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처음'이 두려울 때 '지음(知音)'을 생각한다
[최은혜의 온기] '처음'이 두려울 때 '지음(知音)'을 생각한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7.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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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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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이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열자(列子)>의 <탕문(湯問)>에는 백아와 종자기의 얘기가 나온다. 거문고를 잘 타던 백아는 자신의 뜻을 잘 헤아리던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의 현을 다 끊어버렸다. 더 이상 세상에 자신을 잘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잃었다는 의미로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백아가 연주하는 의도를 잘 알아들었던 종자기를 빗대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의미로는 ‘지음(知音)’을 사용한다.

기자가 되고 나서 처음 하는 일이 정말 많다. 학교를 다닐 때는 처음 보는 사람도 같은 과 혹은 같은 수업을 듣는, 어떻게 보면 공통점이 있는 또래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자가 된 지금은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듣는 건 처음 하는 일이다. 지방에서 상경했지만 광주나 세종 등의 지방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기사를 쓰거나 지금처럼 칼럼을 쓰고 있는 일도 처음 하는 일이다.

처음 하는 일을 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 친숙하게 말을 붙이는 것과 매일 새로운 사연을 알아가는 건 특히나 어렵다. 개인적으로 처음 하는 일도 능숙하게 ‘잘’ 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에 처음 하는 일에서 겪는 작은 난관을 큰 벽처럼 느낄 때가 많다. ‘많다’고 표현하기에는 '매번' 그렇다.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에 대해 얘기를 한다고 운을 띄워놓고 처음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렇게 나의 처음에 대한 고백을 늘어놓은 이유는, 생각보다 ‘처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새로 입사한 기자와 퇴근을 같이 하면서 그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고민은 내가 입사했을 무렵에 했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언론 사업을 처음 해봤다는 한 노조의 관계자 역시 ‘처음’의 성과를 분석하며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조합은 매번 집회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회를 처음 접하는 조합원은 그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럴 때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자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의 처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처음이어도 잘 해야 한다는 강박도 어쩌면 미디어가 심어놓은 이미지가 아닐까.

처음에 대해 고민하는 이에게 필요한 건 지음이 아닐까. ‘당신의 걱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지음. 오늘도 처음이라는 것에 고민하고 있는 주변의 동료에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종자기가 돼보자는 마음을 안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현장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