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받는 임금, 법원으로 가니 ‘골머리’
당연히 받는 임금, 법원으로 가니 ‘골머리’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23 10:58
  • 수정 2019.07.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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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에 관한 문제점 논의 토론회 열려
복잡한 한국의 임금체계 비판 … 법원의 준거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
ⓒ 노동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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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기업에 다니는 임금 씨의 연봉은 1,200만 원이다. 그런데 임금 씨가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을 다니고 회사를 그만둔다면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 산술적으로 700만 원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임금 씨의 월급은 100만 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밀은 ‘상여금’에 있다. 임금 씨의 월급은 50만 원이다. 두 달에 한 번 200%의 상여금을 받는 걸 포함해야 임금 씨의 연봉은 1,200만 원이 될 수 있다. 임금 씨는 홀수 달에는 50만 원, 짝수 달에는 상여급을 포함해서 150만 원을 받아왔다. 7월에 퇴사한 임금 씨가 그동안 받은 돈은 650만 원에 불과하다.

임금 씨는 50만 원을 받기 위해 통상기업에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임금 씨는 50만 원을 받지 못한다.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리송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22일 오후 2시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는 중앙경제와 월간 노동법률의 주최로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 후 6년의 변화와 과제’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220명에 가까운 법학도와 노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토론의 쟁점은 임금 씨가 50만 원을 못 받는 게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즉, 퇴직자가 정기 상여금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지난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선고 2012다89399)을 통해서 정기 상여금 문제를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 노동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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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임금 씨는 정기 상여금을 받을 수 없다. 임금 씨가 ‘퇴직자’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는 통상임금의 요건에 ‘정기성’, ‘일률성’과 더불어 ‘고정성’을 추가한 것이다.

정기성은 “임금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급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일률성은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을 달성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성은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되었다”는 뜻이다. 쉽게 풀어 쓴다면, 통상임금은 일정한 기간에 따라(정기성),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노동자에게(일률성), 사전에 맞춰진 임금(고정성)을 주는 것을 요건으로 한다.

하지만 임금 씨의 정기 상여금은 이러한 요건을 맞추지 못했다. 임금 씨가 정기 상여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①두 달을 근무한 ②재직자일 것이 필요했다. 또한 임금 씨의 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되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즉, 정기 상여금은 일정한 조건(두 달 근무한 재직자)에 따라 변동되기에 통상임금이 아닌 것이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 … 정기 상여금은 엄연히 ‘통상임금’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김홍영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기 상여금이 얼마 받는지 정해져있고, 특별한 사유가 아닌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다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절 상여금은 특별한 경우 주어지기에 통상임금이 아니지만, 정기 상여금은 일정 기간마다 줄 뿐이지 일반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인식되기에 통상임금에 넣어야 된다는 것이다.

임금 씨가 정기 상여금을 받지 못한 이유는 ①일정근무일수 조건(두달 이상 근무) ②재직자 조건(퇴직)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노동자의 노동 제공에 대해 사용자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 씨가 두 달을 채우지 못했다는 조건이나 퇴직했다는 이유로 그때까지 임금 씨가 일한 노동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정기 상여금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주지 않겠다는 부지급 조건”이라며, “노동자의 임금 상실과 강제근로의 가능성이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임금 씨가 50만 원을 받기 위해서는 정기 상여금 지급달에 맞춰서 퇴직해야 한다. 언제든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노동할 자유가 침해되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임금 씨가 받지 못하는 정기 상여금은 결코 작지 않다. 임금 씨의 정기 상여금을 월로 나누어 지급했을 때 월급 50만 원과 같다. 상여금 지급달에 맞춰서 노동을 지속할 충분한 유인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퇴직, 일정 근무일수 미달이라는 부지급 조건에 따라 임금이 상실되는 금액의 정도가 클수록, 노동자는 임금상실을 피하기 위하여 재직, 근무일수를 충족하도록 더욱 강제받는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특정 임금항목의 지급주기가 길면 길수록 부지급 조건이 강제근로로 평가될 소지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상여금 지급 요건 자체가 강제근로를 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통상임금 체계 … 해결보다 봉합 택한 대법원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사회는 1970년대까지 공공부문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간 기본급의 300~400%에 해당하는 상여금이 분기별 및 명절에 지급되어 왔다”면서, “1980년대 이후 인건비 증가를 우려하여 기본급의 인상을 억제한 정부 방침에 따라 장시간 근로(연장, 야간 및 휴일근로)에 따른 추가임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여금 비중을 계속 늘려왔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여금 비중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과 ‘기업의 인사관리적 속성’과 ‘사법적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토론에 참가한 권오성 성신여자대학 법과대학 교수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통상임금에 대한 판결의 요지인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는 주장이다.

권 교수는 “정기성-일률성과 시간급, 일급, 주급, 월급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면서,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말은 ‘하나의 비율’에 따라 근로시간의 증가에 따라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률성을 ‘일정한 조건’의 필요로 해석하는 것은 오독이라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또 “소정 근로에 대한 임금이 1개월 이내에 정기적으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위법하다고 평가되어야 한다”면서, “1개월이 아닌 다른 형태로 지급되는 임금을 정기성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후가 바뀐 판단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통상기업이 임금 씨에게 홀수달에는 50만 원, 짝수 달에는 월급과 정기 상여금을 포함해서 1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 애초에 근로기준법 상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권 교수가 지적하는 통상임금의 판단 구조. 정기 급여 중에 소정 시간(rate)에 근거해 지급하는 임금은 소정내 급여(통상임금). 시간에 근거하지 않는 복리후생비 등은 일률성이 없는 소정외 급여. 그리고 정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연차수당 등은 정기성도 결여된 비정기적 급여로 구분한다.
권오성 교수가 주장하는 통상임금의 판단 구조. 정기 급여 중에 소정 시간(rate, 일률성)에 근거해 지급하는 임금은 소정내 급여(통상임금). 시간에 근거하지 않는 복리후생비 등은 소정외 급여. 그리고 정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연차수당 등은 정기성도 결여된 비정기적 급여로 구분한다. 

또한 권 교수는 “통상임금은 사용자와 개별 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연장근로 등에 관한 수당을 계산하기 위한 도구개념”이라며, “법문에서 규정하지 않는 ‘고정성’은 별도로 고려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바꿔 말하면, 통상임금 산정은 ‘통상적으로’ 얼마를 주고받을지 결정하는 것이기에 고정성 개념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임금 씨가 통상기업에 처음 취업을 할 때 ‘통상적으로’ 연 1,200만 원을 기대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정기 상여금도 포함되어 있다. 정기 상여금은 ‘우연적으로’ 얻는 추가 임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태욱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과는 2012년 3월에 제기되고 나서 불과 1년 3개월 만에 해결되었다”며, “급한 불을 끈다고 대법원이 무리를 한 것이 아닌가. 결국 하급심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한계점을 평가했다.

더불어 김홍영 성균관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재직자 조건과 일정 근무일수 조건이 있는 경우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을 뿐이다”라며, “그러한 조건 자체가 유효한지 여부를 따진 게 아니다. 조건이 무효라면, 조건을 빌미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해석도 무효다”라고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