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Who am I?
[임동우의 부감쇼트] Who am I?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07.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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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주말이면 그동안 읽지 못했던 기사를 몰아 읽는다. 기자라고 해서 평상시에 기사를 다 챙겨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본인 앞에 놓인 수많은 취재거리 앞에서 다른 기사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이번 주말엔 잔혹한 범행수법으로 화두에 올랐던 ‘고유정 사건’ 관련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모조리 읽고 난 후, 고유정의 범행에 대해 분석한 전문가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고유정은 극도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가졌다.”

우리는 나르시시즘을 이야기할 때 흔히 자기애(自己愛)를 떠올린다. 나의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과연 나르시스트는 자신을 사랑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르시스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르시시즘은 인간이 가진 완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이는 태어나 약한 자신을 인지하고 완벽한 대상을 상상하며 자기화 하는데, 이를 1차 나르시시즘이라 한다. 아이가 슈퍼맨을 따라하고자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거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아마 이와 상응하는 것일 테다. 이후 현실은 이러한 망상을 무너뜨린다. 무너진 1차 나르시시즘은 현실화 된 외부 대상에 대한 의존으로 넘어가면서 2차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된다.

2차 나르시시즘은 타인에 대한 의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관계지향적이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자신을 끊임없이 욕망한다고 믿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자. 자신과 타자의 순도 100%의 결합이 가능한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들어봤을 법하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을 것이다. 나르키소스의 치명적인 약점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몰랐다’는 점, 즉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바로 망상이며, 그 망상의 여파가 나르키소스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랑이란 ‘나 자신을 얼마나 아는가’로부터 시작된다. ‘앎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무지’라고 누가 말했던가. 사랑이란 ‘나 자신을 얼마나 아는가’로부터 시작되며, 튼튼하게 다져온 나에 대한 사랑이 타인과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항상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대사이기도 하다.

“Who am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