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우리’
노동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우리’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6.06 04:18
  • 수정 2019.06.06 0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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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졸업생, 나이와 학력에 대한 차별이 장벽

[인터뷰]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

작년 5월 1일, ‘노동조합으로 모여 우리가 바꿔내자!’며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현장에 뛰어든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그렇게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하 특성화고졸업생노조)’을 결성했다. 지난 11월에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4월, 서울시는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9’를 발표하면서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고 학교노무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지난 5월 12일에는 특성화고졸업생노조의 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노조의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30여 명의 청년 노동자가 모였다. 사전대회 행사로 경매를 진행하는 등 정형화되지 않은 기획으로 시끌벅적하게 자신들의 첫 생일을 축하했다. “우리의 첫 노동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은아 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

구의역, 생수공장, 콜센터 그 아픈 기억들

사실 청년노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 등 청년의 노동과 관련된 단체가 많은데 특별히 특성화고졸업생노조를 결성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벌써 3주기가 다 돼 가는데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있었다. 스크린도어 수리 중 돌아가신 분이 특성화고 졸업생이었다. 그때까진 학력이나 이런 얘기는 거의 없었는데 2017년 두 번의 뉴스로 학력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유압프레스에 찍혀서 돌아가신 분은 19살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었다.

전주 콜센터에서 자살하신 분, 지난 해 이마트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다 돌아가신 분의 사건이 이어졌다. 공통점을 모으면 모두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라는 것이다.

예전부터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있었지만 최근 3년의 일을 겪으며 ‘우리 주변에 이상한 느낌이 있다’는 것을 당사자들이 자각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다. 보통 노동조합은 기업별, 업종별 노조이기 때문에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특별히 특성화고졸업생노조를 만들게 됐다.

처음에 조직할 때 앞서 언급한 4가지 사건에 대한 졸업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졸업 후 회사에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특성화고 졸업생이기 때문에 받았던 차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했다. 설문조사 시트 마지막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자 한다. 가입 의사가 있다면 노조가입서를 작성해 달라’고 해 전국에서 100여 명이 모였다. 작년 5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던 선포식의 참가자 대부분이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시트지를 받아 작성해 노조에 가입했고 선포식 이후 있었던 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상급단체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기존의 청년노조는 가맹을 하거나 상급단체를 두지 않았다. 우리는 상급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단체가 여기저기 홍보하고 몸집을 키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지와 지원을 해줄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맹을 결정했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대의원대회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중 어디를 상급단체로 할지 투표를 했는데 민주노총이 우세해서 민주노총을 선택했다.

사실 산별연맹 체제에서 우리처럼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업종이 다양한 노조가 가맹할 수 있는 상급단체가 별로 없다. 엄밀히 따지면 일반연맹으로 들어가는 게 맞지만 서비스연맹의 업종이 굉장히 다양하지 않나. 콜센터, 방문판매, 백화점, 마트 같이 다양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업종이 다양한 노조가 들어가도 섞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비스연맹에 가장 먼저 가맹 요청을 했다. 서비스연맹에서 굉장히 흔쾌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줬다.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처음 선포식하고 나서 한 달 동안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기간에는 일을 하고 있어서 굉장히 바빴다. 게다가 우리 노조의 평균연령이 20살, 21살이라는 것이 크게 이슈화돼서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인터뷰를 한 것 같다. 뉴스는 물론이고 라디오, 팟캐스트 같은데 나가는 것이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했다.

‘우리가 노동조합으로 모이길 잘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단체인지 왜 이렇게 결성하게 됐는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그때 처음이 굉장히 신기했다.

민주노총 최연소 20살 위원장

민주노총 내에서 가장 어린 위원장이라고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을 것 같다.

20살에 위원장에 당선됐다. 민주노총 전체 통계에서 20살 위원장은 없다고 하더라. 어린 위원장이기 때문에 좋은 점은 민주노총이나 연맹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준다. 우리 노조가 조직도 더디고 뭘 할까 고민하면서 움직이는 상황인데도 우리가 세대교체를 하는 시기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해준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어도 안부를 물어준다.

또 작년에 우리가 서울시와 MOU를 맺었다. 그래서 올해 서울시 시정사업에 특성화고 노동환경 개선이 들어갔다. 사실 이게 굉장히 큰 일 아닌가. 그런데 MOU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소통이 잘 안 되고 시행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를 민주노총에서 듣고 서울시와 직접 대면해서 박원순 시장에게 ‘MOU 체결한 거 왜 제대로 안 하냐’고 건의해 문제가 해결됐던 적도 있다.

반면에 힘든 점을 굳이 뽑자면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해야 하나? 공감대를 가질만한 부분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있다. 기존의 연맹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정규직 노조가 많았다. 근데 우리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다 섞여있다 보니 다른 노조를 만나거나 연맹과 대화를 할 때 우리의 성격을 계속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또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 연맹이나 민주노총에 이해를 시켜줘야 한다.

우리가 기존의 청년노조와 어떻게 다른지, 청년노동문제의 심각성이 뭔지 이런 걸 민주노총에 먼저 얘기해줘야 민주노총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구조다. 이 모든 문제를 안고 가야하고 기대하고 계신다는 점이 좀 부담스러운 편이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오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

일단 어리다는 것이 가장 크다. 어리다는 인식으로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잠재력을 평가절하하거나 어리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인식한다.

또 다른 것은 학력이다. 특성화고 설립취지는 실무자를 양성하는데 있다. 실무능력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하는 건데 ‘학위가 없으면 실무조차 안 된다’, ‘일을 못할 것이다’는 인식이 너무 팽배하다.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고 성과를 어필하려고 해도 회사에서 학력을 걸고 넘어진다. 박탈감도 크고 그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취업률이 정말 낮다. 전국적으로 고졸 실무자를 뽑는 회사가 정말 적다. T.O 자체도 대졸 T.O의 1/10 정도다. 또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굉장히 심하다. 실제로 생활 때문에 무조건 취업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빠르게 취업할 수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나 5인 미만의 열악한 사업장으로 취업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의 약자들은 법이 지켜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근로기준법에 어떻게 하라고 명시가 돼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교섭이 출발점이다

앞으로 대정부 교섭, 사업장 교섭, 총궐기 투쟁 등 다양한 활동을 예정하고 있다. 어떤 자세로 임할 건지?

사실 교섭을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는 것도 있다. 스스로 더 배우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깊이 있고 근본적인 문제를 스스로 더 배워서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것부터 파악해야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교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까지 연구와 토론을 끝내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하려니까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그래도 임기 동안 뭔가를 이루면 이룬 만큼 성취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성취가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라 내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이니까 부담이 많이 되지만 이번에 가맹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의지하고 주변 연대단체와도 연대해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서로 나누고 연대하면서 발전해가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