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을 진단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참여와혁신>은 이번 기획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인 울산을 취재해 제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앞에서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패러다임 변화와 그에 따른 울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 울산을 괴롭혀왔던 산업은 따로 있었다. 바로 조선산업이다.

최근 선박 수주가 늘어나 조선산업이 회복세를 보인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시름 덜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산업의 앞날은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인 것일까? 지난 몇 년간 울산에서 이어진 현대중공업의 인력 구조조정, 이에 따른 울산 동구의 침체도 마침표를 찍는 것일까? 울산 당사자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져봤다.

ⓒ 현대중공업

불황이라는 긴 터널 지났지만 “안심하기는 일러”

과거 세계 물동량 증가, 노후 선박 대체 수요 증가로 최대 호황기를 누렸던 국내 조선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후 과잉설비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이 꾸준히 진행돼왔고, 2016년에는 불황의 정점을 찍었다. 다행히도 2017년부터는 운임 상승, 중소 선가 반등에 힘입어 업황 개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이 글로벌 선박 수주 1위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연속 중국이 지키고 있던 1위 자리를 7년 만에 한국이 되찾아온 것이었다.

한국이 수주 1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LNG선 수요 증가가 있었다. 지난해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발주된 LNG선 76척 중 66척을 수주했다. 한국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일감을 독식하며 지난해 1,263CGT(44.2%)를 수주했으며, 이어서 중국이 915만C2GT(32%)로 2위, 일본이 360만CGT(12.6%)로 3위를 차지했다.

LNG선 발주가 늘어난 데에는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 규제(전 세계 선박 황산화물 배출량을 기존 3.5%에서 0.5%로 규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조선·해운 전문기관인 클락슨은 지난해보다 올해 LNG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으며, LNG선으로 인한 수주는 장기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에너지 수출 기조와 중국의 친환경 정책 등에 힘입어 증가 추세에 있던 LNG 물동량이 더욱 증가하고 LNG운반선의 운임도 급등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조선산업이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는 희소식을 현장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달 울산에서 만난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은 “최근 수주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두고 전체 조선경기가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20년 IMO의 황산화물 규제를 앞두고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는 LNG선 수주가 부각됐지만, 세계 물동량이 증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체 조선경기가 살아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박근태 지부장은 “지금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LNG선도 어느 지점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KDB산업은행경제연구소는 지난해 전 세계 수주량 중 국내 조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원인을 “LNG선의 대규모 수주 및 현대상선의 일회성 발주 등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소는 “올해 전 세계 수주량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국내 수주량은 2018년 일회성 발주의 기저효과 등으로 전년대비 7.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불황이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업황이 회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빅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CEO들의 올해 신년사를 살펴보면, ‘생존’이라는 단어와 함께 비관적인 업황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2016년, 2017년과 달리, 2019년 신년사는 ‘경쟁력 제고’, ‘수주확보’와 같은 평이한 내용으로 신년사가 채워졌다. 대내외적인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국내 대형조선소 모두 과거보다 밝은 한 해를 자신하는 모습을 보여 올해 신년사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9년 슬로건을 ‘다시 일어나 세계 제일 조선 해양’으로 설정하고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7.4% 증가한 8조 5,815억 원으로, 수주목표를 지난해보다 15% 높은 117억 달러로 수립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산업이 친환경 및 스마트 선박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세계 조선산업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수주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조선산업도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변화는 수주회복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공유경제 등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만큼 거대한 돌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조선산업도 자동차산업과 마찬가지로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홍성인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산업에서도 선사들의 니즈(needs)에 의해 스마트·자율운항 선박이 출현하고, IMO 환경규제에 따라 조선시장의 근본 트렌드가 친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준비에 소홀한 기업은 시장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조선산업은 스마트·자율운항, 친환경 선박에 대한 대응을 비교적 선제적으로 진행한 편이다. 현대중공업은 스마트선박이라는 콘셉트를 가진 선박을 개발하여 수주를 진행한 바 있고, 에너지 절감을 위한 선형개발 및 연관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산업 불황이 정점을 찍었던 2016년 이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각 조선소들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이 진행되면서 연구개발이 제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이 홍성인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그 사이 유럽,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은 국내보다 1~2단계 높은 R&D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MO 규제에 의해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되면서 경쟁요소의 변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나, 우리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경쟁국의 여건이 더 나아진 것으로 보여 다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대표주자인 조선산업에서 자동화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구조물을 다뤄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자동차 등 다른 산업보다는 스마트 공장(제품 생산의 전 과정이 무선통신으로 연결되어 자동으로 이뤄지는 공장)의 구현에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으나, 선체블록의 제작 공정 등은 다양한 시뮬레이션에 의해 자동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곡 성형 로봇시스템 ⓒ현대중공업
곡 성형 로봇시스템 ⓒ현대중공업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과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3차원 곡면 형상을 가진 선박의 앞 뒤 부분 외판을 자동 성형하는 ‘곡 성형 로봇시스템’을 공개하고, 1년여 간 작업장에 투입해 검증작업을 모두 완료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곡 성형 로봇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스마트조선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되는 핵심 기술”이라며 “10~20년 정도의 장비 수명을 고려할 때 약 1,000억~2,00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도 현대중공업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동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김형균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과거에는 기계 없이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수행했다면 지금은 기계와 사람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며 “기계가 용접을 하면 사람은 이를 가동하고 조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인 선임연구위원은 “작업 환경 상 사고의 위험이 있어 인력을 투입하여 수행하기 어려웠던 난이도 높은 공정의 경우, 자동화를 통해 높은 효율로 사고 없이 처리되면 노사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다”며 “노동자는 중단기적으로 자동화 및 스마트 공정을 연결하고 결과를 점검하는 역할을 담당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조선 관련 정보통신기술 영역에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조선산업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최대 호황기가 찾아오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과거의 최대 호황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회복 국면을 지혜롭게 견인하기 위해서는 조선산업 당사자들이 함께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 스마트·자율운항 미래 선박에 대비하고, 자동화 기술을 노동자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