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비 오는 날 이사한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박완순의 얼글] 비 오는 날 이사한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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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비 오는 날 이사했다. 이미 이사 날짜가 고정돼 변경은 불가능했다. 지극히 한국적(?) 여름을 통과하는 중인 우리는 습했고, 땀이 났고, 비를 맞았다. 젖었다. 왜 우리냐면 회사가 이사했기 때문이다. 다들 꽤나 눅눅해졌었다. 몸도 기분도. 잠시 쉴 때, 주변을 둘러봤다. 거기에 있던 우리는 빗물에 젖어 퉁퉁 불어버린 종이처럼 뚱해져있었다.

계속 퉁퉁 불어있기 싫었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뭐가 좋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던 중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썰,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면 왜 그 오래된 썰은 없어지지 않고 구전 설화처럼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회자될까.

그 썰에 대한 이유도 여러 가지 썰로 존재한다. 첫 번째 이유는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예전에는 이사를 하면 수레를 이용해 짐을 날라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 오면 수레의 바퀴가 젖어버린 질척한 땅과 마찰이 줄어 수레가 덜 덜컹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삿짐에 충격이 덜 가해지고 오래 쓸 수 있어 낭비를 하지 않아도 돼 잘 살게 된다는 약간은 '빈약한' 논리다. 물론 비에 이삿짐이 젖어 못 쓸 경우는 배제한 듯하다. 결국, 비가 오는 날 이사의 고단함에 대한 자기 위로에 가깝다.

두 번째 이유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천둥번개가 쳐서 잡귀가 집안에 들지 못해 집안 기운을 상서롭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첫 번째 이유와 비슷하다. 액운을 막기 위함인데, 액운은 실체가 없다. 그러니 비 오는 날 이사의 고단함과 눅눅함을 견디는 행위 자체에 대한 셀프 위로이자 넋두리이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했을 때,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복한 상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주술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주술이 효험이 있으려면 꽤나 행복한 상상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야 하고, 행복한 상상이 실현된 적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비 올 때 이사했으니 잘 살 수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져야 한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명징하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이사를 함께한 동료에게 정리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물었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왜 잘 살까. 동료는 단호했다. 이사하는 날 비 오면 안 좋다. 그리고 한 단어를 덧붙였다. 합리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건 아니지만 무릎은 탁 칠만 했다. 안 좋은 건 안 좋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주술을 외는 것보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 후에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희망고문은 실질적인 대안으로 바뀐다.

‘비 오는 날 이사한 건 안 좋은 것’이고, ‘잘 살 수 있다’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면 된다. 굳이 관계시키자면 동료가 농담으로 던졌던 말이 적절하다고 본다. 비 오는 날 고생해서 이사했으니 고단함의 역치가 높아져 앞으로 부딪힐 어려운 일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 생각해보면 비 오는 날 이사한 우리, 강해졌다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