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선비준 후입법ㆍ선입법 후비준에 매몰되면 안 돼”
“ILO 핵심협약, 선비준 후입법ㆍ선입법 후비준에 매몰되면 안 돼”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5.21 18:14
  • 수정 2019.05.22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
21일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21일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6월 초 ILO 총회를 앞두고 국회에서 국제노동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21일 오후 국회에서는 한국ILO협회와 이용득,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송옥주 의원이 참석해 “노동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국회에서도 노력하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첫 발제를 맡은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ILO 핵심협약’이 아니라 ‘ILO 기본협약’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ILO 기본협약은 기본권의 개념이고 핵심협약과 비핵심협약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므로 기본협약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근주 연구위원은 ILO 핵심협약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지금까지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계의 희생을 강요해온 업보인데 거시적으로 노사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맞나”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선비준 후입법이나 선입법 후비준 모두 방법론의 하나일 뿐 뭐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근주 연구위원은 “ILO 기본협약 비준에서 노사는 ‘협의’의 주체이지 그 전제에 노사의 ‘합의’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며 “사회적 대화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지, ‘합의’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절차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단순히 ‘비준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회원국의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며 ”이행 체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쟁의행위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해”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한 발제가 포함돼 이목을 끌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강제노동 금지 관련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권오성 교수는 ILO 협약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비준의 쟁점으로 ▲대체복무 ▲교도작업을, 제105호 강제근로의 폐지에 관한 협약 비준의 쟁점으로 ▲정치적 견해 등에 대한 제재 ▲파업참가에 대한 제재를 들었다.

권오성 교수는 “ILO는 우리나라의 ‘공익근무요원제도’가 제29호 협약 등에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왔지만 현행 사회복무요원제도는 종래의 공익근무요원제도에 비해 대상자가 복무시기와 복무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제29호 협약 등에 명백하게 위반한 것인지 확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사회복무요원제도는 ‘공익 분야’에 복무하는 것이지 군사적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29호 협약 취지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수 있다”며 “ILO 강제근로 관련 협약 비준 혹은 실시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의 근무여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체복무제도가 다수의 국민의 법률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것의 지연을 이유로 협약 비준이 지연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권오성 교수는 “제105호 협약은 정치범에 대한 억압이나 교육 수단, 경제발전을 위한 노동력 동원, 노동 규제의 수간, 파업에 대한 제대 수단 등으로서 자행되는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협약”이라며 “국내법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등 정치적 견해 표현에 대한 징역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선원법, 공무원법 등 노동규율 수단에 대한 징역형 ▲전기사업법, 경비원법, 공무원노조법 등 쟁위행위에 대한 징역형이 제105호 협약에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국내법은 징역형이 아니라 금고형, 벌금형 등으로 대체함으로써 제105호 협약에 저촉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노동계, “정부가 적극적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에 나서야 해”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어제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의 사회적 대화가 무산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합의가 됐다면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비준에 대한 기본정신이 훼손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실장은 “대통령이 이제 선입법을 고집하지 말고 비준 의지를 분명히 천명하고 ILO 100주년 총회에 가서 이후 노동기본권 확대 계획과 의지 밝히고 비준 동의안을 국무회의 의결 후 국회로 넘기고 전교조 법외노조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ILO는 노동자단체가 아니라 노사정 3자 단체”라며 “ILO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는 노조의 요구가 아니라 노사 모두에 요구되는 국제적 기준으로 노조는 물론 사용자단체의 조직이 높아지고 대표성이 강화돼야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의미있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한 출발점으로 ILO 핵심협약이 빠르게 비준돼야 할 것”이라고 발언을 끝맺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역시 “노동현장에서의 시민권적 자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사안이기에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필요하다”며 “▲노조할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자 및 사용자 정의 개정 ▲실업자, 해고자 등 노조가입 제한 및 노조임원 자격제한 조항 개정 ▲공무원·교원의 단결권 보장 확대 ▲쟁의행위관련 노조법상 형사처벌 제도 및 업무방해죄 적용 폐지 등에 대한 입법 및 제도개선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ILO 핵심협약 비준은 원칙의 문제이지 노사간 협상과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며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필요한 정부내 절차를 진행하고 ILO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 및 노동관계법 개정 법률안(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의 선행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측 인사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충현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과장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성과 없이 경사노위가 종료된 것이 아쉽다”며 “정부의 의지만을 가지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가 수반돼야 해서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지만 정부의 강제 없이 노사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생각한다”며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공익위원이 합의안을 냈고 노사의 입장차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법제도를 합리적인 방향과 국제적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한 것에 의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선비준 후입법, 선입법 후비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따라 다음날로 예정된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 무산에 따른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장 발표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