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은 보편적 서비스! 재정은 알아서?
우편은 보편적 서비스! 재정은 알아서?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6.06 04:20
  • 수정 2019.06.06 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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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된 집배원 과로사, 언제쯤 바뀌나

[리포트] 우체국 집배원 과로사 

지하철과 전기, 우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힌트는 ‘요금’에 있다.

정답은 ‘보편적 서비스’. 보편적 서비스란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적정한 요금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여기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사업자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요금을 마구 올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닐뿐더러 지하철 환승 할인 등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사업’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서울교통공사, 한국전력공사에 국고(일반회계) 지원을 해오고 있다. 단, 우편은 예외다. 우리나라 우편사업의 중추인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는 자체 수입 내에서 직원 급여 등을 지출하는 특별회계를 따른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 운영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한편, 금융사업에서 난 잉여이익금은 우선적으로 정부의 일반회계로 전출되고 있다. 그리고선 건전성 유지(BIS기준 충족)를 위해 일정 금액을 적립해야 한다. 이후 나머지 이익금만으로는 우편사업에서 난 적자를 충분히 메우기 어려운 구조다. 우정사업본부 내에서 우편사업과 금융사업이 독립된 회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집배원들이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민간이 가지 않는 농어촌과 섬 지역을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집배원 과로사 해법은
인력증원

17년 전인 2002년 6월 서울 여의도우체국 집배원 이모 씨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지 못했다. 사망원인은 과로였다. 이모 씨는 전날 밤 11시 30분까지 우편물을 분류하다 퇴근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피곤해서 잠을 자겠다”던 충남 공주우체국 이모(36) 씨도 다음날 일어나지 못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그 또한 하루 약 1,200여 건 우편물을 농촌 지역으로 배달하느라 야근을 반복하는 등 고된 일상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10년(2008년~2017년) 동안 집배원 166명이 숨졌는데 사망원인은 암(55명), 뇌심혈관계질환(과로사·29명), 근무 중 교통사고(25명), 자살(23명) 순이었다.

이처럼 우체국 집배원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배원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왔다. 비단, 노동계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사용자 측인 우본도 노동조합과 충원해야 할 인원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을 뿐, 인력 증원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집배원 인력 증원 규모에 대한 노사 합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우본 노사와 민간 전문가가 꾸린 ‘집배원 근로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하 추진단)’이 1년여 간의 실태 조사를 거쳐 2020년까지 정규직 집배원 2,000명 증원을 권고했고, 이를 강성주 본부장이 받아들이면서다.

당시 추진단의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 2,745시간으로, 2016년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2052시간)보다 693시간 길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연평균 87일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설과 추석, 선거 등 물량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노동시간은 주당 70시간 가까이 늘어났다. 연차휴가 사용률은 27~28%. 전체 정부부처(50.5%)에 비해 매우 낮게 나타났다.

추진단은 주52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2,853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같은 해에 이미 소포위탁집배원 등 1,100여 명을 증원한 것을 고려해, 올해엔 1,000명, 2020년엔 재정 여건을 고려해 추가로 1,000명을 증원할 것을 우본에 권고했다. 추진단은 특별히 현 정부의 비정규직 축소 및 정규직 고용관행 확립을 염두에 두고 노사 모두에게 비정규직 집배원을 통한 증원을 경계하기도 했다.

국무총리까지 나서 우편요금 올렸지만
정규직 집배원 채용은 단 0건
우본, “경영 어렵다”는 말만 반복

이에 지난달부터 우편요금을 기존(25g이하 기준 330원)보다 50원 더 올리기도 했다. 이는 최근 15년간 최대 인상 폭이다. (<표1> 참고)

이동호 전국우정노동조합(이하 우정노조) 위원장은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우편요금 인상 배경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역할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동호 위원장은 “지난 2월 이낙연 국무총리와 간담회 자리에서 이낙연 총리가 ‘라돈 침대 사건이 터졌을 때 우체국 집배원들이 주말도 반납해 애써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집배원분들이 본연의 업무뿐만 아니라 농어촌 어르신들의 민원도 해결해드리고 돌봐주시는 등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집배원 과로사 문제도 잘 알고 있다’며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집배원 인력을 늘릴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호승 차관도 ‘금융사업 잉여금 전출 문제는 논의가 더 필요하며, 우편요금 인상은 실무진에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우편요금 50원 인상은 지난해 추진단 권고 직후인 10월 말부터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보도에 등장한 우본 관계자는 “집배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선 우편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우본 내에서도 성과급 축소 등 긴축 재정을 통해서라도 인력 증원을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올해 집배원 채용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동호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동호 위원장은 “우본에 따르면 상시집배원 1,000명을 채용하는데 300억 원 가량이 든다. 그런데 우편요금이 50원 오르면서, 수익도 올해엔 700억 원, 내년엔 1,000억 원가량 늘 것으로 예상된다. 7월부터 집배원 1,000명을 늘린다고 해도 올해에 150억 원 정도 밖에 들지 않는 것인데, 우본이 또 적자를 핑계로 증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우본 관계자는 <참여와혁신>과의 통화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지난해 적자가 크게 날 줄 몰랐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부결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면서 “당장은 재정 여건이 어려워 집배원 증원이 어렵다. 향후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증원해나가겠다”고 반복해서 입장을 밝혔다.

정규직 집배원 1,000명 증원을 위한 예산은 국회에서 전부 삭감 당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행정안전부가 소요 집배 인력을 산출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증원 인력을 책정하고 기획재정부의 검토를 거쳐 내년 예산에 반영할 예정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와는 무관하게 우본은 정규직 집배원 증원을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렵게 되더라도 비정규직 상시집배원 1,000명을 대신 증원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당시 추진단 단장이었던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분기별 1회씩 정기회의를 열어 이행점검을 하기로 했는데 우본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연락도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우본, 보편적 서비스한다면서
적자 탓?

우편사업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규모는 작지 않다. 앞서 추진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편물량은 스마트폰 보급 등에 따른 전자 고지 확대로 지난 2010년서부터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해왔다. 택배 또한 업체 간 단가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국제특급은 중국 의존도가 높아 하락폭이 심화하는 추세다. (<표2> 참고)

하지만, 우편매출액 자체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단지, 고정비용인 인건비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우편사업 세출예산 중 인건비성 경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80%. 인건비성 경비는 보수인상률 등으로 매년 평균 1,000억 원씩 자연 증가해왔다. (<표3>. 참고)

이처럼 우편물량은 매년 감소하는 가운데 고정적인 비용인 인건비는 지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우편수지는 2011년 이후 지난 7년 연속 500억 원 내외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해부턴 적자 폭이 대폭 증가해 1,285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엔 1,960억 원까지 내다보고 있다. (<표4>참고)

이와 관련해 노광표 소장은 “현실적으로 우본이 경영이 어려운 상태에서 인력 증원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우편사업을 일반회계로 지원하지 않고서는 공공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추진단도 집배원 인력 증원은 물론 우편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서비스의 질을 강화하기 위해선 “우편사업의 손실을 금융사업의 이익금에서 우선 충당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거나, 우편사업의 적자 보전이 어려울 경우엔 우편사업이 대국민 공공서비스임을 고려해 정부가 일반회계에서 적자를 보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일각에선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용성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논문 <미래 환경변화에 대비한 우정사업의 핵심역량 제고 방안(2017)>에서 “우정사업본부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도시 중심의 물류 시스템이 아닌 농어촌을 비롯한 도서지역까지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반 금융권으로부터 소외되거나 고립된 국민들에게도 금융의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전국적인 네트워크는 그만큼의 인력과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며, 인건비와 경비를 충당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용성 교수는 “대국민을 상대로 한 ‘공익성’은 그 어떤 환경적 제약과 변화에도 포기할 수 없는 국가사회보장 차원의 행정서비스”라면서 “우정사업이 ‘공익성’이란 보편적 가치를 지속하면서도 ‘기업성’ 측면에서 독자적인 정책 결정과 집행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우정청으로의 외청화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우정노조의 한 관계자는 “우편사업이 특별회계에서 일반회계로 전환되지 않는 한 우정청으로 승격되는 것이 조직구조가 달라지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적어도 정부가 우편사업에서라도 우정사업본부를 일반회계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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