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다시, 여름. '이글루'는 사라졌지만...
[김란영의 콕콕] 다시, 여름. '이글루'는 사라졌지만...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7.13 08:46
  • 수정 2019.07.15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하얀 이글루. 기자가 처음으로 공무원노동조합의 농성장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인상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철없는 비유였지만, 처음엔 그랬다. 그러다 차차 아님을 깨달았다. 비닐로 겹겹이 쌓인 농성장은 결코 눈 빛처럼 하얗지 못했다. 시원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그 안의 공기는 숨이 콱 막힐 정도로 뜨겁고 조밀했다. 그런데도 기자는 한 때 공무원이었던 그가 내어준 생강차에 투덜거릴 수 없었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주전자의 물은 보글보글, 야무지게 끓어올랐다.

농성장은 지난 주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강제 철거 됐다. 사전에 통지가 된 일이었다. 해직 공무원들은 밤새 '철거'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태워버리고 싶었던 농성장은 비닐은 비닐대로, 평상은 평상대로 찢어지고, 부서지면서 갈가리 해체됐다. 그는 내게 “그들은 너무나 쉽게 농성장을 밀어버렸지만, 우리에겐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날 그의 얼굴엔 휘발유가 부어졌다. 그가 차라리 농성장에나 뿌리고 싶었던 기름이었다.

한편에서 다른 이는 온몸으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또 다른 이는 농성장에서 '나온' 밧줄로 목을 칭칭 둘렀다. '다행히도', 그날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연행자나 응급환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날의 풍경이, 사람들의 마음들이 쉬이 평온했던 것도 아니었다. 맞다. '법은 응당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들이 그저 범법자에 불과한 것일까?

"사람들은 우리가 엄청 신념에 차서 파업에 나선 줄 안다. 하지만 대체로 보수적인 편이다. 공무원이 파업을 한다? 그날도 파업에 나가서 정보관을 피해 광장을 빙빙 도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신 그는 "사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광장에 섰다.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을 제정하면서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빼고, 단체교섭권과 단결권을 크게 제한했다. 노동계는 우리 정부가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이 됐기에, 회원국으로서 약속한 '결사의 자유(제87호, 98호)' 협약이 지켜져야 한다고 봤다. 결사의 자유 협약은 노동자는 물론 모든 사용자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래서 공무원 노동자들 입장에선 노동권 마다 조건을 단 공무원노조법은 마땅히 비판할 만한 것이었고, 보다 노동기본권을 확대해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하는 것이었다.  지난 겨울 우리 국민들이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며 촛불을 들었던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

만일 기자라면? 한번쯤 개기어 봤을 법하다. 기자가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일단 혼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조금은 억울한 일 아닌가? 하지만 '범법'의 대가는 가혹했다. 해고가 됐는데, 그것은 단지 일자리를 잃었다는 하나의 사건에서 멈추지 않았다. 해고는 해직 공무원들을 이전과는 다른 아빠의 삶, 조합원의 삶으로 인도했다. 그래도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엔 좀 나았다." 그런데 시간이 5년, 그리고 10년, 15년 성큼성큼 지나면서, 함께 복직을 외쳤던 이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조합원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그리고 끝내는 해직 공무원 스스로가 자기 삶에 대한 냉소, 그리고 한 때 몸 담았던 공동체에 대한 분노. 그리고 체념. 이런 것들이 개인의 삶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맞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은 '약자'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 공무원의 고용보장은 일반인들이 쉽게 누릴 수 없는, 일종의 특권이 됐다. 연금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적지 않은 노인들이 수레에 폐지를 싣는다. 해직 공무원들의 사연이 좀처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더욱이 우리는 '공정한 사회'여야 하니까. 

그런데도 이들의 사연을 적어보는 것은 15년 전의 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맞닿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 고용노동부는 오는 9월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과 정부 법안을 함께 내기로 했다.

맞다. 공무원은 특수하다. 노조는 소위 그들의 잇속을 챙기는데 활용될 수 있다. '내부자'로서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목소리 내며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 결과를 하나로 단정해선 안 되는 이유다. 농성장은 한 층짜리 평상에서 파라솔로, 파라솔 위에 비닐을 덮어 따듯한 이글루로, 그리고 이번 철거를 계기로 4면이 뚫린 행사장 부스형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오늘도 청와대 앞엔 노동기본권을 외치다 해직된 공무원들이 순번을 번갈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공무원 노동기본권 제한에 대한 세 가지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