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하나의 단어, 한 문장에 마음을 담아
[최은혜의 온기] 하나의 단어, 한 문장에 마음을 담아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5.21 10:08
  • 수정 2019.05.21 1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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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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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보는 공연이 있습니다. 원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주 한 번은 공연을 보러 가지만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는 공연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신 공연은 뮤지컬 ‘더 픽션’입니다. 더 픽션은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3인극입니다. 주인공은 작가 그레이 헌트, 기자이자 편집자인 와이트 히스만, 형사 휴 대커인데 그레이 작가와 와이트 기자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됩니다. 6월 30일까지 대학로에서 공연하니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쯤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의 제목은 그레이가 부르는 넘버(뮤지컬에서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의 가사를 인용해봤습니다. 작년 초연 때 가장 좋아했던 대사는 ‘한 줄의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였습니다. 그레이 작가의 첫 출판본이자 와이트 기자의 인생책, ‘그림자없는 남자’의 서문에 나오는 문장으로, 그레이 작가와 와이트 기자가 서로 공유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초연을 관람한 후 저 역시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됐습니다.

올해 ‘더 픽션’ 재연에서 가장 귀에 꽂힌 것은 ‘한 줄의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가 아닌 제목에서 인용한 ‘하나의 단어, 한 문장에 마음을 담아’였습니다. 와이트 기자가 자신의 글을 다 읽을 때까지 그레이 작가는 밖에서 이 가사를 읊습니다. 재연에 새로 삽입된 대사도 아닌데 새삼 귀에 맴돌고 있습니다.

올해 봄, 한 계절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얘길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었던 많은 사연은 제 손을 타고 뉴스로 보도됐습니다.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주로 절박한 사연을 가졌습니다. 결의를 담아 머리를 밀거나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어떤 단어와 문장에 마음을 담았나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몇 주 전, 황금 같은 주말이지만 수자원기술주식회사의 노동자들은 가족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파란 조끼를 맞춰 입고 부모님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왜 잠도 깨지 못한 새벽에 광화문으로 출발해야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집회 말미엔 오미숙 노동조합 사무국장과 김용식 수석부위원장이 삭발로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까지 행진한 후 집회는 마무리됐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은 길었던 머리를 밀어버린 오미숙 사무국장에게 모였습니다. 저 역시 간단하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오미숙 사무국장을 찾았습니다. 오미숙 사무국장은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과 헤어진 후 기사를 작성하며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절박한 얘기를 듣는다는 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누군가의 절박한 사연을 들으러 갑니다. 제 기사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진심을 담아 기사를 써보려고 합니다.

더 픽션의 그레이 작가가 읊는 ‘하나의 단어, 한 문장에 마음을 담아’라는 가사의 끝에는 ‘한 줄의 글로 희망을 전할 수 있을까’가 나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한 줄의 글로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기자가 되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