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이유, “일-가정 양립 어려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이유, “일-가정 양립 어려움”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5.13 15:21
  • 수정 2019.05.13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국회토론회 “한국 간호사의 노동실태와 과제”
한국 간호사의 노동실태와 과제 국회토론회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한국 간호사의 노동실태와 과제 국회토론회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지난 5월 12일은 제48회 국제간호사의 날이었다.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대한간호협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주관으로 13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한국 간호사의 노동실태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우리나라 활동간호사수는 OECD 평균의 반이나, 총병상수는 OECD 평균의 3배”라며 “간호사가 근무조당 돌봐야 할 환자수가 선진국에 비해 2~5배까지 높다”며 간호사의 업무강도를 설명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7만 조합원 중 60%가 간호사이기에 간호사 인력문제 및 현장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책과 제도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도록 간협과 노조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호사와 간호사의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었을 때 환자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현장실태발언으로 시작됐다. 현장실태발언에 나선 김경영 지방 중소병원 간호사는 “중소병원의 인력문제는 정말 심각한데, 1년 내내 상시모집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프리셉터(신규교육 전담 간호사)를 운영하고 싶어도 인력이 부족해 할 수 없는 것이 실정”이라며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해도 여유 인력이 없어 신청자나 동료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경영 간호사는 “병원은 겉은 화려하지만 병든 노동자들뿐”이라며 “중소병원과 지방병원의 인력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대학병원의 사례를 발표한 공지현 대학병원 간호사는 “20년 정도 간호사로 근무했는데 노동조건은 변한 것이 없으나 더욱 완벽한 의료를 요구한다”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하고 있고 농담으로 ‘환자가 알아서 살아나가신다’고 말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고 말했다. 전공의특별법으로 전공의를 보기 어려워지면서 전공의와 인턴의 업무 중 상당수가 간호사의 업무로 넘어왔다는 것이 공지현 간호사의 설명이다. 특히 공지현 간호사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시행으로 간호사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다”며 “중증도가 높은 환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 받지 못하다보니 다른 병동 간호사의 업무 분담이 높아지고 있고, 사직을 원하는 간호사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으로 보내기도 한다”는 현실을 전했다. 공지현 간호사는 “국가가 병원을 운영하는 영국같은 시스템을 원한다”면서도 “내 발언으로 현실이 바뀔지 모르겠다”고 발언을 끝맺었다.

박영우 대한간호협회 병원간호사회 회장이 발제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박영우 대한간호협회 병원간호사회 회장이 발제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보건복지부 간호정책TF의 격상과 역할 정립 필요해”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발제한 박영우 대한간호사협회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이유를 ‘일-가정 양립 어려움’, ‘낮은 급여와 복리후생’, ‘잦은 초과근무나 부족한 OFF수’ 등의 순으로 꼽았다. 박영우 회장은 미국과 일본, 영국 등 해외의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사례를 소개했다.

박영우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병동 내 간호사 대 환자 비율, 의료기관 내 간호사 인력위원회 구성 등을 규정하는 법이 제정돼 시행 중”이라며 “법 시행 후 충분한 간호사를 확보한 병원이 늘고 간호사의 직무만족 증가와 이직률 감소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은 정부 조직 중 간호정책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 간호인력 양성, 면허, 수급, 근로조건 등 간호 관련 업무를 연속성 있게 수행하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간호사 이직의 원인을 분석하고 타 부서와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정부 내 여러 부서의 통합적 노력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영우 회장은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병동 내 간호사 배치 수준 강화 ▲장기적인 종합대책 마련 ▲보건복지부 간호정책TF의 격상과 역할 정립 ▲신규간호사를 위한 정책 수립 ▲표준임금가이드라인 수립 등을 제안했다.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간호노동은 조직적 돌봄노동”이라며 “조직의 논리인 수입이나 효율이 강조되다보면 적정규모에 대한 기준이 편협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가피한 초과노동으로 반드시 필요한 수면과 식사 등 재충전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을 수취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하면 싱싱한 노동력을 가진 신규인력을 충원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3교대 간호사의 노동력 보존과 삶의 질에 바탕을 둔 인권을 충분히 포할 수 있는 정도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간호인력의 숙련과 업무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를 촉발하는 계기가 돼야 하며 병원조직이 사회적 재평가를 수용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은헤 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은헤 기자 ehchoi@laborplus.co.kr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할 것”

이날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선 손호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현장의 고민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는 시간이었다”며 “간호 인력, 의사 인력, 환자의 안전, 국민 비용 부담 문제가 모두 연결돼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올 10월 시행될텐데 하위법령을 준비하며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며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편도인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장 역시 “올해 17곳의 대형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했고 곧 결과가 나온다”며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을 체계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장내 괴롭힘 등이 없는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노조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등 제도가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