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완순의 얼글]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7.04 16:35
  • 수정 2019.07.04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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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책을 읽다 혼자 킥킥거리며 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에게 웃음을 준 문장들에 밑줄을 쳐놓는다. 심심할 때 다 읽은 책을 휘리릭 넘기며 밑줄 친 부분만 읽으면 재밌으니까. 올해 봄에 읽었던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진짜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초입에 휘리릭 넘겨봤다. 그러다 김희선 작가의 ‘공의 기원’의 어느 부분에 쳐놓은 밑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읽었다. 킥킥거리는 웃음은 때론 서늘해서 킥킥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 부분이 그랬다. 밑줄이 묻어있는 문장들을 옮기겠다.

「경시청에서 직접 나온 기마경찰들이 공장 문을 열고 유황과 가죽 냄새에 절어 있는 창백한 얼굴의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카메라를 든 채 서 있던 앤더슨은 일렬로 걸어오는 아이들 중 하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쁘지 않니? 넌 이제 해방이야. 그러나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들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한동안 둘러보다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앤더슨은 기자이다. 공 만드는 공장에 아동노동착취를 취재했고 신문에 그 사실을 터뜨렸다. 경찰이 해당 공장에 와서 노동착취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구출했다. 그리고 앤더슨은 묻는다? 기쁘지 않냐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운다. 얼마나 서늘해서 킥킥거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블랙코미디인가. 아무 것도 몰라 당혹스러운 아이에게 어떤 사실 하나 알려주지 않고 ‘해방’이라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단어까지 쓰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강요한 꼴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기쁜 것일까? 앤더슨 본인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기뻐서 아이들에게 거꾸로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은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왕왕 일어난다. 최근 학교비정규직노동자 파업으로 언론 매체들이 많은 보도를 한다. 특히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중 급식조리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급식대란’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보도를 한다. 그러면서 초등학생의 빵 먹는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사진 캡션에는 “(전략)...아이가 대체 급식으로 나온 빵을 먹고 있다”고 써져있다. 다행히 얼굴은 다 드러나지 않고 코 밑부터 사진에 담겨 있다. 그러나 킥킥거릴 수밖에 없는 매우 훌륭하고 서늘한 블랙코미디이다. 앤더슨이 기쁘지 않냐고 물어본 것처럼, 그 초등학생에게 ‘파업으로 급식을 먹지 못하고 빵을 먹으니 얼마나 불편하니? 너는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단다’라고 소리 없이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초등학생에게는 뭐라고 말하고 사진을 찍었을까? 그 초등학생에게는 앤더슨처럼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았으니 안 울었을까? 소설 ‘공의 기원’에 밑줄 친 부분을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그가 쓰고자 하는 것,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그러면서 동시에 진짜를 가짜처럼 보이게도 하는-스토리를 만들려면 사진이 필요했으니까. 만약 사진만 있다면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진실이 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 물론 대체 급식으로 학생들이 빵을 먹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체 급식으로 빵만 나온 게 아닌 것도 사실이다. 빵, 떡, 바나나, 견과, 과일쥬스도 나왔다. 아, 그리고 노동자의 파업권은 헌법으로 보장된다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