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운전노동자,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다
버스운전노동자,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5.03 07:20
  • 수정 2019.05.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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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은 안전 문제와도 직결
적정 인원 확충과 임금 조건 개선 선행돼야

[리포트] 버스운전노동자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충분조건은?

버스 졸음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버스 교통사고는 피해 범위가 상당하다. 버스 자체로도 탑승객이 많고, 연쇄추돌로 다른 자동차에 타고 있는 탑승객에게까지 인명 피해를 줄 수 있다. 또 주변을 지나는 행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이처럼 대형 사고로 번질 위험이 다분한 버스 졸음운전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각계각층에서는 버스운전노동자의 주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버스운전노동자의 경각심만이 답일까? 버스운전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살펴본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출처 :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 (자동차노련)

버스운전노동자 노동 실태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위원장 류근중, 이하 자동차노련)이 발간한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버스운전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버스기사의 근무형태는 1일 2교대제, 격일제, 복격일제 등이 있다. 1일 2교대제는 오전, 오후, 휴무 3개조가 돌아가며 근무한다. 격일제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형태다. 복격일제는 이틀 일하고 하루는 쉬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이다. 근무일 구속시간이 아닌 실 운전시간만 치더라도 버스운전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을 훌쩍 넘는다.

구속시간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을 합친 개념인데, 버스운전노동자들은 운전시간 이외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차량 운행 전·후 준비, 정리시간, 1회 운행 후 휴식시간 중 세차·주유 등 부수업무 시간이 존재한다. 법원 판례에서 근로시간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즉, 1일 구속시간을 산정하는 이유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휴게시간에도 버스운전노동자들은 쉬지 못한 채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무형태별로 노동시간을 구분해 비교한 것은 근무형태에 따른 노동시간의 차이를 확인해 적합한 근무형태를 찾기 위해서다. 1일 2교대제는 1일 2교대제 이외의 근무형태보다 근무일 구속시간에서 약 6시간 적고, 실 운전시간에서는 약 5시간 30분 적다. 1일 2교대제가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임을 의미한다.

업종별 노동시간 분포도를 보면 근무형태가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시내버스 격일제를 운영하는 곳에서는 월 노동시간 221시간을 넘기는 버스운전노동자가 70.4%, 시내버스 복격일제를 운영하는 곳에서는 월 노동시간 221시간을 넘기는 버스운전노동자가 80.4%에 육박한다. 심지어 281시간을 넘겨 노동을 하는 인원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시내버스 1일 2교대제를 실시하는 곳에서는 75% 정도의 인원이 월 220시간 이하로 일한다. 월 281시간 이상 일하는 인원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1일 2교대제를 정착시키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의 근무형태를 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출처 :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 (자동차노련)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필요충분조건①
적정 인원 확충

도식적으로 생각해도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1일 2교대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격일제나 복격일제로 운영했던 것보다 많은 버스운전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노동자 한 명에게 과중하게 몰린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 노동시간을 나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동차노련 산하 조직 평택여객지부는 1일 2교대제 시행을 앞두고 인원을 계속 충원하고 있다. 평택여객이 운행하는 노선버스는 모두 79대인데, 버스 1대 당 2.4명이 있어야 원활하게 1일 2교대를 운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190명까지 인원을 충원할 계획이고 1월 기준으로 166명을 확보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필요충분조건②
임금 조건 개선

버스운전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취지는 동감해도 우려하는 지점이 있었다. 임금 보전이다. 노동 시간이 줄면 당연히 이전 장시간 노동에서 받던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이 단지 기우가 아닌 이유가 있다. 자동차노련의 조사에 따르면 소속 버스운전노동자들의 전체 임금 구조에서 기본급이 49%이고 연장 근로 등으로 인한 초과임금이 32%, 상여금이 19%이기 때문이다. 기본급이 낮은 이상 연장 근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노동시간이 단축돼도 이전과 같은 임금 수준이 보장돼야 버스운전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더불어 생활 가능한 임금 수준으로 임금이 조정될 필요가 있다. 생활 가능한 임금 수준 유지는 새로운 버스운전노동자 충원으로 이어지는데 가교 역할을 한다.

자동차노련 산하 조직인 나주교통지부는 “노동자를 충원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낮은 임금이었다”며 “이웃의 광주광역시 시내버스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주 시내버스보다 낮은 임금수준으로는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고, 나주교통 노동자들은 기회가 되면 광주 시내버스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활 가능한 임금 수준은 얼마 정도일까? 통계청의 자료로 봤을 때 2018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가계지출 잠정액 393만 8,000원이다. 자동차노련의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노련 산하 조합원들의 2018년도 월 평균임금은 341만 9,700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동차노련은 도시근로자의 평균 지출 수준에는 맞추거나 그보다 인상해야 생활 가능한 임금으로 본다.

필요충분조건이 실현될 가능성은?

필요충분조건이 실현될 가능성은 있다. 모범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주교통지부와 평택여객지부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모색해 적용하고 있다. 두 지부는 추가적인 버스운전노동자 충원과 임금 문제도 함께 해결하며 삼박자를 맞춘 사례를 낳고 있다.

나주교통지부는 임금인상을 통해 노동자를 충원한 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발생하는 임금 하락을 막기 위해 원가보상제를 활용한다. 버스를 운행하는 데 따른 원가 전체를 시가 보전하는 개념이다. 회사가 인건비를 먼저 집행하면 임금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가 다음 해에 보전하는 방식이다. 시는 인건비 항목의 지원 금액을 늘려 임금을 보전하고 있다.

시가 지원하는 이유는 교통사업이 단순한 수익 사업을 넘는 교통복지 차원이기 때문이다. 원가보상제는 보상의 개념이기 때문에 신규 채용을 위해서는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시에서 일자리 지원자금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 비춰 봤을 때 지방 정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방 정부를 설득하는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나주교통지부는 노사민정협의체를 통해 지방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적극적으로 교통복지에 대해 소통했을 때 이러한 지방 정부의 협력이 지속성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교통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사회적 대화로 형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나주교통지부는 지방 정부에서 지원이 부족하다면 사회적 대화를 확장해 중앙 정부가 나설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평택여객지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필요충분조건을 형성한 실제 사례 사업장이다. 여기에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평택여객지부가 시를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안경선 평택여객지부 지부장은 평택여객 버스운전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집계하기 위해 직접 수기로 자료를 모았다. 직접 수기로 자료를 모은 이유는 회사가 경영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다.

안경선 지부장은 버스의 수입금을 직접 세고, 전 조합원의 월간 노동시간을 하나하나 조사해 표로 만들었다. 불합리한 노동실태를 파악했고, 이를 가지고 평택시를 설득했다. 시장과 시의회를 설득해 2017년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 받았다.

결국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임금 조건이 개선돼야 하고 버스운전노동자 충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단위 사업장의 구체적 현황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대화에 성공했을 때 가능하다는 의미다.

출처 :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 (자동차노련)

자동차노련, 노동시간 단축 안착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노련은 노동조건 개선과 버스산업 정상화를 위해 지난 4월 29일 전국 동시 쟁의조정신청에 돌입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다. 자동차노련은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와 수십 쪽에 달하는 ‘2019년 임·단협 교섭지침’으로 꼼꼼하게 자료를 정리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객관적 증거들로 교섭에서 사측을 설득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다른 측면으로, 자동차노련은 사회적 대화를 준비 중이다. 개별 지역 단위 노사민정협의체를 통한 사회적 대화도 중요하지만 전국 버스운전노동자의 의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가차원의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업종별위원회에 버스운수산업위원회 발족을 앞두고 있다. 본회의의 의결이 남아 있는 상태다. 버스운수산업위원회가 공식 출범을 하면 노사정이 의제를 합의하고 합의된 의제에 따라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단계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제도 측면에서도, 자동차노련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버스산업 정상화를 위해 대중교통 환승비용을 지원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법과 운수종사자 처우 개선 지원 근거를 담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제106차 대표자회의에서 결의했다.

자동차노련은 제106차 대표자회의 결의문 첫머리에서 “우리는 오는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주 52시간제 도입을 앞두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졸음운전 예방과 안전운행 확보, 조합원 삶의 질 개선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임금 저하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으로 현장 노사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15,000여 명의 신규채용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며 버스운전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판단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동차노련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이유는 버스운전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좀 더 나은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버스를 사용하는 승객들의 안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