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있으면 힘들게 일 안 해도 되는데"... 여성건설노동자들 성차별 현장 증언
"나랑 있으면 힘들게 일 안 해도 되는데"... 여성건설노동자들 성차별 현장 증언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6.18 18:20
  • 수정 2019.06.18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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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여성노동자 꾸준히 늘지만 탈의실·화장실 등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일터는 곧 모든 노동자가 평등한 일터이기도
건설산업연맹이 자체 조사한 결과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건설산업연맹이 자체 조사한 결과.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현재 일하는 현장에 여성용 화장실·샤워실이 있나요? 없다 88.5%. 현재 일하는 현장에 여성용 탈의실이 있나요? 없다 72.5%. 남성노동자들과 일하면서 제일 불편한 점 1순위는 욕설과 폭력적인 말투, 2순위는 음담패설. 현장 내 성폭력·성희롱 상담부서가 있냐? 11.5%만이 그렇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장옥기, 이하 건설산업연맹)의 자체 설문 조사 결과이다. 이 현장은 어디일까. 건설산업 현장이다.

건설산업은 높은 노동강도와 위험성으로 남성노동자의 영역이라는 것이 사회의 기본 시선이었다. 그나마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소수 여성노동자들은 성별로 분화된 직종(사무보조 등)만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그간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건설산업 종사자 중 여성노동자의 비율은 13%(약 143만 명 중 약 20만 명)로 이전에 비해 많이 확대됐고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성별로 분화된 직종만이 아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설 노동으로까지 여성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만 명에 육박하는 적지 않은 인원에도 여성건설노동자의 노동실태는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산업연맹은 18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성차별이 존재하고 기본 편의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현장 실태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은채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조합원은 형틀목수로 일하며 건설현장의 거푸집을 만들고 있다. 조은채 조합원은 “인격비하와 성희롱, 성폭력이 건설 현장에서 만연하다”며 실태에 대해 밝혔다. 조은채 조합원의 증언에 따르면 ‘여자가 여기서 일하다니 세월 좋아졌다, 남편은 뭐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일하냐, 나랑 있으면 힘들게 일 안해도 되는데, 술 한 잔 하자’와 같은 이야기를 남성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조은채 조합원은 “여성노동자도 건설노동자이며 기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라며 “이러한 폭력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현정 건설기업노조 삼부토건지부 조합원은 “건설회사에 입사한 지 22년이 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라고 설명하며 말문을 열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시행돼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승진 배제와 업무 차별이 존재한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현정 조합원은 “국가는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을 금지할 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경쟁과 평가 앞에서 공정하고 평등하게 설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현미 플랜트건설노조 경인지부 조합원은 건설현장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할 편의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고현미 조합원은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어서 시내에 위치한 원청 사무실까지 30분이나 걸려 화장실을 오가야 한다”며 “시간이 오래 걸려 관리자의 눈치까지 본다”고 토로했다. 고현미 조합원은 “여성 탈의실이 설치된 곳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법적으로 1억 이상 공사 현장에는 화장실과 탈의실이 구분돼야 한다. 이를 근거로 들어 고현미 조합원은 법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실태만 조사해도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미정 건설노조 경기중서부 건설지부 조합원은 여성건설노동자에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기능교육훈련 실태를 고발했다. 김미정 조합원은 “현장에서 일을 얼마나 익히냐에 따라 준기능공에서 기능공이 되는데, 편견으로 인해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허드렛일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는 올해 3월 건설 현장 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현장 업무 수행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간담회에서 팀장들은 “중량물이나 고소작업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나머지 공정에서는 섬세하고 책임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건설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도 남성노동자 못지않게 일 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장 실태를 고발한 여성건설노동자들은 실태를 밝히며 요구하는 개선 사항은 여성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여성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현장은 곧 평등하고 공정한 노동 조건이 조성된 공간이기에, 해당 현장 내 모든 노동자들이 차별 없는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자회견 말미에는 참가자들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 수립 단계부터 여성 참여 보장해 성평등 건설현장 만들기 ▲발주처 및 원청 건설현장 내 여성 편의시설 설치(수도 설치된 화장실/샤워실/휴게실/탈의실) ▲매월 산업안전보건교육 시간에 성희롱 예방교육 및 성평등 교육 의무 실시 ▲공공기관 및 민간기관 기능훈련과 취업알선 사업담당자 성인지 교육 및 성평등 의식 향상 교육 실시해 건설현장 성별분업 인식 해소 ▲여성건설노동자 건설관련 직종 기능훈련 참여 확대와 고과 반영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참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완순기자 wspark@laborplus.co.kr
기자회견에서 참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