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은 나의 문제해결자이다
상대방은 나의 문제해결자이다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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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회사는 계속되는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30% 정도의 인원을 감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보장 없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한 달째 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적자는 더 커졌으며, 회사는 당초 계획보다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K사의 사례).

 

노사협상, 나아가 노사관계에서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적대적 노사관계 하에서는 사측은 투쟁의 대상인 ‘자본’이며, 노동조합은 없으면 더 좋은 ‘경영의 장애물’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즉, 한 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둘은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인 셈이다.

 

노동조합은 임단투 승리를 외치며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때론 삭발도 하면서 임단투 출정식을 갖는다. 말 그대로 정벌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사측은 어떤가.  임전무퇴의 각오로 일전을 불사한다. 둘 다 노사협상을 승패를 결정지어야 하는 하나의 게임으로 본다.

 

반면에 우호적인 노사관계 하에서는 상대방을 동반자, 부부, 친구, 고객 등으로 흔히 표현한다. 노동조합은 경영의 파트너요, 회사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협상상대를 ‘적’이나 ‘자본’으로 보는것 보다 훨씬 발전된 관계이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노사는 동반자’라는 인식은 ‘어쨌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동안 노사관계가 원만하고 협력적이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반대로 그동안 서로 적대적이었지만 어떤 계기로 협력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언제 어떤 경우에서나 변함없는 영원한 동반자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동반자’라는 인식은 노사협력의 기반인 ‘신뢰’라는 단어에 쉽게 상처를 입힌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또는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럴 줄 몰랐다’라든가,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다가 협상테이블에만 나오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평상시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보다 서로 친한 관계에서 또는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관계에서 배신감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협상은 노사가 단순히 빼고 더하고 하는 식의 자기 몫 챙기기 게임이 아니라, 노사간에 대두한 현안문제를 해결해 내는 구체적인 사실행위여야 한다. 그렇다면 노사협상에서 상대방은 제기된 이슈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문제해결자’여야 하고, 서로가 그렇게 인식해야 한다.

 

노조집행부가 임금인상을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지만 결국 임금을 인상해 주는 쪽은 노조가 아닌 회사이다. 또한 회사가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줄기차게 외쳐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회사가 아닌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협상은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배제한 채 내 방식대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WIN-WIN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다.

 

앞의 K사의 사례를 문제해결자라는 관점에서 협상한다면 어떻게 전개될까.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없이 주 35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연장하면서 상여금은 성과급으로 전환한다. 상대방을 ‘문제아’가 아닌 ‘문제해결자’로 봄으로써, 정리해고와 해외이전이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대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지멘스의 지난해 노사협상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