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가족’의 빛과 그림자를 기록하다
‘중공업 가족’의 빛과 그림자를 기록하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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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인터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양승훈

양승훈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뒤 대우조선에 입사했다. 순전히 박사과정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3년 정도면 되겠지?’ 그렇게 그는 고향인 서울을 떠나 거제 땅을 밟았다.

양 교수가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는 인사팀에서 조직 문화를 혁신하는 일. 그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과 FGI(초점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직원들이 회사와 일에 관해 느끼는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해 사내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다. 매주 현장에 나가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화했다. ‘중공업 가족’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 회사에 대한 생각들… 그가 들은 이야기들은 모여 모여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됐다.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질문하고 싶었다.”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지난 2012년부터 약 5년간 대우조선에 몸담았던 양승훈 교수가 당시 직원들로부터 귀 기울여 들은 이야기들의 종합이다. 양 교수는 책에서 중공업이 만들어낸 가족 모델을 살피지 않고서는 조선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그는 조선산업에 닥친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현재 양 교수는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학부생들에게 기초사회통계학과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이중적인 개념이다.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지만, 동시에 현실에는 없거나 모순이 가득한 장소일 테니까. 중공업 가족들이 그런 유토피아에 살았다고 생각했다. 거제는 한때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 전체가 위험에 휩싸인 상태다. 직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됐고, 주택가를 가득 채우던 사내 하청 노동자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양승훈 교수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공동체를 가족 삼아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 공동체를 확산해왔던 지난 일련의 과정들을 일종의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라고 봤다. 그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속된 노동조합 전통이 노동자들을 가족공동체로 불러냈고, 덩달아 회사도 직원들을 하나로 엮기 위해 ‘대우 가족’ 또는 ‘또 하나의 가족, 삼성’으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 교수는 조선산업이 어려워지면서 프로젝트가 감추고 있던 내부 모순과 갈등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고 지적한다.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젊은 세대는 셔틀버스로 출퇴근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중공업 가족이라는 틀을 거부하고, 경기에 따라 이직을 선호하는 등 확실히 다름을 표방했다. 딸들은 거제를 떠나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아빠의 믿음을 저버렸다. 노동자들의 ‘단순한 삶’은 나름대로 예찬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나, 가족 안에 머무르기를 꺼리는 이들에게 그것은 한낱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중공업 가족은 빈축을 샀다.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中 P.113

그는 중공업 가족이 하청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은연중에 배제하고 발언권을 박탈하면서 ‘정상 가족’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와 다르게 주말이나 명절에 나와 ‘돌관작업’을 도맡아야 했고,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버려졌다.’ 일터 밖에선 “직영이세요?”라는 질문들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차별에 시달려야 했고, 실제로 이들의 임금 격차는 가족들의 문화 격차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여성들은 ‘확실한 소득’을 벌어다 주는 남편을 내조하고, 양육을 전담하는 ‘아내’의 역할에 갇혔다. 하지만 그가 마냥 중공업 가족들을 비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선박은 수출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산업이었다. 그런데 위기가 닥치니까, 이상한 나라처럼 취급하면서 지원하지 말고 죽게 내버려 두자는 외부의 시선 또한 맞지 않는다. 중공업 가족들이 경제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1998년 IMF 사태를 겪은 한국 사회와의 문화적 단절, 그리고 그 기초가 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한계들에 대해선 지적해야만 했다.”

ⓒ 5월의 봄
ⓒ 5월의 봄

‘맥가이버 세대’ ↔ ‘빌 게이츠 세대’
‘서울 애들’ ↔ ‘젊은 토박이들’

양 교수는 중공업 가족이 되기를 거부한 대표적인 주체로 ‘젊은 엔지니어’와 소위 ‘서울 애들(서울 지역 대학교 출신)’을 들었다.

작업장 엔지니어들이 제도 용구를 가지고 도면을 그렸다면, 이 새로운 세대는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우스와 키보드 사용에 익숙해지면 3D 화면 구현이 가능하기에 선체 곳곳 탐색하면서 입체적으로 도면을 그릴 수 있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컴맹’으로 살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中 p.129

“이들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외국 설계회사의 도면을 베껴가며 쌓은 기술로 성취를 이뤄낸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전산화하려 하고, 중공업 가족이 되기보다는 매주 셔틀버스에 올라 서울로 올라가는 친구들은 무책임하고 서운한 존재들이다. 반면, 새로운 지식에 호기심을 자기고 일을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공학지식과 외부 컨퍼런스 등으로 해결하려는 젊은 엔지니어의 관점에서는 선배들은 너무나 구식으로 보일 뿐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산업 진출은 이 갈등의 방아쇠를 당겼다. 당시 회사가 젊은 엔지니어들을 대거 채용하면서다.”

수도권 출신의 직원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회사를 그만 뒀다. 임금이 삭감되고 고용 안정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발 빠르게 ‘이직’과 ‘전직’을 선택했다. (중략) 조선산업의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지방근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략) 수도권 대학 출신의 젊은 직원들이 이탈하자, 사무직 시니어 계층 외에도 동년배 동남권 소재 대학을 나온 ‘젊은 토박이’들의 마음도 심난해졌다. 2대가 함께 회사를 다니거나 동남권에 살면서 ‘좋은 직장’을 꿈꾸며 입사한 직원들에게 함께 일했던 동료의 이탈은 허탈감을 안겨줬다. 또한 토박이들은 회사의 사정이 나빠지자 갑자기 제삼자의 눈으로 ‘회사 비난’을 하는 동료를 참기 힘들었다.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中 p.113

“지역 사회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좋은 회사. 부울경(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출신에게 회사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컸다. 그런데 회사가 조금 어려워지니 서울 출신 동료들은 당장 이직하겠다며 면접을 보러 돌아다녔다. 이들 입장에선 지방회사에 남겨졌다는 일종의 열패감이 컸다. 서울 유수 대학의 공대 출신들보다 이직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직 돌풍 이후엔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남은 일을 떠안아야 했다.”

거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여성 엔지니어가 많이 일할 수 있는 조선소, 젊은 여성들이 일하면서 살고 싶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양승훈 교수는 생산직 노동 성격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조선업이 여전히 남성으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대신, 설계 부문에서 여성들이 엔지니어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기존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중소기자재업체 관점에서 초광역 단위의 산학연계를 강화하고 제조업 간 클러스터를 촘촘하게 조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울경을 오고 싶어야 한다. 지금은 엔지니어링 기반이 수도권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전망은?

“당장은 LNG선 수주로 숨통을 틔었다고 본다. 수요가 지속될 경우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다만, 선가(배의 가격)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지난해 바닥을 치고 조금 반등한 수준이며, 2016~2017년 위기 시 수주한 선박의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다. 중형선박을 건조하는 중형조선소들은 당장 청산이냐 회생이냐는 질문에 서있다. 향후 5년간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인다. 우선 언제까지, 누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해양플랜트에 대해서도 입장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기로 했는데 …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동안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회사’로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다. LNG선 수주가 많아 당장 인적 구조조정은 없겠지만, 향후 사무직 등에서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자재업체 생태계를 보전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자회사 수직계열화 방식으로 기자재를 조달한다. 반면, 대우조선은 기자재업체에 발주를 내서 매입하는 방식으로 경영해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총재는 기자재업체 4분의 3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 납품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4분의 1이 막대한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기업, 노동계가 공동의 논의로 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