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모두의 ‘내일’로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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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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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패러다임 변화 불가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커버스토리] ⑧ 산업 정책

제조업, 울산만 위기가 아니다

이번 <참여와혁신> 5월호 특집에서 제조업을 다루면서 울산을 주목한 이유는 간단하다. 울산을 먹여 살리는 3대 주력산업이 모두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울산 당사자들이 진단했듯이 제조업 위기는 울산의 위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뿐일까? 제조업의 위기가 울산만의 문제일까? 앞서 지적한 울산 제조업의 위기는 국내 제조업 위기에 대입이 가능하다. 울산에서 만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나하나 짚었던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석유화학산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이미 울산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제조업을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지역이 무너지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지금도 제조업 위기로 인한 지역의 쇠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울산만 위기가 아닌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제조업 혁신 중이다. 독일은 지난 2011년부터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제조업 생산 사슬 전반의 스마트화 정책,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해왔고, 미국은 오바마전 대통령(2009년, ‘remaking america’) 당시부터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예산 투입, 제조 혁신 인프라 구축, 리쇼어링 정책(re-shoring·세제 혜택과 이전 비용 지원 등으로 해외에 있는 자국 기업의 생산 기지를 본국으로 회귀시키는 정책) 등 제조업 활성화에 힘써왔다. 일본은 2013년 ‘산업 재흥 플랜’을 시작으로 자국의 강점인 소재 부품 및 로봇 분야에서 기술 개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또한 ‘일대일로 전략 一帶一路(중국이 주도하는 육상 및 해상 신 실크로드 전략.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컫는 일대와 동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일컫는 일로로 구성되며,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주변의 60여 국가를 포함하는 거대경제권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제조 2025(제조 역량 강화로 품질 경쟁력 제고)’, ‘인터넷 플러스(모든 산업에 인터넷 도입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대중창업(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정책 등을 통해 제조업은 물론 산업의 전 분야에서 주도권 쟁탈을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제조업 혁신 3.0(2014년)’, ‘미래성장동력 종합실천계획(2016년)’, ‘스마트공장 확산 및 고도화 전략(2018년)’등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선도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딜로이트(Deloitte·영국의 다국적 컨설팅 그룹)가 발표한 ‘글로벌 제조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글로벌 제조 경쟁력 순위는 중국과 미국, 독일, 일본, 한국 순이다. 다만, 내년부턴 미국과 중국의 순위가 바뀌고, 독일과 일본의 순위가 유지되는 반면, 한국은 6위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된다.

혁신을 주도하지 않고서는, 혹은 그 혁신을 재빠르게 따라잡지 못하고선 제조업 경쟁력을 더는 담보할 수 없는 시대. 우리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왔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제조업이 중요한 이유

각국이 제조업 경쟁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제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제 전반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업은 생산의 기초가 되는 핵심 기반산업으로 안팎에서의 고용 창출 등 파급 효과가 커서,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특히 최근엔 IoT, 빅데이터 등 기존 제조업 인프라에 접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새로운 영역에서의 양질의 일 창출과 소득 양극화 해소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ICT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콘서트’에 참석했다.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ICT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콘서트’에 참석했다. ⓒ 청와대

제조업 정책의 세 가지 핵심 목표
① 최적화 ② 미래 산업 발굴 ③ 위기 대응

최근 5년간 정부가 추진해온 주요 제조업 혁신 정책들은 그 목표와 내용에 따라 ‘최적화’(Optimization·자원 또는 비용의 효율성 추구), ‘미래 산업 발굴’, ‘위기 대응’ 등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1> 참고)

제조업에서 최적화 정책은 제품의 기획과 설계, 유통 등 제조업 전 과정에서의 비용을 줄여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정책이다. 이는 소위 ‘스마트공장 정책’으로도 대표되는데, 이전 정부의 ‘제조업 혁신 3.0’ 정책이 이후 ‘스마트공장 정책 추진 방향’, ‘스마트 제조혁신 비전 2025’, ‘스마트공장 확산 및 고도화 전략’ 등으로 구체화됐다.

스마트공장 정책의 시초가 된 ‘제조업 혁신 3.0’ 정책은 이름에서처럼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독일은 전 제조업 생산과정을 ICT 기술로 망라해 연결하는 스마트공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제조업 전반의 혁신 정책에 있어서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제조업 혁신 3.0’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스마트공장을 IT·SW,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생산 전 과정을 지능화·최적화한 ‘낭비 Zero(0) 공장’으로 규정하며 스마트공장 구축을 통한 비용 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스마트공장 정책은 정부의 표현처럼 제조업 ‘혁신’ 정책이라기보다는 디지털 및 소프트웨어 기술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을 ‘보조’하는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미래 산업 발굴 정책은 그야말로 새로운 산업을 개척해서 새 성장 동력을 찾는 정책이다. 바이오산업이나 로봇산업 등 이전에는 없었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산업군을 새로이 개척하거나, 미래 시장 수요를 선도 또는 대비해 기존 산업군 내에 새로운 제품군을 선보이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5가지 미래신사업(지능형로봇, 착용형 스마트기기, 실감형 콘텐츠, 스마트바이오생산시스템, 가상훈련시스템)과 4가지 주력산업(스마트공장, 심해저 해양플랜트, 5G 이동통신, 수직이착륙무인기) 등을 19대 미래성장동력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2019년 경제정책운영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공장·산단, 미래차, 핀테크, 바이오헬스 등을 4대 신사업으로 보고 있다.

8대 선도사업은 초연결지능화,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핀테크, 에너지신산업, 드론, 미래자동차 등이다.

정부는 또 기존 산업군인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 내에서는 친환경 운송수단(수소차, 전기차, LNG선)과 자율주행 운송수단(자율주행차, 자율운항선)을 차세대 제품군으로 내다보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 환경규제 강화 등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발맞춰 주력 제품군을 전환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도함으로써 임금이 높은 일자리 창출까지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특정 산업이 위기에 닥쳤을 때 대응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수주 물량의 급속한 감소, 해양플랜트 산업에서의 실패로 위기에 처한 조선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 퇴직자 재취업 프로그램, 미래 경쟁력 제고 등을 골자로 한 위기 대응 정책을 지속해서 펼쳐왔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기존에 중대형조선사를 대상으로 정책을 펼쳐온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중소조선사와 기자재업체를 특정해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중소조선사의 RG(선수금환급보증서, 조선사가 수주한 선박을 인도하지 못할 경우 선수금으로 받았던 금액을 금융기관이 대신 환급하는 것을 보증하는 증서로, 조선사가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수주계약이 취소됨) 보증 규모를 확대하고 특별고용지원업종 기간을 추가 연장하는 등 단기적 어려움을 해소하면서도 미래 선박으로의 전환을 지원해 장기적 일감 확보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주)대건테크를 방문해 공장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주)대건테크는 산업용 케이블 모듈과 3D 프린터, 와이어 컷 방전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주)대건테크를 방문해 공장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주)대건테크는 산업용 케이블 모듈과 3D 프린터, 와이어 컷 방전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지난해 12월에 나온 ‘자동차 부품산업 활력제고 방안’도 부품기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 및 글로벌 시장 개척 지원, 미래차 핵심 부품 개발 투자 강화 등으로 자동차 부품업계 전반의 활력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정책이기도 하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제조산업정책관은 “정부는 완제품을 만드는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등 제조 생태계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국내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의 거래네트워크 대부분이 국내에 있는 만큼 생태계 전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제대로 혁신이 될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정부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책 방향이나 방식에 있어선 제조업 혁신 정책이라기엔 구체성이 떨어지고 준비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스마트공장 정책이 제조업 ‘혁신’ 정책?

정부의 스마트공장 정책은 2022년까지 10인 미만 제조기업 6만 7,000개 중 3만 개에 스마트공장 설비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정부 2020년까지 스마트공장 1만 개 도입을 계획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정부 들어 정책 추진 속도와 지원 규모 면에서 더욱 박차를 가하는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스마트공장 확산 및 고도화 전략’ 정책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그동안(2014~2017년) 5,003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 도입을 지원(정부 지원금 2,104억 원 규모)해왔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받은 후 생산성과 원가 절감으로 매출액이 이전보다 20% 증가하고, 영업이익률이 53%가량 상승했다.

또한 생산물량의 증가와 새로운 직무가 추가돼, 기업 당 고용이 2.2명 더 늘었다. 정부가 스마트공장 정책으로 제조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도 일자리 75만 개를 창출하는 성과까지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마트공장 정책으로 제조업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독일이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추진하는 취지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인더스트리 4.0 정책’ 중 스마트공장 정책 한 가지만을 벤치마킹하고, 스마트공장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수단 정도로만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은 울산과학기술연구원 겸임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귀환>에서 “독일에서 발간한 공식 문건인 ‘인더스트리 4.0 구현 전략’에서 볼 수 있듯이 ‘인더스트리 4.0’은 ‘개인화된 고객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라며 “스마트공장이 ‘인더스트리 4.0’을 구현하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인더스트리 4.0’의 주요 구성요소에는 스마트공장 외에도 스마트제품, 스마트물류, 스마트서비스 등 다양한 구성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기존의 대량 생산이나 대량 맞춤과는 다르게 개별적인 수요를 반영한 ‘개인 맞춤형 제품’을 고객이 수용할 만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데 있는데, 국내에선 오로지 스마트공장 도입을 통한 생산성 제고에만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독일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제품(개인 맞춤형 제품 유연 생산)을 만들기 위해 스마트공장을 기획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기존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많이 만들기 위해(원가 절감) 스마트공장을 짓고 있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 ⓒ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 ⓒ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또한 정부가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 현실을 미처 반영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성과 내기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정부가 구축해온 스마트공장 수준을 근거로 “스마트공장 정책이 산업발전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스마트공장 확산 및 고도화 전략’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스마트공장 구축 수준은 대부분(76.4%) 기초단계(생산정보 디지털화 및 제품의 생산이력 관리)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관리시스템을 통한 설비 자동제어가 가능한 수준(중간2 단계)의 스마트공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2.1%. 완전한 스마트공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스마트공장(고도화 단계)은 단 한 사례도 없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최남호 정책관은 “겨우 ‘기초단계’냐고 하겠지만, 우리나라 제조 중소기업들은 엑셀(Excel)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수준으로 ICT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애초부터 공장 수준이 낮은 편이어서 일단은 기초단계라도 끌어올린 것이고, 지속적으로 수준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승현 연구원은 “정부가 추격형 정책에 익숙해서 자발적이고 장기적인 제조업 혁신 정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라면서 “독일과 우리나라는 산업 구조 자체가 다른데도 정부는 독일의 산업 정책을 그대로 따왔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정부가 글로벌 강소기업이 산업의 중심인 독일의 산업 정책을 제조 중소기업 역량이 취약한 우리나라에 무분별하게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김승현 연구원은 “정부는 2022년까지 1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 3만 개를 스마트공장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과연 이 정도 규모의 영세한 업체를 계속해서 지원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구축 목표치를 정해서 스마트공장을 많이 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스마트공장을 짓는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산업이 바뀐다는 것은 시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동시에 달라져야 한다는 전제도 포함한다. 인력이 준비되지 못하면 미래 산업 경쟁력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과 교육 훈련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존 산업 종사자들에게 변화는 그저, 내일의 내 일을 위협하는 공포로 다가올 뿐이다. 정부가 전환의 시기에 인력 양성 정책을 더욱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김승현 연구원은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제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당장 ‘내가 없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면서 “정부는 노동자에게 ‘이직하라’고만 떠미는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안에서 일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갖춰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김승현 연구원은 이에 앞서 정부가 미래 산업 인력의 수요와 인력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력 현황과 미래 수요를 비교·분석한 뒤에야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고, 교육이 필요한 직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정책적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정책 대상자의 기존 직무 역량 등을 고려해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인력 양성 정책이 최소한 산업군별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인력 정책은 정책 대상자에 따라 재직인력, 퇴직인력, 신규인력, 교육인력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① 재직인력 재직인력에게는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받는 전직 교육이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재직인력에게 전직교육은 직무 역량을 확장하는 기회이면서,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직장 안팎에서의 안정적 고용을 꾀할 수 있다. 한편, 전직교육은 노·사·정 모두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에서 미래를 대비하고, 무더기 실업과 숙련 인력 증발, 자영업자로의 전락 등 위기 직후 인적 구조조정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각종 피해를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재직인력 직무전환을 주도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개별 기업 수요 차원을 넘어 전체 산업 인력 수요를 반영해서 재직인력이 미래 산업에 필요한 직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대구를 찾아 ‘로봇산업 육성전략 보고회’에 참석했다.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대구를 찾아 ‘로봇산업 육성전략 보고회’에 참석했다. ⓒ 청와대

② 퇴직인력 퇴직인력에게도 전직 교육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퇴직인력의 경우, 특히 비자발인 실업으로 경제적 형편이 불안한 이들에겐 정부가 전직교육과 함께 고용지원금 등 사회안전망 성격의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지지 못하면 ‘해고는 곧 살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조선산업을 본보기 삼아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경우 숙련 인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이후 조선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구조조정을 두고 ‘사회적 손실’, ‘기술 경쟁력 훼손’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숙련 인력이 조선산업에서 완전히 이탈했기 때문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 뒤 현장 숙련 기능이 협력업체 기능 인력보다 후퇴됐다고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면서 “인력 양성은 단기적 물량 수요와 상관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조선소 직영인력을 확보하여 고용안정과 더불어 책임감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구조조정 뒤 정부의 재취업 정책도 퇴직인력의 숙련도를 시장으로 연결해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 <땐뽀걸즈>(구조조정이 한창인 쇠락하는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서 ‘땐’스 스‘뽀’츠를 추는 청소년들의 성장을 그린 영화)에서 조선소 용접 일을 하던 ‘중공업 아빠’들은 정부가 마련한 ‘조선업 희망센터’에서 실업급여와 함께 재취업 안내를 받지만, 결국 자신의 숙련된 기술을 연계할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일식 요리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떠나거나 버스 운전기사가 됐다.

양승훈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조선소에 있는 동안 다양한 인접 분야의 자격증을 딸 수도 있겠지만, 그건 특출한 몇 명에게 해당한다. 실상은 영화처럼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정부 역시 이들이 연계되는 산업에 재취업시킬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용접을 하던 사람은 용접을 해야 한다. 일반 숙련 기술을 교육하는 것은 효과도 없고 기존 숙련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며 퇴직인력에 대한 재교육 시 ‘유관 분야로의 연결’을 강조했다.

학생 : 조선업 희망센터에서는 일자리를 많이 소개해주나요?

구직자 : 워크넷 보고 알아서 갑니다. 구직할 수 잇는 자리가 있는지 보기 위해 센터를 다니긴 하지만, 막상 구하게 되더라도 결국 현장에서 일하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일을 시키니까요. 새로운 분야로 가려고 하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 경남대학교 2018년 1학기 '해양시그니처세미나' 수업에 참여했던 김경국, 김하린, 이나임 학생이 조선희망센터에서 인터뷰한 내용,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2019에서 재인용

③ 신규인력 신규인력 양성 시엔 산학 연계로 산업계와 학계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핵심이다. 특별히 양승훈 교수는 “그간 대기업 원청 중심으로 이뤄진 산학연계에서 나아가 벤처 스타트업이나 중소업체 등의 관점으로 정책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장은교 국토연구원 연구위원도 <제조업 위기극복을 위한 혁신생태계 조성방안> 정책보고서에서 지역 산·학·연과 연계한 제조업 혁신생태계 조성을 제안했다. 장은교 연구위원은 “국가가 연구개발한 기술이 제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중앙 정부 차원의 ‘제조혁신네트워크 기구’를 설립해 제조업 혁신생태계를 ‘공간화’해야 한다”면서 “그곳에서 새로운 기술을 선도할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과 연결해줘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엔 미국과 다르게 경쟁력 있는 대학이 많지 않으므로 국가적 연구소와의 연계를 더욱 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④ 교육 인력 아울러 산업 인력 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을 교육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승현 연구원은 “인력 양성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조건 10만 명을 교육하겠다고 하는데, 관련 센터 등에서 겨우 2주짜리 프로그램을 듣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교육 인력의 비전문성에 따른 인력 정책의 한계를 짚었다. 김승현 연구원은 “어쩌면 교육 인력 양성은 다른 인력을 양성하는 것보다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밥그릇 싸움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국내에선 내연기관차를 전공한 교수들이 자율주행차 관련 인력 양성 사업을 맡고 있고, 전기차를 반대했다가도 6개월 뒤엔 세계 전기차학회장이 되어 있는 형국”이라며 “정말이지 미래 인재를 기를 교수 요원들이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R&D투자

한편, 산업인력 양성 정책은 결국 중소기업 R&D와 떼어낼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워서 미래 인력을 수용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은 수직계열화 등 국내 제조업의 구조적인 한계로 중소기업들은 R&D 투자에 대한 여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적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론 중소기업들이 R&D 투자에 힘쓰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협력업체들은 R&D는 꿈도 못 꿨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R&D가 부족한지, 혹은 R&D는 충분한데 해외로의 시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루 살펴 전략적으로 지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