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8명의 ‘유령’ 경찰청주무관
3,218명의 ‘유령’ 경찰청주무관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6.06 04:21
  • 수정 2019.06.10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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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필요한 건 예산안에 주무관 인건비 계정 신설
전 부처 주무관의 일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노력 필요해

[리포트] 경찰청주무관의 삶

지난 5월 9일, 눈에 띄는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걸캅스’다. 여경과 디지털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주인공 3명 중 2명의 직업이 경찰청주무관이라는 것이다.

경찰청주무관. 이름도 생소한 그들은 경찰청의 무기계약직이다. 민원인 상대, 과태료 징수, 인적사항 조회, 시설관리, 환경미화 등의 일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업무용 아이디가 없어 경찰청 공무원의 아이디를 빌려 이용해야 했다. 당연히 경찰청 홈페이지의 조직도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2011년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24명의 경찰청주무관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이제는 업무용 아이디를 발급받고 홈페이지 조직 구성원 검색에서 검색도 가능한 기초적인 수준에서나마 ‘인정’받았다.

경찰청 민원실 풍경 ⓒ경찰청주무관노조
경찰청 민원실 풍경 ⓒ경찰청주무관노조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채용된 공무원이 아닌 사람

경찰청주무관(이하 주무관)은 굉장히 낯선 직업이다. 영화 ‘걸캅스’에는 두 명의 주무관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성산경찰서 민원실 소속인 박미영(라미란 분)과 양장미(최수영 분) 주무관은 민원인이 찾아오면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부서로 안내한다. 또한 각 가정 등으로 보내야 할 과태료 고지서를 점검하고 CCTV를 확인하는 업무를 하기도 한다.

이런 일반 행정 업무뿐 아니라 경찰청 내 시설을 점검하거나 미화 업무, 조리 업무 등을 담당하지만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채용된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주무관’이라 부른다. 올해 1월 기준, 경찰청 내의 주무관은 3,218명에 달한다.

주무관은 정원제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청의 필요에 따라 일이 많은 부서로 이동이 용이하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일이 많은 부서로 이동해 일을 하다가 해당 부서에서 주무관 인력이 필요치 않으면 다시 또 주무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부서로 이동한다. 주무관들은 보통 가장 힘들고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민원실에 배정된다.

경찰청의 유령, 배제의 대상

주무관은 “경찰청의 유령”이다. 노조가 설립된 2011년 이전에는 업무용 아이디도 없어 공무원의 아이디를 빌려서 썼다.

정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정원으로 잡히지 않는 주무관에게 업무용 아이디는 꿈같은 일이었다. 업무용 아이디가 제공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구성원 검색이 되지만 아직까지도 정원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경찰청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이나 정책을 추진할 때 항상 주무관은 제외된다.

이명희 경찰청주무관노조 교육홍보실장은 “작년에 도입된 힐링프로그램에 주무관은 배제됐다. 민원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은 우리인데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힐링프로그램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먼저 뭔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지한 경찰청주무관노조 위원장 역시 “매년 한 차례 선정해 매달 10만 원씩 주는 중요직무급에서도 우리(주무관)는 배제돼있다”고 했다. 명절 상여금은 같이 일하는 공무원과 기준 자체가 다르고 성과 상여금 역시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명희 교육홍보실장은 “상여금이 지급되는 시기가 되면 주무관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회사생활을 그린 드라마로 회자되는 ‘미생’에는 “직장인이 월급과 승진 빼면 뭐가 있겠나”는 대사가 나온다. 월급과 승진이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의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고조할 수 있는 수단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단이 주무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승급체계도 없다. 때문에 경찰청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모두 이수하거나 직무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을 아무리 많이 따도 승급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경찰청주무관노조에서 기자에 공개한 봉급표에 따르면 호봉제 무기계약직은 1호봉에서 31호봉이 될 때까지 100만 원이 인상된다. 9급 일반직 공무원과의 봉급차이도 1호봉일 때는 26,100원인데 반해 31호봉에서는 123만 원 가량 차이가 난다. 공무원이 받는 각종 제수당에서 주무관은 배제되기 때문에 실제 임금격차는 50% 수준에 달한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정지한 위원장은 “정부가 무기계약직을 만만하게 생각해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을 주무관이 배제의 대상이 된 이유로 꼽았다. 2007년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경찰청은 행정사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 지금의 주무관으로 전환했다.

정지한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정부에서 전환된 주무관을 일원화해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의 자율에 맡겼다”면서 “각 부처마다 처우가 다르니 주무관의 처우 개선을 위한 일원화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처우 개선이 더뎌진다”고 호소했다.

산적한 문제의 대부분은 예산 문제

경찰청주무관노조는 산적한 문제로 ‘근로조건 개선’, ‘직무급제 폐지’, ‘자치경찰제’를 꼽았다. 그중에도 근로조건 개선과 직무급제 폐지의 경우 예산 문제와 직결된다. 정지한 위원장과 이명희 교육홍보실장은 “전년도에 미리 예산이 배정되다 보니 문제를 알아차리면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예산 배정을 할 때 노조를 참여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항상 뒤늦게 요구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주무관노조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부분은 노조 내부의 갈등이다. 주무관 인건비가 예산에서 계정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시기에 따라 임금체계가 다르다.

정지한 위원장은 “주무관 인건비 계정 자체를 신설하는 것이 역대 모든 집행부의 목표였다”고 털어놨다. 경찰청주무관노조에 따르면 주무관 인건비는 현재 경찰청 사업비에서 지출되고 있다. 한정된 금액 내에서 경찰청의 다른 사업 역시 진행하기 때문에 주무관 인건비로 무한정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경찰청은 호봉제 주무관과 직무급제 주무관으로 이원화해 주무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명희 교육홍보실장은 “기존 호봉제 주무관의 경우 임금이 매년 조금씩 인상되지만 이번에 새로 전환된 직무급제 주무관은 격년으로 임금이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임금 인상 시기와 상여금 제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호봉제 주무관, 직무급제 주무관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자 경찰청과의 교섭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정지한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설명이다.

그래서 경찰청주무관노조는 “사업비가 아닌 인건비 계정 신설을 통한 임금편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이 과정에서 직무급제를 호봉제로 일원화해 주무관 내에서의 차별 철폐를 위해 정부가 신경써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부의 예산 정책이나 인력 정책에 영향을 받지만 당사자와 충분한 대화 없이 정책을 진행하다보니 동일 사업장내 다른 임금체계, 각 부처별 상이한 주무관 처우 등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지한 위원장은 “우리 노조의 교섭이나 활동은 전국 각 부처의 주무관의 처우 개선을 위한 주춧돌을 놓는 일”이라 평가했다. 전례가 없는 정책으로 모든 정부부처가 경찰청주무관노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반영하고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대한 5가지 원칙 중 하나가 바로 ‘고용안정-차별개선-일자리 질 개선의 단계적 추진’이다.

올해 2월 기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율은 86.3%에 달한다. 고용안정의 목표를 달성한 만큼 이후 목표인 차별개선을 위해 주무관 관리 및 급여체계 일원화 등의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지한 위원장 ⓒ 경찰청주무관노조
정지한 위원장 ⓒ 경찰청주무관노조

[미니인터뷰] 정지한 경찰청주무관노조 위원장

찾아가고 행동하겠다

역대 최고 지지율(98%)로 제6대 경찰청주무관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조합원들이 위원장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지보다는 기대라고 생각한다. 주무관에는 산적한 과제가 많다. 이에 대한 주무관들의 절실한 바람이 득표율로 이어진 것 같다. 과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기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겠다.”

슬로건이 ‘찾아가는 노동조합, 행동하는 노동조합, 하나 되어 더 강한 노동조합’이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우리 조직은 전국 18개 지부에 산재해있다. 직접 찾아가 조합원의 아픔을 다독이고 얘기를 들어줄 때 처우 개선 등의 행동에 진정성 있게 나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가는’과 ‘행동하는’을 슬로건에 담았다.

또한 우리 주무관의 급여체계가 기존의 호봉제 주무관과 이번에 전환된 직무급제 주무관으로 이원화됐다. 잘못하면 내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대립이 심해진다면 정부 정책으로 갑자기 생긴 간극이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주장만 하기 보다는 서로 양보하고 협동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강한 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경찰청주무관노조 창설 10년이다. 이 시점에서 제6대 집행부의 역할과 방향성은?

“우리 조직이 9년차다. 처음보다 근로조건 등이 개선됐지만 아직 미비한 점이 많다. 먼저 이원화된 급여체계에서 경찰청과의 교섭을 통해 호봉제 주무관과 직무급제 주무관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작년에 결정된 예산에서 모두를 만족시켜야하다 보니 교섭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쟁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역대 모든 집행부가 그랬지만 주무관 인건비 계정 신설에 주력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경찰청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고 국가 예산이 수반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획재정부, 국회 등과의 협의나 투쟁이 필요한 일이다.

열악하게 일하는 주무관의 처우개선 등을 위해서는 예산을 통과시키고 집행하는 기관을 상대해야 하다 보니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