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에 떡 먹었다고 시말서? 어이없는 '직장 내 괴롭힘'
근무시간에 떡 먹었다고 시말서? 어이없는 '직장 내 괴롭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31 18:50
  • 수정 2019.07.31 2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업계 평균 보다 2배 높아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희세브란스 병원의 청소노동자 A씨는 근무시작 전 떡을 먹고 있었다. 관리자 B씨와 C씨가 들어오자 A씨는 별 생각 없이 관리자에게 떡을 권했다. 하지만 그날 오전 A씨는 태가비엠 사무실로 불려가 시말서를 써야 했다. 시말서의 내용은 “아침 근무시간에 떡을 먹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였다. A씨는 관리자가 불러주는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2018년 9월 17일, 연희세브란스 병원에 위치한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 사무실 앞에서 소란이 일었다. 관리지 김모 씨가 조모 씨의 멱살을 잡고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 조 씨가 김 씨의 근무자 물품 반출 사실을 제보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태가비엠은 김 씨의 비위에 대한 사실확인 보다는 조 씨를 질책했다. 조 씨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분회장을 맡고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혹은 노조를 한다는 이유로 괴롭힘 당했던 이들의 목소리에는 한(恨)이 서려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태가비엠의 직장 내 괴롭힘은 그대로라면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지부장 장성기, 이하 서울지부)는 3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상습적 직장 내 괴롭힘, 악질적 노조파괴 업체 ㈜태가비엠 전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실시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의 청소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증언했다.

태가비엠(대표이사 장경숙)은 1968년 설립된 회사로 공공기관이나 민간 빌딩의 시설물 및 미화, 보안, 주차 관리를 도맡아 하는 회사다. 현재 연희세브란스병원과 고려대 안암병원 비롯해 50여 개가 넘는 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태가비엠의 직장 내 괴롭힘, 청소용역 업체의 평균 2배

연희세브란스병원과 고려대 안암병원의 청소노동자가 태가비엠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이유는 '과도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 때문이다.

서울지부는 용역업체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을 보고하는 건수가 평균 2.17건인데 반해 태가비엠 소속 사업장인 고려대 안암병원과 연희세브란스병원은 2배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월간 노동리뷰> 2018년도 9월호에 실린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정흥준, 김정훈 저) 연구를 사업장별로 서울지부가 재정리한 결과, 고려대 안암병원과 연희세브란스 병원의 직장 내 괴롭힘 평균 건 수는 각각 4.11건과 4건으로 전체 23개 사업장 중에서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월간 노동리뷰>의 연구를 서울지부가 사업장별로 재정리한 결과. 고려대병원과 연희세브란스병원이 직장 내 괴롭힘 수준에서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평균 2.17건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서울지부는 2018년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이후로 1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부는 2019년 6월 17일부터 7월 5일까지 9개 청소용역업체의 서울지부 조합원 176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지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태가비엠과 용역 계약을 맺은 세브란스병원과 고려대 안암 병원의 직장 내 괴롭힘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최소 1회 이상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176명 중 36.6%(64명)이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고, 월 1회 이상 당했다는 응답자도 17.6%(31명)에 달했다.

월 1회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한 31명을 사업장 별로 구분해보면, 연희세브란스병원이 9명으로 가장 많았고, 예스코 도시가스가 7명, 고려대 안암병원이 5명, 중앙대, 덕성여대, 고려대, 연세대, 홍익대가 각각 2명으로 나타났다. ‘심한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중의 45%(14명)가 태가비엠 소속 노동자인 것이다.

노조탄압 의혹 잦았던 태가비엠

태가비엠은 노조 탄압 의혹으로도 몇 차례 논란이 있었다. 서울지부가 “태가비엠이 노조파괴 과정에서 관리자 혹은 소위 친사노조(親社勞組) 조합을 통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직장 내 괴롭힘을 자행했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지난해 2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새로운 청소용역업체로 계약한 태가비엠에 반대해 농성을 벌였다. 노조탄압 의혹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결국 같은해 4월 25일 동국대는 태가비엠과 용역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또한 지난해 11월 이화여대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이화여대가 미화업무 입찰과정에서 태가비엠을 선정하려하자 청소노동자들이 거부 피케팅을 벌였고, 그럼에도 이화여대가 태가비엠과 계약을 강행하자 2019년 1월 24일 청소노동자들이 본관을 점거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연희세브란스 병원에서도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 의혹이 있었다. 서울지부는 2016년 6월 민주노총에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하자 태가비엠과 연희세브란스병원이 부당노동 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부는 10월 연희세브란스병원(원청)의 개입 증거인 ‘업무일지’를 제출하며 고소했지만 노동부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를 했다고 전했다. 이후 2017년 9월 경 다시 부당노동행위로 고소를 했지만 현재까지도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발표한 활동결과 보고서에서도 ‘노조무력화와 부당개입 관련 사업장’ 중 하나로 태가비엠이 명시돼있다.

2016년 9월 7일자 업무일지(위)에는 철산노 위원장에게 최승진(연희세브란스병원 파트장)이 "노노대응 유도"를 요청했고, 태가비엠의 관리자가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같은해 9월 25일 업무일지(아래)에는 "민노, 한노, 비노 인원현황 상세데이터 주세요"라고 명시되어 있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요약' 중에서 발췌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태가비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청원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