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가 문제”
노동계,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가 문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7.12 15:53
  • 수정 2019.07.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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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200명에게 물었다 ‘한국 노사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커버스토리 ② 노동계에 한국 노사관계를 묻다

노동자 × 사용자 : 대한민국 노사관계

노동자와 사용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관계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는 갈등, 분규, 대립 등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다. 노사관계 당사자들도 한국 노사관계 정말 심각하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늘 그랬듯 질문을 던진다. 한국 노사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상대방 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노사관계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 외 다른 주체들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참여와혁신>은 한국 노사관계를 진단하기 위해 노동계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양대 노총 주요 간부들과 핵심 노동조합 임원 180명(한국노총 90명, 민주노총 90명)이 설문조사에 응했으며, 상급단체가 없는 노동조합 관계자 20명도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한국 노사관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 ‘사용자 편향적 제도와 정책’, ‘낮은 노조조직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정부의 노동행정’ 등을 지목한 응답자들이 많았다.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가 문제”

한국의 노사관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복수 응답 허용)를 묻는 질문에 노동계 응답자들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가 제일 문제라고 꼽았다. 200명 중 138명의 응답자가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를 한국 노사관계의 큰 걸림돌로 보았다.

노동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였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으며, 그간 노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이기도 하다.

사용자들은 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사용자 입장에서 경영은 사용자의 일이고 노동조합을 사용자가 결정한 것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보는 인식이 수십 년간 이어져오다 보니까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사용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사관계연구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노동계에서 주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여전히 한국 경영진의 상당수는 자신들이 노동자에게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그 월급의 원천은 노동자에게 나온다는 사실을 몰각한 채로 노사관계를 지배종속적인 관계로 보는 관점이 팽배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조사와 함께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 만난 A씨(기업 인사노무 업무 경력 30년 이상의 전 노무담당자, 현재 정년퇴직)는 노동조합을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파트너로 보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지배종속적인 관계를 벗어난 ‘대등한’ 파트너로 보는 것에는 난색을 표했다.

노동계 심층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사관계를 ‘적대적 파트너’로 비유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힘의 관계에 의해서 그 관계가 결정된다”는 설명과 함께 “사실상 노동자가 사용자의 힘을 약화시킬 수 없는 조건에서 대등한 의미에서의 파트너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노사관계는 앞으로도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불가능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노광표 소장은 “한국 노사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만들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노동조합의 책임만큼 권리를 주면 된다”며 경영 참여, 일터 민주주의, 작업장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근원적 불평등을 순화하기 위해서 ‘일터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사용자의 권력 남용의 여지를 자연스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노동의 조직화된 힘이 인정되고 제공되는 게 필요하다”며 “일터 민주주의의 합리적 작동을 전제로 종속적 권력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이 어려울 때는 노사가 힘을 합쳐 경영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기업의 이익이 늘어났을 때는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러한 점에서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인용해 한국에서도 거버넌스 안에 노동자가 들어가 투명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기업의 실태를 온전히 알 수 있다면 노사 간 신뢰가 좀 더 쌓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볼 수 없는 이유 한편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도 존재한다. 장 선임연구위원 “일부 노조들이 불필요할 정도로 경영진을 자극하는 점, 꼬투리를 잡아 원하는 것을 얻는 등 정상적이지 않은 전술을 구사하는 노조의 모습을 보고 기업 노무담당자들이 학을 뗀 경험들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노동조합의 전술이 단기적인 투쟁과 교섭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노사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박 연구위원도 “노조가 사용자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전략적으로 확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100%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노조도 책임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조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사용자’ 응답과 16표 차이로 2위를 차지한 응답은 ‘사용자 편향적 제도와 정책(122표)’이었다.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지적한 사용자 편향적 제도와 정책의 대표적인 예로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하지 않아 노동조합 활동 범위를 제약한 것은 사용자 편향적 제도와 정책의 대표적인 예”라고 지목했고, 장 선임연구위원은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것은 제도나 정책적으로 개선해야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필요한 건 법·제도 뒷받침

한국 노사관계의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어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복수 응답 허용)를 묻는 질문에는 ‘노사 균형적인 법·제도 개선(126표)’과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확립 및 글로벌 스탠더드 정착(125표)’이 1표 차이로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한 두 가지 응답의 경우, 앞서 노동계 응답자들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사용자 편향적 제도와 정책에 대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선택한 답변으로 보인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200명 중 100명, 응답자의 50%가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산별 노사관계 정립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100표)’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산별·업종별 교섭을 위한 노력과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틀은 기업별 노동조합과 기업별 교섭이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의 기업별 노사관계에 의해 형성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초기업단위에서 결정하는 교섭구조와 관행을 만들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상위권을 차지한 응답들에 ‘법·제도 개선’과 ‘제도의 변화와 뒷받침’, ‘근로감독관 역할 강화’ 등 제도 및 정책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계에서는 노사관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정책 변화를 가장 크게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