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레니의 변명
[임동우의 부감쇼트] 레니의 변명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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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1930대 독일은 파시즘으로 물드는 시기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1차 세계대전 패배의 후유증에서 독일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생각했고, 요제프 괴벨스는 이러한 메시지를 받들어 독일 전역을 설득시키기 위해 미디어 선전기술을 개발해갔다. 선전을 위해 라디오를 싸게 보급했다고 하니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된 일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가 수천 명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라디오는 전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나치의 대변인이 되어 정치를 국민의 생활 속에 침투시켰고,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치의 선전에 활용된 미디어로는 라디오 말고도 영화가 있다. 1933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떠올리면 이 영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의지의 승리>가 그것이다. 히틀러의 선전영화인 <의지의 승리>는 압도적인 촬영기법으로 히틀러를 신격화시키는데 동조했다.

영화를 제작한 레니 리펜슈탈은 무용가를 꿈꾸던 소녀였다. 유년시절부터 활동적이고 대담했던 그에게는 원하는 걸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마는 집념이 있었다. 이런 그가 공연 중 무릎을 다쳐 무용계를 은퇴해야 했으니 집념은 갈 곳을 잃고 방황했으리라.

왕성한 기운이 방향을 잃었을 때, 그것은 가끔 잘못된 판단을 하고야 만다. 국가가 1차 세계대전 패배를 인정했으나, 가슴 속에 불씨가 남아있던 독일인들이 휴고보스 제복을 주겠다는 나치에 당원가입을 하곤 똘똘 뭉쳐 학살의 화약에 불을 붙이고 말듯.

레니 리펜슈탈은 무용계 은퇴 이후 머지않아 영화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 <푸른 빛>이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선전영화 제작 제안을 받게 된다. 몇 번의 사양이 있었으나, 결국 영화 제작에 돌입한 그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 붓는다.

현재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평은 둘로 나뉜다. 불운한 천재 영화인, 그리고 비열한 기회주의자.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모범이 되는 영화를 두 개나 제작했으나, 나치의 지원 아래 침묵했다는 점에서 그는 역사의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역사 앞에서 예술가도 예외가 될 수는 없으니까. 나치에 조력했다는 오명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 보니 실수 했을 뿐.’

지난 7월 초 제네바 유엔본부 내 회의실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던 일본 극우단체는 군함도 관련 조선인 강제징용이 한국의 날조라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는 한국인 학자가 참여해 강제연행‧노예노동‧임금차별 등의 주장이 반일 악감정으로 만들어진 날조라며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말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을 냈으나, 이에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아베 총리, 최근 일본의 보복성 경제제재 조치에 대해 우리 국회가 ‘경제침략’이라고 말하자 “‘침략’이라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냐”고 묻던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그리고 식민 지배가 신생활의 설렘이었을 것이라는 한국인 학자.

피해자들의 가슴에 기어코 불을 지른 그들이 잊은 건 역사이기 이전에 인본(人本)이 아닐지.

그들의 말은 어딘가 레니 리펜슈탈의 변명과 닮아있진 않은지.