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인간의 살갗, 이윤의 살갗
[박완순의 얼글] 인간의 살갗, 이윤의 살갗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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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4월 28일 오전 9시 40분이 기준이다. 그 시각 이전과 이후에 살갗에 대한 나의 느낌과 생각이 달라졌다. 경기도 마석으로 향하는 녹색 좌석 버스에 탔다. 교통카드를 찍고 빈 좌석을 찾아 창가 쪽에 앉았다. 창가에 머리를 대고 흐린 하늘을 바라봤다. 버스가 오래 돼서 그런지 엔진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 살갗을 타고 흘러 내 몸을 떨리게 하는 진동. 9시 40분 이전에 이 진동은 그냥 노후한 버스가 덜덜거리는, 낡은 기계의 낡은 울음이었다.

9시 40분이 됐고 갑자기 몸서리가 쳤다. 살갗으로 전해져오는 진동을 생각하다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용균. 이젠 누구나 아는 그 이름의 김용균 말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말이다. 컨베이어벨트의 진동을 느꼈을 그 청년 노동자 말이다. 그에게 진동은 얼마나 악마 같은 떨림이었을까. 그가 진동을 느낀다는 것은 일터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증거고, 한편으로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위험이 항상 그를 덮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중적인 떨림은 악마와 같을 수밖에 없다. 악마의 속삭임 같은 떨림을 수없이 느꼈을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살갗.

그럼에도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살갗과 같은 연약한 살갗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떨림을 극복하고자 함께 모여 외쳤다. 외침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으로 이어졌다.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일터의 안전,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실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개정이었다.

그럼에도는 그럼에도 정도였을까. 입법예고된 산안법 하위법령은 안전이 우선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는 요원해보였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죽음을 맞았던 발전산업의 경우 도급 승인대상에서 제외됐다. 건설산업에서는 다양한 기계로 인해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기에 안전보건조치가 필요한 기계 장치들을 폭넓게 선정할 필요가 있다. 하위 법령에는 상당히 제한적인 기계 장치만 포함됐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번 입법예고된 산안법 하위법령을 두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도 불렀다.

한편으로는 예상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던 역사적 경험을 우리 사회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문제가 고쳐지지 않은 채 OECD 산재사망 만인률 1위 국가로 달려가며 2001년부터 2017년까지 한 해 평균 2,400명 정도의 산재 사망을 기록한 것이 방증한다. 이러한 개선되지 않는 오래된 현실에 대해 노동안전 분야 전문가는 안전한 작업장을 마련하고 예방적 차원의 제도를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이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비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연약한 살갗을 지닌 인간의 목숨조차 비용으로 치환한다는 뜻이다.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 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이윤의 살갗은 너무나 두텁다는 이야기다.

마석에 도착했다. 김용균 묘소 앞에 섰다. 묘비와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추모 조형물을 감싼 천을 젖혔다.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는 김용균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울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아버지, 주변의 동료들, 함께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더 이상 이어져선 안 된다고 외쳤던 사람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심지어 사진을 찍는 사진 기자는 울음으로 떨리는 렌즈 초점을 수정하며 셔터를 연신 눌렀다. 이 떨림은 내가 버스 안에서 몸서리친 이유로 느낀 떨림과는 다르다. 이 떨림은 인간 내부의 마음에서 발현되는 떨림이었다. 그런 떨림은 다짐에 가깝다. 두터운 이윤의 살갗에 다시 한 번 파장을 주겠다는 다짐의 떨림. 연약한 인간이 강해질 수 있는 떨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말했다. 기업에 큰 책임을 묻는 처벌적 조항으로 노동 현장의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그들을 예전 국회 토론회에서도 본 적이 있다. 안전한 일터를 위해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노동자가 참여해야 하며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나왔다. 문제는 아주 두꺼운 이윤의 살갗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지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날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용균이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김미숙 씨의 떨림만으로는 이윤의 살갗에 미세한 진동조차 주지 못할 것이다. 혼자만의 떨림은 다시 연약한 인간의 살갗이 느끼는 좌절의 떨림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께 떨림을 증폭시킬 누군가는 누구일까. 우리라고 답을 주저하는 인간의 살갗을 가진 우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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