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 ‘의료민영화’의 신호탄?
정부의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 ‘의료민영화’의 신호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16 19:20
  • 수정 2019.07.16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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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추진 중인 4개 법안, 실질적 의료민영화 효과 주장
영리사업 가능한 의료기술지주회사 설립 가능
‘조건부허가’ 용이해져 임상시험 면제 확산 가능성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이 ‘의료민영화’의 첫걸음이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16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주도로 의료민영화 법안 폐기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범국본에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본부장 현정희) 등 의료산업 관련 노동조합과 여러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월 22일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생명공학 분야와 빅데이터 기술을 접합해 혁신을 주도하고, 신규일자리를 30만 개 창출하면서 바이오헬스산업을 미래 한국의 5대 수출산업 중 하나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의 바이오산업 혁신 행보에 국민의 건강권 문제가 소외되고 있다고 범국본은 비판한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돈보다 생명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기자회견 이후에 의료민영화 법안 폐기를 요구하는 대국민 선전전과 1인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을 뒷받침하는 법안은 총 4개다. 모두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다.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대표 발의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대표 발의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 의약품에 관한 법률안(대표 발의 이명수 의원) ‘보험업법 일부 법률개정안(대표 발의 더불어민주당 전재수)이다.

이중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 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만 남겨둔 상태다. 유철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팀장은 “4가지 법안이 명시적으로 의료민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의료민영화를 완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버전의 영리병원, 의료기술지주회사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에서 범국본은 영리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 설립을 가장 우려한다. 이명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제44조의4는 의료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의결권 확보 비율을 규정하는데 법안에 따르면 20%면 된다. 유 정책팀장은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20%를 제외한 80%는 모두 민간기업이나 투자자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명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제44조의 4(위)와 제49조(아래).

또한 제49조는 의료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에 관하여 규정 외에는 “상법”을 준용한다고 명시했다. 유 정책팀장은 “의료기술지주회사를 병원보다는 사업체로 간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더불어 연구중심병원을 허가제에서 인증제로 변경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재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은 “현행 연구중심병원은 병원 수익을 모두 재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며, “인증제로 제도가 바뀐다면 대형병원은 모두 연구중심법원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 동의 없이 의료기업 상품개발에 개인정보 사용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서 논란인 지점은 ‘가명정보 활용’이다.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제15조의3은 개인정보라도 가명처리를 한다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제15조에 제3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범국본은 정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민감한 정보가 가명정보로 전해진다고 해도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명정보란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비식별조치를 한 정보이다. 정보 재처리 시 다시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익명정보와는 구별된다.

문재인 정부가 발행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 전략’에 따르면,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필요한 것이다.

유 정책팀장은 “민간기업의 제품 개발을 위해서 국민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이라며, "정작 정보제공자인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조직국장은 “정신질환이나 유전병, 개인 성에 관한 사항이 유출되는 것”이라며, “더 문제인 것은 이러한 정보들이 악용되더라도 개인으로서 취할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조직국장은 또 “현재 법안이 제제를 통해 개인정보 악용을 막는다고 주장하지만 제제가 강력하지 않다”며, “과태료나 과징금이 몇 천만 원, 몇 억 원 수준이라면 업체들은 감수하고 개인정보를 유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보사 사태’에도 임상시험 요건 축소

첨단의료재생법 개정안에서 쟁점은 제3상 시험 면제가 쉬워진다는 점이다. 임상시험은 총 세단계를 거치는데, 1상과 2상 실험의 경우에는 필요한 실험대상자 수가 적어 비용이 적게 든다. 하지만 3상 시험의 경우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실험대상자가 필요해 비용 부담이 크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첨단의료재생법 개정안 제48조와 제49조에 따르면 ‘신속처리’라는 이름으로 조건부 허가를 용이하게 만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60일 이내 조건부 허가 지정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건부 허가 처분을 받은 의약품의 경우는 3상 시험이 면제된다.  

유 정책실장은 “기업들은 제대로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1상 2상만 아주 적은 임상케이스만 가지고 약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된다”며, “국민들은 식약처가 허가 해줬다는 신뢰성만 가지고 약품을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희귀난치성 등 몇몇 요건들을 규정하고 있지만, 인보사 사태를 봐도 식약처를 신뢰하기는 어렵다”면서, “임상연구라는 이름으로 환자에게 시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언 중인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가운데)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발언 중인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가운데)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더불어 전재수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요지는 실손보험처리에 필요한 서류들을 요양기관에서 보험회사로 곧바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 정책실장은 “미국 같은 경우에는 보험사가 병원을 소유하고 있다”며, “병원과 보험업의 연결이 깊어지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회견문에서 "보건의료의 상업화와 의료민영화 기반 조성을 위한 관련 법안들은 대형병원들과 보건의료 업계들의 이윤을 위해 국민을 볼모 삼는 행위"라며, "법안 통과에 앞장선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