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체공(滯空)의 노동자는 슬프다
[손광모의 노동일기] 체공(滯空)의 노동자는 슬프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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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저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1901년생 강주룡. 한국노동사 최초의 고공농성자이다. 강주룡은 안 그래도 열악한 고무공장의 임금이 10%나 깎이자 평양 을밀대에 올라섰다. 당시 언론은 강주룡에게 ‘떠있는 여자’, 체공녀(滯空女)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때가 바로 1931년 5월 29일. 그곳, 을밀대는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2m 높이. 강주룡은 ‘무산자의 권리’를 외치다 불과 9시간 반 만에 강제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러고서도 장장 76시간 동안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결국 사측의 임금 삭감은 철회되었지만, 쇠약해진 그녀의 몸은 바스러졌다. 1932년 8월 13일 강주룡은 평양의 어느 빈민굴에서 생을 마감했다.

강주룡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려졌다. 하지만 노동자는 강주룡이 그러했듯이 계속 높은 곳에 오르고 있다. 마치 발 디딜 곳이 없어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듯이. 죽을 각오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듯이. 슬픈 운명이다.

섬유를 가공하는 노동자 차광호는 2014년 5월 27일 스타플렉스 공장 앞 75m 굴뚝 위로 올라갔다. 스타플렉스의 부당 폐업 때문이었다. 408일이 지난 2015년 7월 8일, 그는 재고용을 보장한다는 사측의 말에 땅을 디뎠다. 하지만 차광호는 속았다. 스타플렉스에서 파인텍으로 회사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고용보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잔업도 없고 야근도 없었다. 월급은 고작해야 120만 원. 그때서야 차광호는 속은 걸 알았다.

그러자 2017년 11월 12일, 차광호의 동료, 홍기탁과 박준호가 다시 굴뚝을 올랐다. 차광호가 올랐던 굴뚝과 똑같은 75m 높이였다. 그러나 그곳은 파인텍 공장 굴뚝이 아니었다. 노동자는 남아 있었지만, 파인텍 공장은 사라졌다. 모회사 스타플렉스는 약속이 거짓인 게 들키자 야금야금 공장기계를 뺐다. 그러더니 아예 공장부지도 다른 회사에 팔았다. 홍기탁과 박준호는 스타플렉스 본사를 정면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서울 목동 열병합 발전소 굴뚝을 택했다.

홍기탁과 박준호는 26일의 고공농성과 33일 간의 굴뚝 단식을 하고서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때가 2019년 1월 11일. 426일이 지난 후였다. 홍기탁과 박준호, 아래에서 연대 단식하는 차광호까지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러나 교섭의 결과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고용 보장 3년. 기본급은 최저시급 +1000원. 차이점은 더 이상 이들이 속지 않는다는 것 하나 뿐.

막걸리 제조 노동자 송복남과 택시 노동자 심정보는 2015년 4월 16일, 부산시청 앞 11m 높이의 전광판에 올랐다. 그때까지 송복남은 한 달에 한 번 쉬고, 일요일에는 제대로 된 밥도 없이 고구마와 계란을 먹으며 막걸리를 만들었다. 심정보는 ‘제 돈 내서 메꿔야 하는’ 사납급제 대신, ‘월급 받는’ 전액관리제를 원했다. 고용노동청은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라고 명령했지만, 한남교통은 말을 듣지 않고 노동자만 뜯었다. 그렇게 그들은 홀린 듯이 전광판에 올라섰다.

송복남과 심정보가 땅으로 내려온 건 2015년 12월 24일. 253일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교섭을 보증하고 중재하기로 한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은 말 그대로 ‘나 몰라라’, 모른 척 했다.

강주룡의 슬픔은 지금도 계속된다. 2006년에 영남대의료원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박문진과 송영숙이 13년의 투쟁 끝에 찾은 답도 결국 고공농성이었다. 2019년 7월 1일. 70m 높이의 영남대의료원 옥상에 그들은 올랐다. 3일간 부분 파업. 박문진과 송영숙이 해고되고, 800여 명의 영남대의료원 조합원이 쫓겨난 이유였다. 박문진과 송영숙은 각각 40대와 20대에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60대 노인, 40대 중년이 될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90년 전 강주룡이 시작한 고공 투쟁의 역사는 언제쯤 끝이 날까. 인간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한다. 순리를 저버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인간은 슬픔으로 가득 차있다.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