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의 유령, “사람이 예술이다”
노동시간의 유령, “사람이 예술이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7.11 04:20
  • 수정 2019.07.11 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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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관객과의 약속, 파업 역시 중단
사장 바뀌어도 시스템은 바뀌지 않아

[리포트] 장기화된 충무아트센터 쟁의행위

지난 해 7월, 노동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이 그것이다. 한 주의 노동시간이 최대 52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는 이 제도로 많은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게 됐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올해 3월까지 처벌유예 기간을 둬 올 4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한해 제대로 된 주52시간제가 시행됐다.
주52시간제 도입으로 공연계는 저녁이 생긴 노동자들을 객석에 앉히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평일 저녁 8시에 시작하던 공연을 7시 30분에 시작할 수 있도록 대관규약을 바꿔 내년부터는 평일 저녁 공연 시작을 7시 30분에 하도록 했다. 실제로 올 1월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9 공연계가 주목해야 할 6대 키워드’ 중 첫 번째 키워드로 주 52시간제를 꼽기도 했다.
그러나 종사자들에게 주 52시간제는 꿈같은 얘기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 많지 않은 공연계에서 공공극장은 주52시간제를 가장 먼저 시행하게 됐다. 주52시간제 도입을 앞둔 지난 해 5월 1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인력충원을 요구하면서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400일이 넘게 쟁의행위를 이어가고 있는 충무아트센터분회의 얘기를 들어봤다.

6월 20일, 충무아트센터 정문
6월 20일, 충무아트센터 정문

 

충무아트센터 3개 극장의 전반적인 관리 담당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에 가맹하고 있는 충무아트센터분회(분회장 윤태희) 조합원 대부분은 충무아트센터 무대기술팀 소속이다. 충무아트센터 무대기술팀은 충무아트센터의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의 조명, 음향, 무대 장치의 유지, 관리, 기술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다. 팀장을 제외한 10명의 인원이 각 극장의 조명, 음향, 무대 장치를 담당하고 있어 각 파트의 담당자가 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금처럼 소극장에 공연이 올라가지 않을 땐 소극장의 담당자가 백업을 해줄 수 있지만 3개 극장에 모두 공연이 올라갈 때는 아파서도 안 된다는 것이 윤태희 충무아트센터분회장의 설명이다.

윤태희 분회장은 “공연이 올라가면 공연제작사에서 채용한 외부 인력이 공연 중 조명과 음향, 무대 장치를 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며 “공연 중 조명의 경우 자잘한 사고가 많아 무대기술팀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항상 대기하면서 작은 사고를 수습하고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공연이 끝나야 퇴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밤 10시,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의 경우는 밤 11시가 퇴근시간이다. 퇴근이 항상 늦어 공연이 끝나는 시간을 기준으로 출근시간이 정해진다고 한다. 공연 3시간 전에는 공연 스태프와 배우들이 출근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서류 작업이나 장비 수리업체와의 일정 조율 등을 끝내야 한다. 공연 3시간 전부터는 리허설부터 참관해 공연시설을 점검하여 매끄러운 공연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충무아트센터 입구의 현수막
충무아트센터 입구의 현수막

1년 전, 쟁의행위에 돌입하게 된 이유

충무아트센터분회는 2018년 5월 11일 오후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당시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지난 2005년 3월 개관한 이래로 계속 된 인력충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며 “7월로 다가온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도 인력충원 대책이 없어 쟁의행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윤태희 분회장은 “주 52시간제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약속했던 공약”이라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드디어 인력충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 정말 기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바뀌고 노동시간이 단축됐지만 회사는 ‘명분이 없다’며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며 “한 주에 68시간을 일할 때부터 인력충원을 요구했는데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16시간이나 줄어든 것이 왜 명분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충무아트센터는 1년 내내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공연을 내린 지 일주일만에 새로운 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올해 6월 2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뮤지컬 <킹아더>가 막을 내렸는데 바로 일주일 후인 6월 9일, 뮤지컬 <썸씽로튼>이 개막했다. 지난 2018년 한 해 충무아트센터의 3개 극장에서는 1회성 단기 공연 포함 총 34개의 공연이 올라갔다.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전국에서 충무아트센터의 가동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충무아트센터는 대관 규정상 대관기간이 3달을 넘으면 안 된다. 3달의 대관기간 동안 공연을 위한 무대 설치(무대기술팀에서는 이것을 ‘무대 셋업’이라 표현한다)와 공연 종료 후 철수까지 완료해야 한다. 대극장 기준, 보통 공연기간은 2달 반 정도다. 약 보름 동안 무대 셋업에서 철수까지 완료해야 하는 것이다.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월요일엔 공연이 없어 쉬는 날이지만 셋업기간에는 쉬는 날이 없다”고 밝혔다. 열흘에서 보름 안에 새로운 무대를 설치해야 하는데 공연 전에 하는 드레스 리허설 기간을 고려해 공연 개막 며칠 전에는 무대 셋업이 완벽하게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7월은 일회성 행사 대관이 많아 한 달 내내 셋업기간이다.

그래도 소극장 대관 일정이 없는 지금은 셋업기간이어도 숨통이 트인다. 오전과 오후를 나눠 소극장 담당자가 백업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개 극장 전체에 공연이 올라가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윤태희 분회장은 “이번 7월 근무표를 짜보니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내 시간외 근무가 100시간이 넘는다”고 밝혔다.

그나마 적게 들어가는 조합원도 이번 달에만 시간외 근무가 70시간 이상이다. 매일이 장시간 중노동의 연속이다. 또 제대로 쉬질 못하니 사고 위험은 누적되고 있다. 개관한 지 15년째이기에 노후화된 기계가 걱정이 되지만 하루라는 시간을 들여 기계를 점검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촉박해 정밀한 점검은 꿈도 못 꾼다.

윤태희 분회장은 “예전에는 충무아트센터 기획공연이 있어 직접 무대를 디자인해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시간외 근무가 너무 많아서 관리 위주로만 한다”고 밝혔다. 관리와 제작사측 외부인원에 기술자문만 하는데도 백업이나 로테이션이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충무아트센터분회가 선택한 것은 쟁의행위였다. 지난 해 5월 충무아트센터분회는 “2018년 4월을 기준으로 지난 6개월간 보상받지 못한 6개월 이상 근무자 8인의 연장노동시간만 2,564시간에 달한다”며 “근로기준법 제56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차휴가 역시 법적으로 보장된 것에도 못 미치는 13일만 보상해왔다”며 “이 역시 근로기준법 제60조 위반이다”고 비판했다. 윤태희 분회장은 “연차 일수 부족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도 여러 번 갔을 정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쟁의행위를 선포하는 기자회견 이후에는 최대한 쟁의를 자제하고 충무아트센터와 7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해결되는 건 없었다. 김승업 당시 중구문화재단 사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위원 앞에서 ‘1명만 기간제로 채용하겠다’고 말했다. 충무아트센터분회는 ‘2명을 채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왜 1명을 기간제로 채용하느냐’며 반발했다. 결국 충무아트센터분회는 2018년 7월 24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파업을 접은 이유, “관객과의 약속 때문”

전면 파업을 선언했지만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은 계속 올라갔다. 무대기술팀에서 직접 공연에 참여해 오퍼레이터(operator, 조명 · 음향 · 무대 · 장치 등을 조작하는 스태프. 공연계에서는 ‘오퍼’라고 줄여서 부른다)를 하는 건 아니지만 제작사 인력에 대한 지원과 관리 등의 업무는 남아있다. 윤태희 분회장은 “우리끼리 우리를 공연쟁이라 부른다”며 “공연은 관객과의 약속인데, 우리가 회사랑 싸우지 관객이랑 싸우는 건 아니니까 마음이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소중한 돈과 시간을 써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업무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꼽은 것은 ‘극장의 평판’이다.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서울 소재 대형극장 중 개관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4대 극장 안에 들었다는 것은 굉장한 자랑거리”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충무아트센터의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극장을 브랜드 있게 키워보기 위한 의지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극장이 ‘충무에서 공연 올리면 사고난다’, ‘충무아트센터 시끄럽다’, ‘거긴 매번 피켓시위한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 관객들이 불편해하면서 극장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고민이 컸다고 했다. 윤태희 분회장은 “우리의 쟁의 이후 ‘충무아트센터에서 불안해서 어떻게 공연을 올리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자신들의 쟁의행위로 서울 소재 공공극장과 지방 공공극장의 무대기술팀 인력이 늘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참여와혁신>이 서울 소재 공공극장인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에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무대기술팀 인력 증원 현황’을 요청했다. 충무아트센터처럼 여러 개의 극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원래 36명이었던 무대기술 인력을 10명 더 충원해 현재는 46명의 무대기술 인력이 있다. 향후에 더 충원할 계획이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운영을 통해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국립극장의 경우 “인력증원은 요청했으나 아직 본부에서 승인이 안 난 상황”이라고 답했다.

올해 공연계가 주목해야 할 6대 키워드’ 중 첫 번째 키워드가 ‘주 52시간제’이지만 종사자들에게 주 52시간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큰 기대를 갖고 참여한 쟁의행위가 1년을 맞이한 지난 5월 11일, 충무아트센터분회는 조합원들과 간단한 다과회를 갖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윤태희 분회장은 “윤진호 중구문화재단 신임사장과도 관련된 얘기를 나눴지만 6월 14일에 진행했던 본교섭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반복했다”며 “6월 28일에 있을 본교섭에서는 좀 더 진전된 결론이 나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