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지방공무원들의 ‘열(熱)’기
[김란영의 콕콕] 지방공무원들의 ‘열(熱)’기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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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천안시 ▲▲면사무소에서 만난 수진 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표정은 지쳐 있었고 눈동자는 몽롱했다.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그녀가 오랜 시간 상당한 업무량에 시달려왔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동네 이장님들까지 나서서 “보기가 딱하다”고 입을 모았을까.

“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수진 씨가 바라는 것은 간단했다. ‘시키는 일’만큼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효율적인 ‘업무체계’를 구축하는 것. 하지만 수진 씨는 각종 민원을 처리하고 직불제 신청 서류를 챙겨가면서 오늘도 4년 전처럼 ‘새벽 4시 출근’을 택했을 거다.

수진 씨가 속한 천안시공무원노동조합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조는 “지난 몇 년간 농식품부(농림축산식품부)에 수차례 농업직불제 전담 인력 충원과 농관원(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의 전산 체계 연계를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조 관계자는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만드니까 자꾸 일선에선 아우성을 치는 것”이라며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려면 그 전에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직불제는 이름 그대로 정부가 농업인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농지 면적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해서 중소 농민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선 선거철마다 지원 규모를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둥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약이다. 최근엔 농민들을 위한 기본소득격인 ‘농민수당’까지 정책적 논의가 확대되는 추세다.

수진 씨와의 만남은 지난해 11월 전북 김제시청에서 만난 축산과 공무원들을 떠올리게 했다. AI(조류인플루엔자)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살처분하랴, 수시로 회의하랴, 가축에 예방 주사 놓으랴, ‘범(凡)’ 방역 업무를 하느라 밤낮이 없었다. 그런데도 언론은 AI가 ‘터지고’나서야만, 관심을 기울이니, “일은 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고 토로했다. 집단 인터뷰를 마친 뒤 공무원 5명 모두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누군가 “막걸리 한잔하러 가자”는 말로 정적을 깼다. 마치, ‘더는 술 없이 안 되겠다’는 사람처럼. 당시 김제시청 공무원들도 방역 업무에 필요한 충분한 인력 충원과 업무 분장을 주문했다.

행정부는 조직 특성상 업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키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역시나 ‘현장에 답이 있다’는 노동계의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KTX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농업직불제 사업도, AI 방역 업무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부디 정부가 현장과의 소통으로 자랑스러운 정책들을 피하고 싶은 '폭탄'으로 자꾸 바꿔놓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