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변화, 노동과 함께 가야 한다
산업의 변화, 노동과 함께 가야 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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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 필요하지만 ‘답정너’ 식 대화는 안 된다

[커버스토리 ⑨]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취재를 위해 만난 당사자들은 대부분 현재 제조업이 위기상황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면 대부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거나, 정부가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력 덜 쓰는 방향으로 기술 진보

제조업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혁신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현재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전제로 주어진 상황이다. 어느 한 나라의 정책에 따라 그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예컨대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의 굴뚝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미국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 가는 방향 자체는 바뀌지 않고 있다. 다만 전환의 속도가 다소 영향을 받을 뿐이다.

제조업과 관련해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혁신은 큰 틀에서 제품의 혁신, 생산 공정의 혁신, 유통의 혁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제품은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제품, 친환경적인 제품, 그러면서도 이용자의 편의와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방향으로 소비의 패턴도 점차 바뀌고 있지만, 이는 제품에 대한 수요의 문제와 결부되므로 제품의 혁신을 일으키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제품이 변화함에 따라 이를 생산하는 공정 역시 변화하고 있다. 제품의 변화로 기존의 공정에서 빠지는 공정이 생기는가 하면 새롭게 추가되는 공정도 생긴다. 같은 공정이라 하더라도 노동력이 덜 들어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생산된 제품을 유통하는 과정 역시 변화하고 있다. 무인공장에 가까운 물류센터, 드론을 활용한 배송 등으로 유통 과정 자체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이러한 변화는 가능하면 노동력을 덜 쓰도록 전환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동차산업에서처럼 구조가 단순해지고 부품의 수가 줄어들면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제품 자체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변화를 막아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봇의 활용 등과 같이 기존의 인력을 대체하는 데에서도 변화의 방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똑같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기존에는 인력이 하던 작업을 로봇이 수행하게 함으로써 노동력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에서 의장라인에 로봇을 도입하는 것이라든지 조선산업에서 로봇을 통해 용접작업을 하는 것에서 이런 변화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무턱대고 거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기계 대체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로서는 절박한 문제이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맨몸으로 막아서는 사마귀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이 진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술의 진보에 따라 기존에 노동력을 투입해야 했던 작업을 기계로 대신하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를 통해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기술의 진보가 당연한 것이라 해도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의 고통까지 당연한 것은 아니다. 기술의 진보에 대한 대응에 노동자의 문제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대응에는 노동자 개인의 노력과 함께 사회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산업정책, 지속가능성 확보가 관건

위기에 대한 대응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산업정책이고, 둘째는 그러한 산업의 변화에 노동자들이 적응하도록 하는 인력정책이다. 인력정책은 다시 변화의 충격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노동자가 변화를 수용해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에는 각종 사회안전망의 확충 같은 내용이 포함될 수 있고, 노동자의 변화적응을 위한 정책에는 교육훈련정책이 포함될 수 있다.

우선 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방향성을 드러내며 진행 중인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수용하되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도 현재의 산업구조나 운용시스템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기술을 도입할 때는 기존의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윤 확보만 고려한다면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없다. 또 일부 산업에서는 인력이야말로 경쟁력의 요체가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조선산업의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위기 직전까지 조선산업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이어지던 조선산업의 호황기는 세계경제의 성장 정체에 따른 물동량 축소로 선박 발주가 줄어들면서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국내 조선사들은 선박건조부문에서의 물량 축소를 해양플랜트 수주로 보완하고자 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해양플랜트부문에서 수주가 크게 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한 것으로 보였으나, 내부적으로는 경험부족과 기술력 부족, 그리고 이에 따른 공기지연이 겹치면서 조선산업의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그 내부에서 증폭되다가 조선산업이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 때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시작된 위기는 거의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서도 불과 몇 달의 시차를 두고 동일한 양상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는 조선사들의 방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물량이 줄어든 만큼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식을 동원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물량팀으로 불리는 비정규직을 밀어내고, 이어서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수순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정규직이라고 해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다.

인적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불씨가 생겨났는데, 옥석을 가리지 않는 구조조정이 진행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선산업의 특성상 높은 숙련도를 지닌 기술인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구조조정은 오직 기업의 재무상태 개선만을 염두에 뒀을 뿐 고숙련 기술인력으로 대표되는 조선산업의 기술력을 어떻게 유지할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을 보유한 숙련인력마저 대규모로 조선소를 떠났고, 그 결과 수주가 조금씩이나마 회복되는 현재 기술력의 퇴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현실화된 위기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현장에서 인력이 밀려나는 상황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기존의 인력을 대체하는 경우에도 산업 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산업구조 또는 운용시스템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신기술 도입이어야만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현재의 산업구조나 운용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러한 변화가 기존의 구조를 파괴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에서는 위기로 인한 인력의 감축이 불가피했지만, 인력을 줄이는 경우에도 기존의 기술력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러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직 재무적인 관점에서만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이는 조선산업의 기술력 퇴보 내지 상실이라는 문제를 낳은 것이다.

산업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인 R&D와 관련해서도 지나치게 논문이나 특허에만 집착하는 R&D가 지속되어서는 곤란하다. 논문이나 특허에서는 R&D 투자에 비해 양호한 성과를 내지만 그 결과가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결국 R&D를 위한 R&D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는 정부가 R&D 비용을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R&D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논문이나 특허 같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꼭 필요한 R&D 분야를 선정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사업화로 이어져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도 가능할 것이다.

불가피하다고 방치할 수는 없다

산업의 발전이 기술의 진보를 동반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문제일 수 있다. 문제는 그와 같은 노동자를 그저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구조조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예로 드는 것이 스웨덴 말뫼에서 조선산업을 구조조정한 사례이다. 말뫼의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산업은 정부와 노사, 지역사회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생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코쿰스 조선소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음에도 그러한 상황을 수용했는데, 노사정 각 주체들이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는 믿음이 있었고, 노동자들 스스로가 그러한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조선소가 끝내 폐업했을 때 노동자들은 투쟁이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의 전직을 택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과 같은 사회안전망을 한순간에 갖추기는 어렵다. 다만 실직이 ‘쌍용자동차 사태’에서와 같은 절망이 아니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특히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더욱 탄탄하게 보완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해고된 노동자를 보호할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노동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구조조정을 수용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사태와 같은 극한투쟁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소극적인 대응이라면, 실직 노동자들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적극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적극적인 대응으로는 교육훈련을 꼽을 수 있다.

교육훈련은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현재 재직 중인 노동자, 일자리를 잃은 실직 노동자로 구분하여 각각 다른 내용으로 진행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구직자의 경우 대부분 연령대가 낮은 점을 감안하면 신기술에 대한 적응도가 고령자에 비해서는 높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들에 대해서는 산업의 변화로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에 비해 재직 중인 노동자들은 약간의 변화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현실적으로 교육훈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체감하기도 쉽지 않으며, 필요성을 실감한다 하더라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교육훈련을 진행해야 한다. 즉 교육훈련의 내용보다는 교육훈련 자체를 자연스러운 직장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여기에는 노사는 물론 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실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당장 일자리를 잃어 소득을 얻을 곳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실업부조와 같은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되 눈앞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 위에서 교육훈련을 진행하되, 평생 용접을 해온 노동자에게 뜬금없이 요리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불필요한 낭비는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부분 연령대가 높을 수밖에 없는 실직 노동자들에게 IT기술이나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실직 전에 익혔을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훈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을 진행할 교육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교육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피교육자가 교육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면서도 교육자를 어떻게 양성할지는 거의 이야기된 바가 없다.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필요하다면 노동조합이 경비를 분담해서 강사단을 양성하는 과정을 시급하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내용 역시 각 주체들이 머리를 모아 합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치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각 주체들 간의 대화일 것이다. 사회적 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식의 사회적 대화로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없다. 다행히 이번 울산 취재에서 확인된 것처럼 각 당사자들이 모두 위기라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대화 채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에서 확인한 것처럼 제조업의 위기는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극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화 채널 구축을 더 미룰 수는 없다.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를 느끼고 있는 당사자들의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