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사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노사관계, 무엇이 문제인가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7.12 15:51
  • 수정 2019.07.14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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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진단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문제

커버스토리 ⑥ 전문가에게 한국 노사관계를 묻다

노동자 × 사용자 : 대한민국 노사관계 

노동자와 사용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관계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는 갈등, 분규, 대립 등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다. 노사관계 당사자들도 한국 노사관계 정말 심각하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늘 그랬듯 질문을 던진다. 한국 노사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상대방 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노사관계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 외 다른 주체들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노사관계의 당사자들은 노동자와 경영자다. 그들이 생각하는 노사관계 문제는 앞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한 발 물러서 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며 연구하고 있는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노사관계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노동계, 87년 체제 벗어나야

1979년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과도한 국가 개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그가 편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내에서 경쟁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동의 조직화를 억압하고 노동자들을 벼랑 끝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기조 하에 노조의 설립을 행정적으로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구사대에 의한 노조파괴 행위까지도 용인했다. 기존에 존재하던 노조에 대해서는 기업별노조주의를 강제해 노동자들이 전국적 또는 산업별로 조직해 자본과 대등한 지위에서 진행할 수 있는 단체교섭을 막아버렸다.

또한,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율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억제하고 어용노조가 기득권을 쥘 수 있게 했으며, 조직 노동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금지시켰다.

당시의 노동운동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자의 억눌린 억압은 1987년 폭발로 이어졌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고양된 민주화 열기는 노동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전국에서 전 업종에 걸쳐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법 울타리를 넘어서 ‘선파업·후협상’을 관철시키는 탈법투쟁이자 가두시위로 발전했다. 이 투쟁은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로 이어지는 자주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시키는 근원지가 됐으며, 이 과정에서 결성된 신규노조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물적 토대가 됐다.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이전의 국가권위주의의 노동체제가 해체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시장중심 자유주의적 체제로 재편됐다. 이를 두고 ‘87년 노동체제’가 형성됐다고 명명했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87년 노동체제’가 성립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안에 머물며 발전이 없다는 것이 노동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영기 한림대학교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87년 이후에는 기업별 노사관계가 노동권을 확보하는 데 효율적이었으나 97년(IMF) 이후에는 노동운동이 수세에 빠지면서 기업별 체제가 노동운동의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별 노동조합의 교섭 결과가 기업 울타리 안에 있는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임금근로조건 향상에만 영향을 미칠 뿐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보탬을 주지 못해 노동시장 양극화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역시 노동계에 대한 쓴 조언이 이어졌다. “87년을 한국의 노사관계 출발점이라고 보았을 때 3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노사관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들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는 얼마의 임금을 받을 것이냐의 분배 게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문제나 직장 내 민주주의 문제 등의 담론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로,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범위는 일부분으로 한정돼 있다. 나머지 90%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모색해야만 한국의 노동계는 30년 넘게 정체돼 있던 ‘87년 노동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

협약임금의 부재, 적용률 넓혀야

한국 노사관계 문제점으로 ‘협약임금의 부재’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를 통해 형성되는 노사관계에서 핵심적인 주제는 임금”이라며 “임금은 노동력에 따른 대가이며 경영자 입장에서는 핵심적인 비용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임금’은 자신이 땀 흘려 일한 대가가 얼마나 인정받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서 “그 수준에 따라 자신의 소비 수준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OECD가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7%이며, 단체협약 적용률은 이와 비슷한 수준인 12%다. 노사관계 사례를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독일의 노조 조직률은 17%인데 반해 단체협약 적용률은 56%에 이른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는 노조 조직률이 11%에 그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8%로 노동조합이 맺은 협약 내용이 프랑스 전체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체협약에는 기본적인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임금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니 박명준 연구위원이 지적한 대로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의 협약임금 수준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명준 연구위원은 “협약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노동착취를 방지하고 과도한 인건비 인상을 제어할 수 있다”며 “노동과 자본의 근본적인 비대칭성으로 인해 개별노동자는 자본에 종속돼 있고 권력적으로 열위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해주는 것이 집단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협약임금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최저임금’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매년 노·사 대표자들과 공익위원들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최저임금에 따라 자신의 다음 해 임금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박명준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협약임금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며 “해당 산업의 집단적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본인의 생산성과 비용 구조 등을 감안해서 임금을 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바람직한 협약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재벌독재체제 시대에 노동을 억압하며 초과 착취를 해왔다. 이것이 30년 동안 축적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면서도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과도한 노동착취가 불가능해졌으나 이후에 민주적이고 평등한 협약임금이 뿌리 내리지 못한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 등 협약임금이 일정 부분 적용되고 있다. 임금 액수나 노조의 존재 유무, 활동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협약임금이 양호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박명준 연구위원의 생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못한 곳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전체 기업 수의 0.1%에 불과하고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1,400만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 수의 82%를 차지한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노조의 테두리 밖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박명준 연구위원은 “중소기업과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데 협약임금이 적용된다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며 “한국 사회는 노동자 대부분이 협약임금에 낯선 상태가 노사관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사분면, 분절성 심각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하나로 정의하려 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며 “복잡하고 다면적인 특징을 가진 한국의 노사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사분면으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분면을 가를 두 가지 기준은 ①노·사의 갈등수준 정도와 ②노동자 임금, 근로조건 등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복지수준으로 나눠진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1사분면에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단결력과 조직력을 투쟁을 바탕으로 높은 고임금과 양호한 근로조건을 향유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분포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경우가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는 대기업들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양호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유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가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과 투쟁에 의한 것이 아닌 기업의 포섭전략이나 상당한 지불능력이 뒷받침돼 나온 것이 2사분면에 분포돼 있는 노동자들”이라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무노조 경영을 지향하고 있는 삼성이나 삼성의 제도와 유사하게 인사노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기업들”이라고 구분했다.

3사분면과 4사분면으로 들어가면 노동자들의 복지수준은 1사분면과 2사분면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3사분면은 노동조건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 하는 중간 정도의 상태이면서 기업의 지불능력도 양호하지 못하다”며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으면서도 투쟁이나 파업과 같은 강력한 행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의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조직된 단결력과 투쟁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매우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집단이 4사분면인데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4개의 사분면들 중 가장 크다”며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권조차도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영세·중소사업장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과 간접고용 상태에 있는 용역파견노동자들 등 광범위하고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노사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 곳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많은 관심과 논의들이 주로 1사분면에 쏠려 있어 이들이 한국의 노사관계를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로 인해 전체의 노사관계를 왜곡해서 해석하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양극화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노사관계의 분절성이 삼각한데 한국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며 “이와 같은 분절성을 해소하는 것이 한국 노사관계에서 주어진 가장 큰 숙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