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파업 나온 비정규직 그들의 이야기
인생 첫 파업 나온 비정규직 그들의 이야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7.03 22:31
  • 수정 2019.07.03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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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 광화문에 5만 3천여 명 모여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그들의 출근길 풍경이 달랐다. 매일 출근하던 직장이 아닌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하루 노동을 멈췄다. 인생 처음이다. 빨간 날에만 일을 안 했지 오늘(3일)처럼 파업에 나서기는 처음이라는 말이다. 생애 처음으로 거리에 나온 1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대회에서 만났다.

즐거움, 뭉클, 분노, 아픔 그리고 당당함

평소와는 다른, 출근길이 아닌 파업길에 오른 그들에게 오늘의 기분을 물어봤다. 즐겁다고 말한 이들도 꽤나 있었다. 강원도에서 교무행정사로 일하는 노동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일 줄 몰랐다”며 “오는 길에 다 같이 와서 투쟁을 즐긴다는 느낌으로 왔다”고 말했다.

벅찬 감동으로 뭉클함을 느낀 이도 있었다. 대구에서 특수교육실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이렇게나 나랑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고 뭉클했고, 마음 한 쪽에 나와 직종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불편함도 남았다”고 심정을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분노와 속상함을 회상하며 파업길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당함을 느꼈다”고도 말했다.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무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직접 쟁취하는 기분”이라며 “무엇보다 노동자의 당당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좋은 여론에 대하여

이날 파업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인 급식조리노동자들이 다수 참여하면서 급식대란이 일어난다는 여론이 일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노동을 멈춰 공공서비스 대란이 찾아온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이들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고 온 교무실무노동자가 있었다.

또한,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안 좋은 여론에 대해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려움을 겪어본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파업으로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끼칠 수 있지만 이해해달라는 입장이기도 했다. 노동자로 보장 받은 파업할 권리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밀양영화고등학교 총학생회는 행동지침을 정해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응원하기도 했다. 행동지침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당한 권리이며, 우리 청소년들의 인권을 신장하고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임금 격차와 부당한 대우

인생 첫 파업에 나선 13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 참가 이유로 자신들의 노동 현장에서 겪었던 차별을 이야기했다.

중랑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노동강도와 노동환경에 비해 저임금에 처해 있다”며 파업 참가 이유를 밝혔다. 교무실무사로 일하는 노동자는 “일을 하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50분 노동 10분 휴식이 지켜진 적도 없고 호칭도 엄연히 교무실무사라는 직책이 있지만 ‘미스’ 혹은 ‘~씨’라고 불린다”며 “부조리한 점을 바꾸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조리를 하고 있는 노동자는 “올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이 하나도 안 돼 나왔고,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까지 맞추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안 지켜 파업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내가 노동자니까 나왔다”,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려 이곳에 나왔다”는 이유도 있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이고 지금 노동의 모습이 바뀌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겪을 노동 현장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20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어섰다”며 “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날 한 시 일손을 멈춘 파업투쟁을 만들어냈다”고 파업 참가 노동자들의 힘을 북돋았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는 100만을 넘어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인 최대 사용자”라며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민간도 따라가기 마련인 만큼 노동조건 개선과 차별철폐를 위한 노정교섭에 정부가 즉각 나서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파업의 핵심요구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및 차별해소 노정협의 틀 구축”을 제시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처우 개선 정책 ▲2020년 정부 예산안 및 예산 지침 ▲공공부문 비정규직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해 교섭 구조 발전 방안 등을 주요 의제로 협의하자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