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 앞으로의 100년은?
한국의 노동, 앞으로의 100년은?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6.06 04:19
  • 수정 2019.06.06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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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공공성 강화할 노동학 정립해야

[리포트] 한국의 노동학

2019년은 대한민국으로서는 매우 뜻 깊은 해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던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올해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2019년은 노동계에도 의미 깊은 해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 운동가들이 주도해 세계 노동자 보호를 호소하고 국제적 협조를 통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ILO(국제 노동 기구,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가 설립됐다. ILO 설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의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와 함께 노동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공존하는 시기, 지난 4월 25일과 26일 양일간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는 프레스센터에서 ‘백년의 시민, 노동의 미래-한국 노동체제 다시 짜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노동사회포럼을 진행했다. 이 날 조대엽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은 노동의 공공성을 위해 노동학이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12월 말, 고용노동부는 2017년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7%로 전년 대비 0.4%p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한국을 대표하는 두 노동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조합원 수는 2018년 기준 100만여 명,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조합원 수 역시 2018년 말 기준으로 100만여 명에 육박했다.

양대 노총은 200만 조합원 시대를 열기 위해 조직화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를 넘어섰다고는 하나, 2015년 기준 OECD 가입국들의 평균 노조 조직률은 29.1%로 한국의 노조 조직률과 비교하면 3배 수준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였던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기대로 노동조합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 한국 사회에 ‘노동존중사회’가 열렸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국민들이 생각하는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은 얼마나 높아졌을까. 지난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노사관계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국민 1,000명이 참여했다. 먼저, 응답자 85.5%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또한, 노동조합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35%(매우 그렇다 5.2%, 그렇다 30.0%, 응답자 가운데 3.2%는 이미 조합원)를 차지했다. 이처럼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노동에 대한 권리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서는 긍정적인 답을 찾기 어려웠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지켜지고 있냐는 질문에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27.4%(전혀 아니다 3.6%, 아니다 23.8%)로 나타났다. 또한, 보통이라는 응답은 48.5%였다. 노동자들이 기업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자 62.0%가 동의했다.

지난 4월 25일과 26일 양일간 있었던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의 조대엽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이자 노동문제연구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노동존중사회’를 위해서는 노동 가치와 노동 공공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로운 노동체제를 위해서는 ‘노동학’이 근본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이 말하는 ‘노동학’이란 노동이 인간 삶과 미래의 근본이자 모든 사회관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기초로 해 노동세계를 사람과 삶의 본원적 가치로 재구성한다는 학문이다. 그래서 노동학을 ‘인간학’이자 ‘공공학’이며 ‘현장학’인 동시에 ‘융합학’이고 ‘미래학’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 ‘노동학’을 전공으로 둔 대학은 없다. 한국에서 최초로 노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으로 알려진 전순옥 박사다.

전순옥 박사
전순옥 박사

노동학, 자리 잡으려면 노동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노동에 관련한 학문은 노동경제학, 노동정치학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사회학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노동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이 학문은 국내에서 연구하고 있는 대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순옥 박사는 지난 198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2001년 영국 워릭대학에서 노동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순옥 박사를 만나 영국의 노동사회학은 어떤 내용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9년 세계 노동자들과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 전 박사는 당시 노동학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노동자들을 만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하지만, 당시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의 주축이었던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전 박사는 한국의 발전에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영국 워릭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그 곳에서 노동사회학 공부를 시작했다.

전 박사가 공부한 노동사회학은 모든 노동 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학문이다. 노사관계가 왜 생기는지, 경제가 왜 발전했는지에 대해 사회학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전 박사는 박사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책을 접했을 때라고 밝혔다. 이 책은 일본의 속담에서 기인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일어나 눈병이 걸리고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일본에서는 맹인들이 주로 샤미센이라는 현악기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샤미센을 만드는 재료는 고양이 가죽이다. 맹인들이 늘어나자 생계를 위해 고양이를 마구잡이로 사냥해 고양이 개체 수가 줄고 상대적으로 쥐의 수는 증가한다. 늘어난 쥐는 통을 갉아먹어 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 박사는 모든 사회가 연결됐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 영국의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전 박사가 영국에서 유학하던 중 런던 지하철 기사들이 파업에 들어가 모든 지하철이 멈춰 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한국의 수능과 같은 중요한 시험일로 영국 학생들은 지하철이 멈춰 서자 여러 차질을 빚고 혼란이 벌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영국 국민들의 시선은 “하루만 지하철이 멈춰도 이렇듯 큰 대란이 나니 지하철 노동자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라며 그들의 파업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전순옥 박사는 “영국에 노동사회학이 있었던 이유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국과 달랐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사회학과 같은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취직에 어렵다고 생각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사회학은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라며 “한국에 노동사회학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승자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사라지고 나를 비롯한 우리 주위에 있는 모두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공공성 발판으로
노동존중사회까지

전순옥 박사가 말한 바와 같이 아직까지도 노동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번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에서도 노동공공성 강화를 통해 노동존중사회로 도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협력적 노동체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협력적 노동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보편적 노동기본권 보장, 사회안전망 구축 등 안정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노동은 노동공공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책임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자본은 상생의 노사 관계 조성을 통해 노동존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사회는 엄격한 감시자이자 심판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종선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세기고 그 간의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노동사 박물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부소장은 3.1운동을 시작으로 한국의 노동역사도 100년을 자랑한다고 강조하며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학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함을 제안했다.

노동사 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내 노동사 자료를 한 곳으로 모으고 정리해 라키비움(Lachiveum, 도서관과 아카이브, 박물관의 결합체)을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안종기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박사는 노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노동TV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노동은 억압되고 배제됐으며 불안하고 위축돼 있었다. 또한, 일자리 수의 감소로 고용에 대한 위기는 장기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노동TV가 공민적이고, 공익적이며, 공개적인 노동방송을 지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노동을 토대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패러다임 형성과 함께 노동을 둘러싸고 있든 다양한 갈등을 제도적으로 표출시키고 해소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ILO 100주년과 대한민국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9년은 과거의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기약해야하는 때이다.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밑에서부터 자신의 몸을 바친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모두가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