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무주택자의 날
[박완순의 얼글] 무주택자의 날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6.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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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슬펐다가 섬뜩했고 기괴했다. 지난해 11월 9일 오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느꼈다. 어느 한 공간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데, 그 공간은 종로구에 위치한 국일고시원이다. 많은 이들이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으로 알고 있는 그 고시원 말이다. 작년 11월 9일 새벽 그곳에 화재가 났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화재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주거 약자들이다.

슬펐던 이유는 하나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불길과 유해가스를 피해볼 노력도 무색해지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죽었을 것이다. 고시원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누구나 익히 들어 안다. 흔히 벌집 구조라 불리는 아주 다닥다닥한 방들. 고시원에 살아보려고 보러갔던 적이 있는데 복도는 매우 비좁고, 앞방이 문을 열면 내가 방문을 열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되는 정도의 공간이다. 창문도 없는 구조. 화재에 강한 내장재를 썼을 리 만무해 보이는 내부 구조. 그러한 곳에서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피를 할지 상상도 안 됐다. 국일고시원도 마찬가지 열악한 환경이었다.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섬뜩했던 이유는 그럼에도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그 해 그 일이 벌어지기 바로 몇 달 전에 후배와 집을 알아보기 위해 고시원을 돌아봤다. 그 기억이 떠올랐고 이전의 무수한 고시원 화재 사건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떠올랐던 것은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살 집을 알아보려 발품 팔았던 기억이다. 싼 곳으로 가다보니 어느새 고시원 앞이었다. 여기에서 살 수 있을까 주저했을 때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이 고시원을 드나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고시원이라는 곳에 사람들은 살고 있으며 그곳에 살기 위해 고시원을 알아본다.

기괴했던 이유는 국일고시원 화재가 일어난 날 현장에 직접 가봤을 때 주변 풍경 때문이다. 종로라는 공간. 높고, 튼튼해 보이는 건물이 즐비한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 까만 그을음이 마귀의 손길처럼 건물 외벽으로 삐져나온 고시원. 화재가 일어난 고시원 밑에는 상점이 즐비했다. 소화기와 건물 소방장비를 파는 상점이었다. 그곳에 없는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화재가 난 현장을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다 눈에 들어온 사진이 하나 있었다. 고시원 바로 앞 인도에 위치한 구두방 컨테이너였는데 거기에는 서울시 공공주택 증설 계획 광고가 붙어있었다. 광고에는 민달팽이가 기어가고 ‘넌 참 좋겠다, 살 집이 있어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기괴하게도 민달팽이는 화재가 난 고시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슬프고 섬뜩하고 기괴한 일이 멈출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후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 씨는 한강에 투신했다. 그가 광고전단지 뒷면에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한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밤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틀 전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이었다. 1992년 6월 3일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에서 철거민, 세입자의 권리 보호와 주거권 실현을 위해 선포한 날이다. 선포한지 27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내일이 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슬프고, 섬뜩하고, 기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